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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에밀라 [Djémila]

  • 제목 : 지에밀라
  • 설명 : © UNESCO / Author : Yvon Fruneau
지에밀라

상세정보

  • 국가 알제리(Algeria)
  • 위치 세티프의 윌라야 지역(Wilaya province of Setif)
  • 좌표 N36 19 14.016|||E5 44 12.012
  • 등재연도 1982년
  • 등재기준

    기준 (ⅲ) : 지에밀라 고고 유적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로마의 유적 중 하나로, 사라진 옛 문명을 보여 주는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사례이다. 고고학적 흔적과 로마식 도시 계획, 주변 환경과의 조화로움이 이 유적의 가치이다.

    기준 (ⅳ) : 2~6세기 북부 아프리카의 로마 역사에서 중요한 단계를 보여 주는 건축학적 조화를 이룬 훌륭한 사례이다. 로마식 도시 계획의 전형적인 공식이 이곳의 제한된 공간에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방어 체제와 개선문, 공공 편의 시설과 극장 건물, 도시의 놀라운 경제 번영의 증거를 보여 주는 코시누스 형제의 시장(market of the Cosinus brothers)을 포함한 상업 시설과 수공업 시설 등 매우 다양한 건축학적 요소들이 존재한다.

요약
해발 고도 900m에 있는 지에밀라는 로마 제국의 식민도시로 건설되었다. 당시에 건설된 광장, 사원, 바실리카, 개선문, 가옥 등이 현존하고 있어, 산악지역에 로마의 도시 계획이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목차
탁월한 보편적 가치

지에밀라(Djémila) 고고 유적은 세티프(Setif)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50㎞ 떨어진 곳에 있다. ‘쿠이쿨(Cuicul)’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지에밀라는 네르바 황제의 재위 기간(96~98)에 설립된 고대 로마의 식민지이다. 지에밀라는 와디 구에거(wadi Guergour)와 와디 베타메(wadi Betame)라는 두 강 사이에 있는 표고 900m 위에 펼쳐진 암석 돌출부 위에 건설되어 훌륭한 방어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지형적인 제약에도 불구하고, 지에밀라는 로마식 도시 계획의 공식을 산악지역에 훌륭히 적용하여 북아프리카에서 로마식 건축을 꽃피운 흥미로운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도시 내에 의회와 공공 광장이 있고, 약 3세기 초에 셉티무스 세베루스 사원(Septimius Severus Temple), 카라칼라 개선문(Caracalla triumphal arch), 시장, 바실리카가 건설되면서 도시는 성벽 너머로 더욱 확장되었다. 초기 기독교 시기를 보여 주는 대성당과 교회, 세례당 등의 건축물에는 신화와 일상생활의 장면을 보여 주는 인상적인 모자이크 포석이 다수 남아 있다.

완전성

세계 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될 당시 지에밀라 고고 유적은 표시된 경계에 따라 담장이 조성되었다. 이 유적은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보여 주는 모든 요소를 두루 지니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로마 도시 계획의 전형적인 공식인 카르도 막시무스(Cardo Maximus, 남북 간 대로)의 양 끝에 위치한 두 성문을 포함해, 중심부에 있는 공공 광장 카피톨리움(Capitoleum), 쿠리아(Curia, 종교적 예배 장소, 원로원의 의사당 등을 지칭), 공공 바실리카 등 공공 생활에 필수적인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다.

베누스 제니트릭스 신전(Temple of Venus Genitrix)의 유적과 모자이크로 화려하게 장식된 귀족 저택의 흔적도 볼 수 있다. 남쪽으로 도시를 확장했다는 것을 기록한 기념물의 흔적도 이 유적에 포함되며, 개인 주거 공간과 카라칼라 개선문(Arch of Caracalla, 216), 겐스 셉티미아 신전(Temple of Gens Septimia, 229), 3,000석 규모의 극장과 목욕탕, 바실리카, 종교적 건물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고고학적 흔적은 놀랍게도 몇 세기 동안 온전하게 유지되어 왔다. 이곳에 대한 관광으로 유적지의 보존이 위협받고 있지는 않지만, 지진과 가뭄, 화재, 기물 파괴, 약탈, 불법 방목, 불법 건축 및 불완전한 기반 시설 등은 이 유적을 위협하는 요소들이다.

진정성

1909년부터 발굴된 고고학적 흔적을 통해 로마의 도시 계획에 대한 뚜렷한 특징적 증거를 확인할 수 있다. 로마의 도시 계획 구성요소는 도심에 대한 전형적인 계획과 건축기법 그리고 장식들과 건설 자재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도시 계획과 건축기법에는 도로, 성문, 수로, 기둥이 있는 성전과 극장 등에서 찾을 수 있고, 로마의 장식적 특징은 얕은 돋을새김, 정원의 테두리, 페디먼트(pediment), 기둥머리, 모자이크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건설자재에 있어 로마의 건축적 특징은 석재, 도자기, 모자이크 등을 이용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증거들은 이 유산의 탁월하고도 보편적인 가치를 보여 준다. 유적지에 있는 모자이크에 대한 일부 복원 작업이 최근 몇 년 동안 진행되어 왔다.

보존 및 관리 체계

이 유적의 보호와 관련된 국법 ‘90-30(1990)’과 ‘98-04(1998)’은 알제리의 문화유산 보호에 중점을 두고 있다. 유적의 관리는 문화유산관리 이용실(OGEBC, Office of Cultural Properties Management and Exploitation)이 담당하고 있고 일상적 관리는 유적 관리자가 책임진다. 문화유산관리 이용실은 공공 서비스 수요 측면의 보호, 보존 및 공개를 담당하고 있으며 세티프의 윌라야 문화보호국과 조율하여 이곳에 대한 보호 계획 및 공개(PPMVSA, protection plan and presentation of the site)를 실행하고, 문화유산을 보존 및 공개하는 서비스를 책임지고 있다.

이제까지 이 유산에 대한 보호 대책은 주로 유적 주위에 담을 세우고 손상된 모자이크를 복원하며, 유적지의 박물관을 개선(현재 완료된 상태)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 현재의 규정과 함께 이 유적에 대한 정기적인 모니터링 활동을 집행하는 것도 앞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유적 상태의 악화로 인해 손상되기 쉬운 고고학적 구조물(낮은 벽)이 점점 더 증가되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이곳의 가치는 잘 보존된 상태이다. 이 유적에 대한 관리 계획 및 공개는 매년 갱신되는데,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자금과 국제적 지원이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 매년 3만 명의 방문객 및 약 15,000명의 학생들이 이 유적을 방문하고 있다.

유산면적
31㏊
참고번호
191
본문

지에밀라 고고 유적은 로마 문명에 대한 뛰어난 증거로서 포룸, 사원, 바실리카, 개선문, 가옥 등을 통해 로마 문화를 대표하는 건축적 조화의 훌륭한 사례를 보여 준다. 지에밀라는 또한 로마식 도시 계획의 공식을 산악지역에 훌륭히 적용시킨 흥미로운 본보기이다. 로마의 식민지였던 쿠이쿨은 네르바 황제의 짧은 재위 기간(96~98) 동안 현재의 유적지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베르베르족에 기원을 둔 이름인 쿠이쿨의 초기 도시는 와디 구에거와 와디 베타메라는 두 강 사이에 있는 표고 900m 위에 펼쳐진 암석 돌출부 위에 세워져 놀라운 방어 위치를 점유하였다. 이런 지형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지에밀라는 로마식 도시 계획의 공식을 산악지역에 훌륭히 적용하여 도시의 근간이 되는 카르도 막시무스의 양 끝에 2개의 성문이 있고, 중앙에 있는 공공 광장은 북쪽으로 카피톨리움, 동쪽으로 쿠리아, 서쪽으로 시민 바실리카(줄리아 바실리카)에 둘러싸여 있다. 이들 건물은 공공 생활에 필요한 건물들이다.

귀족의 주택은 화려한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고, 이 모자이크에서 ‘암피트리테의 집(House of Amphitrite)’ 또는 ‘유로파의 집(House of Europa)’ 등 현재 그 주택의 이름을 따오게 되었다. 이들 주택은 2세기 동안 중앙 구역에서 증가했으며, 이 구역에는 비너스 신전과 마켈룸(macellum, 지붕이나 덮개가 있는 시장)도 있었다. 그러나 성벽에 의해 제한된 비좁은 방어 상황은 도시가 발전하는 데 방해가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2세기 중반에 도시는 남쪽으로 확장되었고 공공건물 및 민간 주택이 많은 새로운 구역이 형성되었다.

카라칼라 개선문, 세베루스 가족의 신전, 새로운 공공 광장, 안토니우스 피우스(Antoninus Pius) 치하에 완성된 극장이 세워졌고, 코모두스 황제 때 목욕탕이 건설되었다. 고전 시기의 건물 가운데 바실리카 베스티아리아(Basilica Vestiaria, 의류 시장)와 고대 로마의 메타 수단스(Meta Sudans)를 작은 규모로 복제한 분수가 주목할 만하다. 기독교는 초기에 남쪽 구역으로 전파되었으며, 그 지역에 2개의 바실리카와 세례당, 예배당과 주택들, 주교 및 사제들의 거처 등 교회 건물의 유적을 남겼다. 반달족은 짧은 기간 동안 이곳에 머물렀고, 553년에는 비잔티움은 이 도시를 탈환했다. 오랫동안 버려졌던 이 유적지에 대한 발굴은 1909년에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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