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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도시 카이로 [Historic Cairo]

  • 역사 도시 카이로
  • 제목 : 역사 도시 카이로
  • 설명 : © UNESCO / Author : Spier-Donati, Marianne
역사 도시 카이로

상세정보

  • 국가 이집트(Egypt)
  • 위치 알 카이라 주(Governorate of al-Qahirah)|||카이로(Cairo)
  • 좌표 N30 3 0|||E31 15 39.996
  • 등재연도 1979년
  • 등재기준

    기준 (i) : 카이로의 몇몇 기념물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걸작이다. 날카로운 편자 모양의 아치는 얕은 부조의 프리즈(frieze)로 강조되고, 오랫동안 극찬을 받아온 이븐 툴룬 모스크(mosque Ibn-Tulun)에 개방성과 리듬을 제공하고 있다. 파티마 왕조 시대의 장식은 재료의 선택과 응용성 덕분에 위대한 무슬림 예술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엘 아자르(El-Ahzar)와 알 하킴(Al-Hakim)에서 다양한 양식의 혼합된 비문과 특히 무슬림 문자로 된 선 모양의 장식이 발달하였다.

    맘루크(Mamuluke) 기념비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카이로의 스카이라인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과 다채로운 색깔을 내는 건축물의 명확한 특징, 원초적이며 예기치 않은 세련미는 결코 잊을 수 없을 만한 경관이다. 여러 겹으로 장식된 페르시아풍의 돔, 윤곽이 매우 뚜렷한 외팔보(cantilever)를 가진 사원의 첨탑, 날카로운 아치를 그리는 높은 건물의 정면, 종유석으로 된 발코니는 술탄 하산(Hassan)의 마드라사, 카이트베이(Qait Bey)에 있는 모스크와 유사하다.

    기준 (v) : 전통적인 도시 구조 중심으로 건설된 수많은 거리와 옛 가옥들이 보존되어 있는 역사도시 카이로는 중세 시대에 기원을 둔 인간 정주지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기준 (vi) : 역사도시 카이로는 중세 시대의 정치적·전략적·지성적·상업적 차원에서 국제적으로 중요했던 한 도시를 인상 깊게 증언하고 있다.

요약
카이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슬람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이 현대화된 도시 한복판에는 모스크들과 이슬람교 고등교육기관인 마드라사(madrasa), 그리고 하맘스(hammams, 목욕탕)과 분수 등 역사적 건축물이 들어서 있다. 10세기에 건설된 이 도시는 14세기에 황금기를 구가하며 이슬람 세계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하였다.
목차
유산면적
524㏊
참고번호
89
본문

역사도시 카이로는 중세 시대 정치적·전략적·지성적·상업적 차원에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한 도시를 인상 깊게 증언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카이로만큼 옛 건물을 많이 보유한 도시는 드물다. 나일 강 동쪽 연안 역사도시에는 7세기~20세기의 등록 기념물이 최소 600개나 있고, 대부분의 도시구조를 잘 보존하고 있는 대표적 중세의 거주지이다. 7세기에 이슬람의 창시자인 예언자 마호메트(무함마드)가 사망한 뒤 아랍 군대는 빠른 속도로 인근 지역을 정복하였다. 640년 칼리프 오마르(Caliph Omar)의 군대가 나일 강에 도착했고, 곧 바빌론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나일 강을 건너서 자신들의 수도인 푸스타트(al-Fustat)를 건설하고 성벽을 쌓았다. 칼리프는 메디나에 예언자의 사원을 건설하였다.

이것은 벽돌로 둘러싸인 단순한 중정형(中庭形)이었으나, 군사적인 특성을 가진 이슬람 도시의 진수를 완벽하게 구현한다. 아바스 왕조가 지배하는 동안 푸스타트는 점점 그 중요성을 상실해 갔다. 그 대신 알 아스카르(al-Askar)의 북쪽 교외지역이 이를 대체하였다. 이 군사 기지는 점점 더 많은 건물, 이를 테면 통치자의 궁전·가옥·상점·사원 등을 갖추게 되었다. 870년, 신임 통치자 아흐마드 이븐 툴룬(Ahmed Ibn-Tulun)이 아바스 왕조로부터 이집트를 독립시켰다. 그는 북동쪽에 위대한 새 수도인 카타이(al Qatai)를 건설하였다.

하지만 이 도시는 아바스 왕조가 도시를 재점령한 10세기 초에 파괴되었다. 그들은 커다란 앞마당과 교육시설을 갖춘 이븐 툴룬 대모스크를 만들었다. 건물의 우아하게 장식된 아치는 이라크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카이로에서 가장 훌륭한 기념물 중 하나이다. 도시는 10세기 말에 영광의 시절을 맞았다. 이때 이집트는 강력한 시아파 무슬림 왕조인 파티마(Fatimids) 왕조에 점령당하고 있었다. 그들은 새 수도를 만들기로 결정하고, 969년에 도시 알 카히라(al-Qahira)를 건설하였다. 도시 한복판에 이맘(Imam, 종교지도자)의 거주지와 행정기관, 2개의 거대한 파티마 왕궁이 있었지만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오늘날의 아즈하르(al-Azhar) 지구에는 파티마 왕조 시대의 기념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3개의 대문, 도시의 성벽에 있는 거대한 광장 탑, 5개의 사원이 있다. 이들 중 알 하킴(al-Hakim) 모스크는 군사적 사원의 마지막 사례이다. 이곳은 치밀하면서도 수수하다. 주위에 벽을 둘러치면서도 광범위하게 개방된 안뜰을 가졌는데, 중세 건축기술이 잘 반영된 유산이다. 아즈하르 사원은 칼리프 무이즈(Muizz)가 통치하던 970년~972년 사이에 건설되어 신전이자 회합 장소로 쓰였다. 사원에 부속된 대학은 이슬람 연구의 중심지가 되었다. 오늘날 그 외관은 페르시아풍 아치로 된 주랑 현관, 장식된 문들, 거대한 기도실, 레이스 모양으로 조각한 다양한 형태의 첨탑들과 더불어 일련의 장식 계획안의 산물이다.

셀주크 투르크(Seljuk Turks)의 짧은 침입 기간과 십자군의 공격 이후, 이집트는 1172년 아이유브(Ayyubid) 왕조의 창시자인 살라딘(Saladin)의 손에 들어갔다. 카이로의 위대한 전성기는 맘루크(Mamelukes) 왕조의 출현과 함께 왔다. 맘루크는 아이유브 왕조를 대체했고, 1257년까지 권력을 유지하였다. 거대한 돔으로 치장한 최초의 맘루크 사원은 1266년 술탄 바이바르스(Baibars)가 건설한 것이다.

술탄 하산 7세가 건설을 지시한 교육기관 겸 사원이 1356년~1363년에 건설되었다. 중앙의 뜰 주위를 십자형 건설 계획에 따라 개발한 이 인상적인 건물은 예배용 세정식을 위한 분수가 있는 우아한 부속 건물을 포함하고 있으며, 피라미드에서 가져온 재료들로 지었다. 건물의 장엄하고 거대한 외관은 돔과 원래 4개였던 첨탑 중에 파괴되지 않은 한 개의 첨탑에서 느껴지는 찌를 듯한 수직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종교 시설 이외에도 술탄은 ‘죽은 자들의 도시’(City of the Dead)지역에 커다란 공동묘지를 건설하였다. 도시의 동쪽에 있는 거대한 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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