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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라 [Hatra]

  • 하트라
  • 제목 : 하트라
  • 설명 : © UNESCO / Author : Véronique Dauge
하트라

상세정보

  • 국가 이라크(Iraq)
  • 위치 니나와 시(Governorate of Ninawa)
  • 좌표 N35 35 17.016|||E42 43 5.988
  • 등재연도 1985년
  • 등재기준

    기준 (ⅱ) : 아치형 천장이 있는 방의 완전성으로 유명한 하트라 성역의 거대한 이완(Iwan)과 성스러운 담 밖에 흩어져 있는 13개의 작은 사원들은 이슬람 시대까지 이 지역의 건축에 오래도록 영향을 미쳤다.

    기준 (ⅲ) : 하트라는 기념물과 비문 덕분에 그리스와 파르티아, 로마, 아라비아의 영향을 받은, 아시리아에서 바빌로니아에 이르는 전체 윤곽을 볼 수 있는 뛰어난 증거물이다.

    기준 (ⅳ) : 하트라는 크테시폰, 피루자바드, 진지를리 등 동쪽의 원형 요새 계획을 따라 만들어진 도시 가운데 대표적 유적이다. 전인미답의 환경에서 이중벽을 구축하는 등 완벽한 조건을 갖춘 하트라는 파르티아 제국과 사산 왕조, 고대 이슬람 문명을 아우르는 구조물의 대표적인 예로 평가된다.

요약
파르티아(Parthia) 제국의 거대한 요새 도시이자 최초의 아랍 왕국의 수도였던 하트라(Hatra)는 탑으로 보강한 높고 두꺼운 벽 덕분에 116년과 198년, 로마 제국의 습격을 받고도 견뎌낼 수 있었다. 도시 유적 중에서 특히 헬레니즘과 로마의 건축양식은 동방(파르티아)의 화려한 장식과 융합되어 있어서 파르티아 문명의 위대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목차
유산면적
324㏊
참고번호
277rev
본문

하트라는 크테시폰(Ctesiphon), 피루자바드(Firouzabad), 진지를리(Zingirli) 같은 동방의 원형(圓形) 요새 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도시 중 대표적인 유적이다. 전인미답의 환경에서 이중벽을 구축하는 등 완벽한 조건을 갖춘 하트라는 파르티아 제국과 사산 왕조, 초기 이슬람 문명을 망라하는 일련의 건축들 가운데 뛰어난 사례이다. 게다가 하트라는 그리스와 파르티아, 로마, 아라비아의 영향을 받은, 아시리아에서 바빌로니아로 이어지는 문명의 전체 윤곽을 보여 주는 특별한 증거물이다.

하트라의 건설 시기를 명백하게 언급한 기록은 별로 없지만, 아시리아의 작은 정착지가 기원전 3세기에 요새이자 무역 중심지로 변했던 것으로 보인다. 코라산(Khorasan) 족에서 온 유목 기마 민족이 세운 아르사크 왕조(Arsacid dynasty, 기원전 247~서기 226)의 파르티아 제국은 키루스(Cyrus) 대왕이 초석을 마련한 아케메네스(Achaemenes) 제국의 계승자임을 자처하였다. 기원전 2세기에 파르티아 제국은 유명한 동방 실크로드의 주요 중간 기착지로 번영을 누렸다. 그에 따라 시리아의 팔미라(Palmyra), 요르단의 페트라(Petra), 레바논의 바알베크(Baalbek) 같은 거대한 아랍 도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로마는 이 동방의 군주국은 눈독 들였으나, 로마 제국은 이곳을 완전히 파괴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함께 거대한 요새 도시 하트라의 유적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옛 제국을 망가뜨린 파르티아·로마에 맞서 싸운 저항의 상징으로 간주되었다. 하트라 유적은 모술에서 남서쪽으로 110㎞ 떨어진 사막 한가운데서 볼 수 있다. 하트라는 116년 로마의 트라야누스(Trajan, 이듬해 실리시아에서 사망했다) 황제의 침입을 받았으나 이를 잘 막아냈다. 하트라는 198년에 다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Septimius Severus) 황제에 맞서 저항했다. 하지만 셉티미우스 황제는 크테시폰을 점령하고 메소포타미아를 합병한 뒤 로마에서 파르티쿠스 막시무스(Parthicus Maximus)라는 칭호를 받았다. 몇몇 건축과 비문을 보면 로마 점령의 형태 또는 230년대에 로마와 하트라 동맹을 맺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고르디아누스 3세(Gordianus III) 황제의 통치를 보여주는 비문들도 있다. 하트라는 따라서 당시 로마 제국의 가장 변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얼마 안 있어 하트라는 사산 왕조의 창건자인 아르다시르 1세(Ardashir I, 재위 226년~242년)에 의해 파괴되었다.

오늘날 남아 있는 유적의 기원은 기원전 1세기와 기원후 2세기 사이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시 유적, 그중에서도 특히 헬레니즘과 로마의 건축양식이 동방의 장식적인 특징과 섞인 사원들은 그 문명의 위대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요새들은 웅장했다. 하트라의 방어 시설은 넓은 도랑(ditch)으로 나뉜 2개의 벽으로 구성된다. 외벽은 흙담이며 내벽은 돌로 만들어져 있고, 동서남북 4개의 기본 방위와 대략적으로 일치하는 4개의 요새 정문이 있다. 지금은 2㎞쯤 되는 이 원형 도시의 심장부에 직사각형의 성역이 동서 방향으로 놓여 있다. 하트라는 중간 중간 탑이 있는 돌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북서쪽 벽은 도시를 2개의 불균등한 공간으로 나눈다. 이 성역(서쪽 공간에 사원이 더 집중되어 있다)의 기능은 종교적, 상업적 역할을 겸했던 것으로 보인다. 벽기둥이 있는 주랑 현관을 바라보는 상점들은 직사각형의 4면 각각에서 모두 발견되어 왔다.

하트라의 가장 중심부에는 몇몇 신들을 모신 사원 복합 단지가 놓여 있다. 신들 가운데 최고의 신은 샤마슈(Shamash, 고대 메소포타미아 태양신)이다. 156년경 하트라는 아라비아 통치자가 지배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왕은 하트라 최초의 두 왕인 라자슈(Lajash)와 사나트루크(Sanatruq)의 아버지인 나스르(Nasr)였다. 사나트루크는 샤마슈 사원을 완성했다. 유적지에서는 아폴로(하트라 종교의 발마린(Balmarin)), 포세이돈, 에로스, 헤르메스, 티케(Tyche, 하트라의 수호신), 포르투나(Fortuna)의 조각상 등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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