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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이즈미 – 불교 정토 사상을 대표하는 사찰, 정원, 고고 유적군 [Hiraizumi – Temples, Gardens and Archaeological Sites Representing the Buddhist Pure Land]

사진 없음 표시 이미지 히라이즈미 – 불교 정토 사상을 대표하는 사찰, 정원, 고고 유적군

상세정보

  • 국가 일본(Japan)
  • 위치
  • 좌표 N39 0 4|||E141 6 28
  • 등재연도 2011년
  • 등재기준

    기준 (ⅱ) : 히라이즈미의 사원과 정토 정원은 불교와 함께 아시아에서 유입된 정원 조성 개념이 일본의 독특한 자연 숭배 신앙인 신도를 기반으로 해서 어떻게 진화를 했으며, 결과적으로 그것이 일본 고유의 설계, 정원 디자인의 개념으로 어떻게 발전을 했는지를 뚜렷하게 보여 주고 있다. 히라이즈미의 정원과 불당은 일본의 다른 도시들에도 영향을 주었고, 특히 가마쿠라(鎌倉)에는 주손지를 본 따 만든 사찰이 있다.

    기준 (ⅵ) : 히라이즈미의 정토 정원은 동남아시아로의 불교의 보급, 불교와 일본의 토착적인 자연 숭배 신앙과의 독특한 융합,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의 극락정토사상을 명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히라이즈미의 사찰과 정원의 복합체로 이루어지는 유적군은 현세에 있어서의 정토의 구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요약
이 유산은 히라이즈미(平泉), 즉 불교의 정토(淨土) 사상을 대표하는 사찰, 정원, 고고 유적군으로 신성한 긴케이산(金鶏山)을 포함해서 모두 5개의 유적이 있다. 히라이즈미의 도시는 11〜12세기 일본 열도 북부 영역에 있어서 정치, 행정의 중심지였으며, 정치적·경제적으로 교토(京都)와 경쟁 관계에 있었다. 이 영역은 8세기 일본에서 유행했던 불교 정토종(淨土宗)의 우주론에 기반을 두었다. 이것은 내세에서 얻는 마음의 평화뿐만 아니라, 사후에 사람들이 열망하는 정토(淨土)를 제시했다. 정토종은 일본의 토착적인 자연 숭배 신앙인 신도(神道)와 융합해서, 일본 고유의 설계와 정원 디자인 개념을 발전시켰다.
목차
완전성

이 문화유산에는 정토 정원과 함께 사찰 복합체의 잔해, 그리고 이것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는 신성한 긴케이산이 포함된다. 주손지(中尊寺), 모쓰지(毛越寺), 간지자이오인아토(観自在王院跡) 유적이 완벽하게 시각적 유대를 이루고 있는 반면, 무료코인아토(無量光院跡)의 주택과 다른 건물들은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사찰과 문화유산 밖의 완충 지역에 있는 긴케이산 지역과는 시각적 관계가 존재한다. 정토 우주론과 관련 있는 공간적 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이 같은 관계들의 공간적 완전성이 유지될 필요가 있다.

진정성

발굴된 유적의 진정성은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다. 두 곳의 정원은 건축과 식물학적 증거에 관한 면밀한 분석을 기초로 하여 복원되었다. 주손지의 금색당(金色堂)은 주목할 만한 유물이며, 재료와 건축의 진정성을 보장하는 방법으로 훌륭하게 보존되었다. 경관 안에 있는 사찰의 진정성은 현재 사찰을 둘러싸고 있는 콘크리트 건물 때문에 약간 훼손되었다. 문화유산이 가치를 그대로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4개의 사찰이 불교 정토종이라는 심오한 사상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고무적인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보존 및 관리 체계

이 문화유산과 완충 지역은 역사지구, 특별 역사 지구, 경승지 혹은 특별 경승지 등으로 다양하게 지정되면서 잘 보호되어 왔다. 유적과 주변 완충 지역의 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유적이 그 주변 환경과 관계를 가지고 있는 점을 의미 있는 방법으로 입증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서 주변 환경에 명상을 위한 휴식처를 제공한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테현과 관련 지방 정부는 이와테현 문화유산 보존과 이용 증진 위원회를 만들어, 문화유산 관리를 위한 체계를 제공한다.

위원회는 히라이즈미 고고 유적군의 연구 및 보존을 위한 교육위원회의 전문적 자문을 받는다. 보존과 관리를 위한 종합계획이 2007년 1월 시행, 완료되었고, 2010년 1월에 갱신되었다. 매장되어 있는 정원 2곳을 복원하는 사업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평가를 받기 위해 세계문화유산센터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고, 세계문화유산 협약 이행을 위한 실천 지침 172절에 의거해서 세계문화유산위원회의 심리를 받도록 되어 있다. 지방 정부는 지역 단체와 협정을 체결했고, 유산의 순찰을 지역 공동체에게 요청했으며, 보호, 관리, 보존에 관한 제안서를 제출했다.

유산면적
176㏊
완충지역
6,008㏊
참고번호
1277
본문

히라이즈미에는 정토 정원이 4 군데 있다. 그중 세 곳은 신성한 산인 긴케이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정토 사상의 이상과, 정원, 물, 주변 경관의 관계에 관한 일본의 토착적 개념과의 융합을 예증(例證)하고 있다. 2곳의 정원은 발굴 조사에 의해 발견된 수많은 상세 사항에 기초하여 복원된 것이고, 나머지 2곳은 지하에 매장된 채로 남아 있다. 짧은 역사로 끝난 히라이즈미의 도시는 11〜12세기에 일본 열도 북부 영역에 있어서 정치, 행정의 중심지였으며, 정치적·경제적으로 교토와 경쟁했다. 당시의 지배 씨족(氏族)의 북쪽 파벌인 오슈 후지와라(奥州藤原) 일가가 4곳의 정원을 만들었다. 이것은 현세(現世)에 있어서 정토(淨土)의 상징적 표현으로서, 즉 연못, 수목, 긴케이산 정상과 관련하여 불당을 면밀하게 배치함으로써 실체화된 이상향의 광경(光景)으로 조성되었다. 중후하게 금박을 입힌 주손지 (中尊寺)는 12세기부터 남아 있는 유일한 건물이며, 지배 씨족의 막대를 부를 반영하고 있다.

이 지역은 정치, 행정상의 지위를 상실한 1189년에 대부분 파괴되었다. 히라이즈미는 엄청난 번영과 막대한 부를 나타내는 동시에, 극적이면서도 빠른 속도의 몰락을 상징하기도 하여 많은 시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소재가 되었다. 1689년 하이쿠(俳句) 시인인 마쓰오 바쇼(松尾芭蕉)는 ‘영광의 3세대가 꿈의 공간 속으로 사라졌다(夏草や 兵どもが 夢の跡)’라는 의미의 하이쿠를 남겼다. 정토 정원, 현존하는 12세기의 사찰, 신성한 긴케이산과의 관계를 수반하는 사원 불당의 복합체(複合體)는 히라이즈미의 재력을 반영하는 유일한 예이며, 설계와 정원 디자인에 관한 일본인들의 독특한 개념을 나타내 주고 있는데, 이는 다른 지역의 사찰이나 정원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