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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미안 계곡의 문화 경관과 고고 유적 [Cultural Landscape and Archaeological Remains of the Bamiyan Valley]

  • 제목 : 바미안 계곡의 문화 경관과 고고 유적
  • 설명 : © UNESCO / Author : Graciela Gonzalez Brigas
바미안 계곡의 문화 경관과 고고 유적

상세정보

  • 국가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
  • 위치 바미안 지방(Bamiyan District), 바미안 주(Bamiyan Province)
  • 좌표 N34 50 48.984|||E67 49 30.9
  • 등재연도 2003년
  • 등재기준

    기준 (ⅰ) : 바미안 계곡의 불상들과 석굴 미술은 중앙아시아 지역 내 불교 미술 중에서 간다라 학파 미술을 탁월하게 대표한다.

    기준 (ⅱ) : 바미안 계곡의 미술적·건축적 유적들과 실크로드 상의 중요한 불교 중심지 등은 인도, 헬레니즘, 로마, 사산 등과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형성되었음을 알리는 독보적 증거이다. 이런 상호 작용은 간다라 학파의 독특한 미술적 표현을 발달시키는 토대가 되었다. 게다가 지역 문화에 후기 이슬람의 영향까지 추가된다면 더욱 독특한 문화유산이 될 것이다.

    기준 (ⅲ) : 바미안 계곡은 중앙아시아 지역의 사라져 버린 문화적 전통에 대한 유례없는 증언을 해 주고 있다.

    기준 (ⅳ) : 바미안 계곡은 불교의 융성기를 보여 주는 탁월한 문화 경관의 예이다.

    기준 (ⅵ) : 바미안 계곡은 서부 지역 불교 중에서 최고의 기념비적 표현물이다. 여러 세기에 걸쳐 중요한 순례의 중심지였던 상징적인 가치 때문에,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2001년의 고의적인 파괴를 비롯해 여러 시대에 걸쳐 수난을 겪어 왔다.

요약
바미안(Bāmiān) 계곡의 유적은 간다라 양식의 불교 미술을 발전시킨 고대 박트리아(Bakhtria, Bactria) 왕국이 1~13세기에 걸쳐 이룬 주변 문화에 영향을 주며 이룩한 예술적·종교적 성과를 뚜렷하게 보여 준다. 이 지역에는 수많은 불교 사원, 신전 및 이슬람 통치 시대의 요새 건축물들이 있다. 또한 2001년 3월 탈레반(Taleban, 무장 이슬람 정치 단체)이 마애석불입상 2개를 파괴하여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목차
탁월한 보편적 가치

아프가니스탄 중앙 고원 지대의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으로 에워싸여 있는 바미안 계곡은 북쪽으로 길게 뻗은 높은 바위 절벽과 접해 있는 넓은 분지에 있다. 바미안 계곡의 문화 경관과 고고 유적은 계곡 지류를 따라 8군데의 유적지로 구성된 연속 유산이다. 바미안 절벽(Bamiyan Cliffs)에는 높이 각각 55m와 38m의 거대한 두 마애불상이 조각되어 있으며(2001년 탈레반에 의해 파괴되었다), 계곡 기슭을 따라 3~5세기에 조성된 수많은 석굴들에는 불교 사원, 예배당, 신전들이 모여 있다.

주로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는 석굴과 니치(niche, 두꺼운 벽면을 파서 만든 장식용 움푹한 대)에는 벽화와 마애석불좌상이 남아 있다. 바미안 강 지류의 계곡에는 6~13세기에 만들어진 100여 개의 석굴을 포함하는 카크라크 계곡의 석굴(Kakrak Valley Caves)이 있다. 바미안 절벽에서 남동 방향으로 약 3㎞ 지점에는 석불 입상(높이 10m)의 파편과 사산 왕조 때의 벽화 장식 흔적을 볼 수 있는 신전 잔해가 있다. 바미안 절벽 남서 방향 약 2㎞ 지점의 풀라디 계곡(Fuladi valley)을 따라 있는 쿨리 아크람(Qoul-I Akram) 석굴과 칼라이 가마이(Kalai Ghamai) 석굴에도 벽화 장식이 남아 있다.

거대한 절벽의 남쪽에 있는 계곡 분지 중앙에는 샤흐리 굴굴라(Shahr-i Ghulghulah) 요새 유적지가 있다. 6~10세기에 만들어진 이 요새는 고대의 박트리아를 거쳐 중국과 인도를 연결하는 비단길(Silk Route)의 지선 위에 있어, 이곳에서 여행자들은 숙박을 하였다. 이로 미루어보아 이곳이 바미안 사람들의 본래 정착촌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바미안 계곡을 따라 동쪽으로 더 가면 칼라이 카파리(Qallai Kaphari)의 2개의 요새와 성 군락, A군락과 B군락이 있다. A군락과 B군락에는 6~8세기에 조성된 성벽과 정착촌 유적이 있고, 바미안 계곡의 동쪽으로 약 15㎞ 정도 좀더 가면 이슬람의 가즈나비드 왕조(Ghaznavid dynast)와 고르 왕조(Ghorid dynast)가 통치한 시기인 10~13세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샤흐리 주하크(Shahr-i Zuhak)가 있다.

바미안 계곡의 문화 경관 및 고고 유적은 1~13세기 간다라 양식의 불교 미술에 다양하게 영향을 미친 고대 박트리아 왕국의 예술적·종교적 성과를 볼 수 있는 대표적 유적지이다. 이 지역에는 수많은 불교 사원, 신전과 이슬람통치 시대의 요새 건축물들이 있으며, 이것은 인도·그리스·로마·사산 왕조·이슬람 등의 문화적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또한 이 유적지는 우상 숭배 예술에 대한 반발이 잦은 곳으로, 가장 최근인 2001년 3월에는 마애석불입상 2개를 고의로 파괴하여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았다.

완전성

바미안 계곡의 유산 자원들은 갖가지 수난을 당하여 일부는 취약한 상태에 있다. 유산의 완전성에 가장 큰 손실을 끼친 것은 2001년의 마애석불입상 파괴 사건이었다. 그러나 거대한 불상 조각이 있는 바미안 계곡의 거대한 불교 사원을 비롯하여, 유적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보여 주는 중요한 특징인 불교 및 이슬람 건축 양식, 바미안 경관 및 환경은 유산의 경계 안에 있는 8개 유적지 모두에서 온전히 보전되어 있다.

진정성

바미안 계곡의 문화 경관과 고고 유적은 그 역사의 서로 다른 문화적 발달 단계를 연속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문화 경관으로서 보면 바미안 계곡은 예술과 건축 유적이 많으며, 전통적 토지 사용과 단순한 진흙 벽돌을 사용한 건축물이 형식과 재료, 위치, 환경의 측면에서 그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개발에 직면하여 취약한 상태에 있으므로 세심한 관리와 보존이 필요하다.

역사적 배경

아프가니스탄은 페르시아 제국 아르케메네스 왕조의 여러 주(州) 가운데 하나인 고대의 박트리아였다. 당시 이 지역은 알렉산더 대왕과 셀레우코스 왕조, 그리고 인도 북부의 마우리아 왕조의 통치를 받았다. 유목 부족 집단이었던 쿠샨 족이 BC 2세기부터 지배하며 AD 2세기에는 전성기에 이르렀다. 사산 족이 3세기 중반부터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였으며, 중앙아시아 유목민족은 5세기에, 사산 족과 서투르크 인들이 6세기 중반에 권력을 차지하였다. 아프가니스탄은 실크로드가 통과하는 곳으로 1세기에 이 지역에 인도로부터 불교가 전파되었다. 쿠샨 족은 예술과 종교의 애호자들로서 박트리아의 양식에 불교 예술을 들여온 장본인들이며, 헬레니즘 예술과 사산 예술의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11세기에는 이슬람 예술과 건축술이 바미안에 도입되었으며, 당시는 아프가니스탄의 중심지가 카즈나(Chazna)의 술탄 마무드(Mahmud)의 통치하에 있었다(998~1030). 바미안 도시는 이란의 코라산(Khorassan) 지역을 모델로 하여 설계되었다. 구리드 왕조(Ghurids, Ghurid Dynasty)의 통치 하에서(1155~1212) 샤흐리 바미안(Shahr-i Bamiyan, 후에 Ghulghulah가 됨), 샤흐리 주하크, 그리고 샤흐리 코사크라는 요새화된 정착촌이 발달하였다. 13세기 초에 칭기즈 칸(Chingiz Khan)의 군대가 바미안 도시를 파괴하고 불교 사원을 약탈하였다.

인도 무굴 제국의 황제 아우랑제브(Aurangzeb, 1618~1707)가 그의 군대로 하여금 대석불의 다리 부분을 파괴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이 계곡은 오랫동안 버려져 있었으나, 19세기 말에 가축을 위한 피난처로 이곳의 석굴을 이용하였다. 1979년에는 바미안 도시에 거주하는 인구가 7,000명이 넘었다. 1970년대부터 이 지역을 군대가 이용하였다. 1990년대에는 이곳에서 무장 충돌이 일어났으며, 2001년에 탈레반에 의해서 대불상이 파괴되었다.

보존 및 관리 체계

바미안 계곡의 기념물과 고고 유적은 아프가니스탄 국가 소유의 공공재산이지만 완충지역에 있는 많은 부분은 사유지이다. 소유권을 규정하는 많은 문서들이 수십 년간의 무력충돌과 내전을 겪는 와중에 사라졌으며, 현재 다시 소유권을 설정하고 있다. 역사문화유산보호법이(2004년 5월 21일, 사법부) 시행 중으로 재정과 기술 지원의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연속 유산의 관리는 정보문화부와 그 관련부서(고고학 연구소와 역사기념물보존부서), 그리고 바미안 주정부의 관할 하에 있다. 정보문화부는 바미안에 지방대표사무소를 두고 있다. 공공 기물 파손과 약탈을 방지하기 위해 유적 보호의 특수 임무를 띤 8개 경비대를 두고 있고, 문화유산 보호에 전념하는 경찰 파견대의 형태로 내무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경찰부대 012). 현재 관리 체계는 일시적인 것이며 국제사회로부터 도움을 받아 적절한 행정적·과학적·기술적 자원을 제공받고 있다. 2003년 이후로 유네스코가 이 유산을 위한 3단계의 안전 보호 계획을 주도하고 있다.

불상이 있는 니치의 정비와 불상 파괴 후 남아 있는 인공물의 보호, 그리고 유적의 안전유지에 초점을 두고, 특히 유적지의 지뢰 제거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바미안 계곡의 보호와 보존을 위한 프로그램의 마련 및 시행, 고고 유적지의 탐사와 발굴 착수, 계곡의 지속가능한 문화적 관광 프로그램의 마련 및 시행을 목적으로 유산의 관리계획을 준비 중에 있다. 주 정부는 주택 재개발, 보건 및 교육 서비스 제공, 사회 기반 시설과 농업 발달을 비롯한 지역 개발 계획의 시행에 책임을 지고 있다.

2011년 3월에 유네스코가 주최한 제9회 바미안 전문가 실무진 회의에서 아프가니스탄 관리들과 국제 전문가들이 이 세계유산 유적이 2013년까지 위험에 처한 세계문화유산 목록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그때까지 보안 위험, 2개의 거대 불상 조각과 그 니치, 유물의 구조적 안정성, 고고 유적과 벽화의 보존, 관리계획 시행을 지속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유산면적
159㏊
완충지역
342㏊
참고번호
208rev
본문

바미안 계곡은 카불에서 서쪽으로 약 264㎞ 지점에 있으며, 높은 힌두쿠시 산맥으로 에워싸인 아프가니스탄 중앙 고지대에 있다. 고도 2,500m의 계곡을 따라 바미안 강이 흐른다. 이곳은 실크로드 지선 중의 하나로서 전설적인 인물들과 관련된 지역이 아름다운 경관을 간직하고 있다. 아름다운 경관은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기원전 3세기부터 사람이 거주하였으며 부분적으로 도시화되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유적은 8개의 개별 중심 지역과 각각의 완충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 계곡의 북쪽에 있는 바미안 절벽에는 큰 마애석불입상이 조각된 2개의 거대한 니치가 있다.

• 바미안 절벽의 남동쪽으로 약 3㎞ 지점에 있는 카크라크 계곡 석굴들은 6~13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 풀라디 계곡 석굴들 가운데 쿨리 아크람과 칼라이 가마이 석굴에는 중요한 장식이 되어 있다.

• 샤흐리 주하크와 칼라이 카파리에는 6~8세기에 흙으로 지은 성벽과 탑, 요새가 있다.

• 샤흐리 굴굴라는 바미안 계곡 한가운데의 언덕 위에 지어진 요새화된 성으로, 6~10세기의 유적이다.

바미안 계곡의 문화 경관 및 고고 유적은 1~13세기 간다라 양식의 불교 미술에 다양하게 영향을 미친 고대 박트리아 왕국의 예술적·종교적 성과를 볼 수 있는 대표적 유적지이다. 이 지역에는 수많은 불교 사원, 신전 및 이슬람 통치 시대의 요새 건축물들이 있다. 또한 2001년 3월 탈레반이 마애석불입상 2개를 파괴하여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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