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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키 크룸로프 역사 지구 [Historic Centre of Český Krumlov]

  • 체스키 크룸로프 역사 지구
  • 제목 : 체스키 크룸로프 역사 지구
  • 설명 : © UNESCO / Author : Ron Van Oers
체스키 크룸로프 역사 지구

상세정보

  • 국가 체코 공화국(Czech Republic)
  • 위치 남보헤미안 지역(South Bohemian Region)
  • 좌표 N48 49 0|||E14 19 0
  • 등재연도 1992년
  • 등재기준

    기준 (ⅳ) : 체스키 크룸로프는 약 5세기 동안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고, 상대적으로 방해를 받지 않고 유기적으로 발전한 도시이다. 역사적 가치를 지닌 구조물과 건물들을 간직한 이 도시는 중세시대부터 유지되어 온 중부 유럽의 작은 도시 중에서도 뛰어난 사례이다. 아름다운 블타바 강 유역에서 여러 건축물과 도시 기반 시설이 발전한 모습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요약
체스키 크룸로프(Český Krumlov)는 블타바(Vltava) 유역에 고딕 양식·르네상스 양식·바로크 양식 요소가 어우러진 건축물이 있는 13세기 무렵 중세도시이다. 5세기 이상 평화롭게 발전한 이 도시는 중부 유럽에서 온전한 건축 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뛰어난 사례이다.
목차
유산면적
52㏊
완충지역
1,073㏊
참고번호
617
본문

체스키 크룸로프는 경제적으로 중요한 도시였으며, 별다른 방해를 받지 않고 약 5세기 동안 유기적으로 발전하였다. 중부 유럽의 작은 도시 가운데 하나인 이 도시는 중세 시대부터 계속해서 평화롭게 발전하는 가운데 역사적인 가치를 가진 구조물과 건축물들을 남겼다. 도시는 위대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블타바 강 유역에서 성장하였다. 세월의 흐름에 따른 도시의 발전 과정은 여러 건물과 도시 기반 시설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이곳은 평화로운 역사를 가진 덕분에 중세시대 도시의 구조와 역사적 건축물들을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일부 보수 작업이 있었지만, 그로 인해 도시 경관이나 원래의 구성 요소를 잃지는 않았다.

체스키 크룸로프 유적은 동서를 연결하는 고대 교통의 중심지였던 블타바 강의 교차 지점에 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인 1253년의 문서에 의하면, 당시 남 보헤미아 지방을 통치하던 비트코비치(Vitkovici) 가문의 자손의 성이 이곳에 있었다. 그 성의 중심부인 하라데크(Hrádek, 성 안에 있는 첨탑)의 역사는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쪽의 라트란(Latrán)과 중앙 광장 건너편의 강가는 거주지로 개발되었다. 이러한 다중 결절지역(結節地域) 구조의 도시 계획은 중세 도시의 특징 중 하나였으며, 특히 북유럽과 중부 유럽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14세기 중반부터 300년 동안은 영향력 있는 가문인 로즘베르크(Rožmberk) 가의 관할권에 속하였다. 이 시기에 고딕 양식의 성을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축하였는데, 당시 이름 높은 예술가들이 작업에 참여하였다. 시민들의 주택까지도 우수한 품질로 건설되었다는 점은 이 도시의 가치와 경제적 부유함을 드러낸다. 이것은 정부의 통제와 관리 속에서 수공예와 무역의 중심지로 발전한 덕분이다. 이에 더하여 기독교의 발전도 두드러졌다. 체스키 크룸로프는 슈바르첸베르크(Schwarzenberg) 가문에게 관할권이 넘어간 이후에도 19세기까지 중요한 도시로서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블타바 강의 사행천(蛇行川, meander)에는 주요한 역사 유적지 2곳이 있으며 그곳은 크룸로프 성 아래 쪽의 라트란 지역과 바로 건너편의 강 유역이다. 도시는 성의 중앙 광장에서부터 뻗어 나간 방사상 도로가 있는 중세시대 계획도시의 전형적인 구조를 가졌다. 고딕 양식, 중세시대의 전성기고딕(High Gothic) 양식, 르네상스 양식, 바로크 양식 등의 요소들을 모두 담겨 있는 크룸로프 성은 도시의 크기에 걸맞지 않을 정도로 큰 규모이다. 성에서 가장 장관인 것은 1680년대에 증축된 고딕 양식의 하라데크이다.

이 성은 1766년에는 바로크 양식의 극장을 더하면서 전체적으로 바로크 양식으로 변형되었다. 성안에 있는 극장은 기계식 무대 장치를 갖추었으며 지금도 온전하다. 건설 당시 극장은 연 3회만 이용되었다. 이후 정원, 벨레르(Bellaire) 여름 궁전, 겨울 승마 학교가 추가로 들어섰다. 라트란과 강 건너편 지역에는 전성기고딕 시대부터 있던 시민 주택들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 이곳의 주택들은 건물 전면, 내부 구조, 특히 목재를 다듬어 만든 섬세한 르네상스 양식 천장 장식으로 유명하다. 15세기 초에 건축된 성 비투스 교회는 전성기고딕 양식의 둥근 그물 모양 아치 천장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이는 유럽의 역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교회에는 15세기의 프레스코화가 있다. 이 밖에 다른 중요한 역사적 요소로는 르네상스 양식의 예수회 대학, 바로크 양식의 신학 대학, 몇 채의 시민 주택을 합쳐 만든 르네상스 양식의 시청, 요새의 잔해, 이탈리아 풍의 르네상스 양식의 부데조비카(Budejovicka) 문, 20세기의 표현주의 화가인 에곤 실레(Egon Schiele)와 관련 있는 미술관 등이 있다. 그리고 라트란에 있는 르네상스 양식의 무기고를 들 수 있다. 보헤미아의 작은 도시들은 과거의 모습을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정치·사회·경제적 발전에 따라 중부 유럽의 중세 도시가 어떻게 변화 발전하였는지 살펴볼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체스키 크룸로프는 도시 경관과 건축물의 원래 모습을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는 데다 질적인 면에서도 가장 우수한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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