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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로라 석굴 [Ellora Caves]

사진 없음 표시 이미지 엘로라 석굴

상세정보

  • 국가 인도(India)
  • 위치 마하라슈트라 주(Maharashtra State)|||아우랑가바드 지구(Aurangabad District)|||쿨라타바드 자치구(Khulatabad Taluk)|||베룰 마을(Verul Village)
  • 좌표 N20 1 35.004|||E75 10 45.012
  • 등재연도 1983년
  • 등재기준

    기준 (ⅰ) : 엘로라의 앙상블은 인간의 창조적인 우수성을 나타내는 걸작으로 특유의 예술적 업적을 잘 드러낸다. 석굴을 개굴하는 작업만 고려한다면 카일라샤 사원 같은 기념물은 비교할 대상이 없을 만큼 기술적 위업이 뛰어나다. 건설된 건축에서 모형을 변경한 이 사원은 수준 높은 조형적 특성과 훌륭한 설계를 바탕으로 채색되고 조각된 형상이 보여주는 뛰어난 레퍼토리를 간직하고 있다.

    기준 (ⅲ) : 엘로라는 600년~1000년까지 지속적으로 건축된 기념물로, 고대 인도문명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기준 (ⅵ) : 엘로라 석굴은 불교·브라만교·자이나교가 섞여 있다는 증거일 뿐만 아니라 한 장소에 신전과 공동체를 조성하기 위해 규모가 큰 세 종교를 인정하고, 보편적 가치 강화에 기여한 고대 인도의 특징인 관용의 정신을 잘 나타낸다.

요약
마하라슈트라(Maharashtra) 주(州)의 아우랑가바드(Aurangabad)에서 멀지 않은 곳에 2㎞ 넘게 펼쳐진 수도원 34개와 사원은 높은 현무암 절벽을 단계적으로 파서 만들었다. 600년~1000년까지 지속적으로 작업한 기념물로 이루어진 엘로라(Ellora)는 고대 인도 문명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엘로라 밀집 지역에는 특유의 예술적 창조와 기술적 개발은 물론 불교·힌두교·자이나교를 신봉하는 신전들이 있었는데, 고대 인도의 특징인 관용 정신을 잘 나타낸다.
목차
참고번호
243
본문

엘로라 석굴은 불교·브라만교·자이나교가 혼재한다는 증거이다. 이것은 한 장소에 각 종교의 신전과 공동체를 조성하기 위해 규모가 큰 세 종교를 인정하고 보편적 가치 강화에 기여한 고대 인도의 특징인 관용 정신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엘로라는 600년~1000년까지 지속적으로 건축한 기념물로 이루어져 고대인도 문명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이 석굴의 앙상블은 인도 중세 시대의 예술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것으로 간주된다.

석굴을 처음 만들 때부터 규모가 큰 세 종교의 의견을 평화롭게 석굴에 반영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 뛰어난 석굴은 탁월한 부조, 조각, 건축물을 보기 위해 찾을 만한 곳이다. 아잔타처럼 한 가지 신앙을 표현한 게 아니라 고대 인도의 주요한 세 종교가 섞여 나타난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가치가 있다. 석굴은 절벽을 따라 남쪽에서 북쪽으로 펼쳐졌으며, 600년~800년쯤 만들어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불교 사원군에서는 석굴 12개가 발견되었다.

수도원과 단독의 큰 사원(10번 석굴), 600년~900년경 ‘10명의 화신 동굴’을 보유한(석굴 15번) 엘로라로 가장 잘 알려진 브라만 사원군의 석굴, 특히 크리슈나 1세(Krishna I, 757~783) 통치 아래 착공된 것 가운데 가장 거대한 카일라샤(Kailasha) 사원(16번 석굴), 마지막으로 800년~1000년경 공의파 분파에 따라 조성된 사원인 자이나교 사원군(30~34번 석굴), 가장 후대에 개굴된 자이나교 석굴 등은 이미 존재하는 엘로라의 예술에서 영감을 받았다. 32번 석굴은 카일라샤 사원의 특정 성향을 떠올리게 한다.

불교 사원군은 그 지역에 대승불교가 번성할 때인 5세기~7세기에 개굴되었다. 그중에서도 5번 석굴이 가장 넓게 조성되었다. 신전이 있는 10번 석굴은 비스바카르마(Visvakarma)로 널리 알려졌다. 회랑을 매우 아름답게 장식한 외관과 신전에는 부처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형상화한 불탑(스투파)이 있다. 12번 석굴 또는 틴 탈라(Tin Tala)의 역사적 가치는 공을 들인 솜씨에 있다. 이는 바위 안에 3개 층을 직접 깎아 지었고, 바닥과 천장이 매끄럽고 평평하게 조성된 사실에서 알 수 있다. 틴 탈라 석굴은 수도실을 포함해 수도원 겸 예배당이었다. 8세기 중반 라슈트라쿠타(Rashtrakuta) 왕조 때에 조성한 것으로 짐작한다.

브라만교 사원군은 대부분 사이바이트(Saivite) 분파에 속한다. 카일라사(16번 석굴)는 완벽한 균형감, 정교한 세공, 장식물 조각 덕분에 인도에서 돌을 깎아 만든 사원의 탁월한 사례로 꼽힌다. 16번 석굴은 라슈트리쿠타 왕조 기간 크리슈나 1세부터 만들어 시바 신에게 봉헌하였다. 시바라는 이름은 히말라야 산맥 위의 집인 설봉 카일라사에서 유래하였다.

모든 사원은 드라비다 양식의 시카라(sikhara)가 조성된 현관 뒤편에 남근상이 있는 신전과 기둥 16개가 받치는 평평한 지붕인 만다파(mandapa)로 구성되었다. 야외 마당으로 둘러싸인 난디 사당의 분리된 현관은 낮은 고푸라(gopura, 사원 입구에 세운 피라미드형의 큰 탑)를 통해 들어간다. 모든 힘을 다해 시바신의 거처였던 카일라사 산에 오르려고 하는 라바나의 위대한 조각은 인도 예술의 중요한 역사적 기념물이다. 자이나교 사원군은 규모가 상당히 크고 균형이 잘 잡혔으며 훌륭하게 장식되었다. 또 활기 넘치는 엘로라의 막바지 모습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