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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이트의 수도 하투샤 [Hattusha: the Hittite Capital]

  • 제목 : 히타이트의 수도 하투샤
  • 설명 : © UNESCO / Author : Francesco Bandarin
히타이트의 수도 하투샤

상세정보

  • 국가 터키(Turkey)
  • 위치 숭굴루 군(District of Sungurlu)|||초룸 주(Çorum Province)
  • 좌표 N40 0 50.004|||E34 37 14.016
  • 등재연도 1986년
  • 등재기준

    기준 (ⅰ) : 사자의 문, 왕의 문, 부조와 유적이 있는 야질리카야 암벽은 기념물로서 독보적인 예술적 성취를 보여 준다.

    기준 (ⅱ) : 하투샤는 기원전 제2천년기와 기원전 제1천년기의 아나톨리아와 북부 시리아 문명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기준 (ⅲ) : 정치·종교의 중심지로서 왕궁들, 사원들, 교역소와 공동묘지들은 수도를 이해할 수 있는 대강의 그림을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사라진 히타이트 문명의 독특한 증거를 담고 있다.

    기준 (ⅳ) : 하투샤에는 왕실 거주지, 사원과 요새 등의 건물들과 건축 유적들의 여러 형태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요약
옛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였던 하투샤(Hattusha) 고고 유적지는 정돈된 도시 구조, 사원·왕궁 거처·요새 등의 건축 형태가 잘 보존되어 있다. 풍부한 장식이 있는 ‘사자의 문(Lion’s Gate)’과 ‘왕의 문(Royal Gate)’, 그리고 야질리카야(Yazilikaya)의 바위 신전에 새겨진 부조와 같은 예술 유적으로 유명하다. 이 도시는 기원전 제2천년기 아나톨리아와 북부 시리아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다.
목차
유산면적
268㏊
참고번호
377
본문

하투샤는 기원전 제2천년기와 기원전 제1천년기에 아나톨리아와 북부 시리아 문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정치·종교의 중심지였던 이 대도시에 있는 왕궁 거처·사원·교역소·공동묘지 등의 형태를 통해 옛 수도가 어떠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동시에 이들 유적은 사라진 히타이트 문명의 독특한 증거를 담고 있다. 사자의 문, 왕의 문, 부조 작품 등과 야질리카야 바위 예술이 줄지어 있는 요새 도시는 유적과 기념물들의 독특한 예술적 성취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앙카라의 동쪽으로 200㎞ 떨어진 고지대 아나톨리아의 장엄한 평원을 배경으로 한 고대 하투샤는 오늘날 보가즈쾨이(Bogazköy, Bogâzkale) 마을에 있으며 히타이트의 위대한 수도였다. 아시리아 교역인들에게 정착이 허가되었던 경우들과 마찬가지로 기원전 제3천년기 말 무렵에는 특별히 히타이트 이전에 살았던 정착민이 이곳에 살고 있었다.

명문에 따르면 이 도시가 그 이후 하투스(Hattush, 하투슈)로 불렸고, 기원전 1720년 무렵 히타이트 군주 아니타(Anitta)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한다. 기원전 18세기와 기원전 12세기, 역사 속에서 온갖 복잡한 우여곡절을 겪은 하투샤는 오늘날까지 온전하게 남은 것은 없고 석재 기념물의 흔적만이 밀집하여 당시를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

1834년에 발견된 유적지는 1906년까지 본격적으로 발굴되지 않다가, 하투실리 3세(Hattushili Ⅲ)와 람세스 2세(Ramses Ⅱ) 사이에 맺어진 평화조약 사본이 발견되면서 하투샤에 대해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독일과 터키 고고학자들이 공동으로 연구하면서 히타이트의 수도에 대한 정보는 획기적인 진전을 이루었다. 독일 고고학회에서는 장기간의 고고학적 연구 계획의 모델로 하투샤를 탐사했으며, 하투샤는 출판의 주인공으로 떠올랐고 주기적으로 전문적 이슈로 등장했다.

경사면 너머에 펼쳐진 하투샤의 가장 넓은 곳은 남북으로 2.1㎞, 동서로 1.3㎞가 펼쳐진 평탄하지 않은 고원 지역이다. 기원전 13세기 도시는 대략 8㎞의 둘레에 이중 성벽을 쌓았던 듯하다. 왕의 문에서 1.5㎞ 떨어진 카얄리 보야즈(Kayalı Boğäz) 전초기지는 성벽 동쪽 끝에 건설되어 도시를 보호했다. 성벽 너머 북쪽으로 스만카야시(Osmankayası)와 야질리카야 거석 보호지역 안에는 공동묘지가 있었다. 부조로 장식된 야질리카야의 바위 예술은 히타이트 예술의 걸작이라는 점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성벽 안쪽에 가장 인상적인 유적들이 동쪽과 서쪽 지역에 놓여 있고, 초기 히타이트 요새들은 땅 밑 관문들과 함께 있다. 이 도시는 2개의 층으로 건설되었다. 북서쪽으로는, 유적의 일부인 보가즈쾨이 마을과 멀지 않은 지역에 로어 타운(lower town)이 있다. 가장 놀라운 기념물은 대사원이다. 대사원은 폭풍의 신과 태양의 여신인 아린나(Arinna)에게 봉헌한 것으로 상점을 포함해 늘어선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이 지역에서 수천 개의 설형문자 점토판이 발견되었다. 신전에서 조금 북쪽으로는 중앙 안뜰을 주변으로 아시리아 정착민들의 카룸(karum, 시장)과 가옥이 있다. 이 건물들의 일부는 히타이트 이전 시기에 건축된 것이다.

남쪽으로는 어퍼 시티(upper city)가 있는데 복잡한 배치이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뷔유쾨이의 왕족의 거주지인데, 진정한 궁전-요새가 주봉 위에 횃대처럼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서쪽의 ‘사자의 문’과 동쪽의 ‘왕의 문(5개의 원래 있었던 기념비적 출입문의 흔적 중에 유일하게 잘 보존된)’ 사이에 있으며 요새화된 중요 지역이다. 여기에서 똑바로 뻗어 있으며 보존 상태가 가장 좋은 이중벽이 발견되었다. 이 벽은 하투샤, 거주용 쿼터(숙소)들, 왕궁, 4개의 사원을 보호하는 기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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