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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성채와 살라딘 요새 [Crac des Chevaliers and Qal‘at Salah El-Din]

  • 제목 : 기사의 성채와 살라딘 요새
  • 설명 : © UNESCO / Author : Jean-Pierre Heim
기사의 성채와 살라딘 요새

상세정보

  • 국가 시리아(Syrian Arab Republic)
  • 위치 알호슨과 하페(Municipalities of Al Hosn and Haffeh)
  • 좌표 N34 46 54|||E36 15 47
  • 등재연도 2006년
  • 등재기준

    기준 (ⅱ) : 이 두 유적은 요새 시설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말해 준다. 유럽의 요새와 달리 좀 더 수동적인 방어 체계를 취하고 있으며, 레반트(Levant)의 성 발달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근동 지역에 남아 있는 성들 가운데 이들 성채와 요새는 당시 권력을 가진 집단 사이에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중요한 유산으로, 동양과 서양에 모두 영향을 끼쳤다.

    기준 (ⅳ) : 기사의 성채는 십자군 성채 가운데 가장 잘 보존되었으며, 군령에 의해 지어진 중세 성채의 원형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살라딘의 요새는 부분적으로 파괴되었지만 수준 높은 건축물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요약
기사의 성채와 살라딘 요새(Crac des Chevaliers and Qal‘at Salah El-Din)는 11~13세기의 십자군 전쟁 동안 근동 지역의 요새 건축물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보여 주며, 그 당시 권력을 가진 집단 사이에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중요한 유물이다. 기사의 성채는 1142년~1271년에 예루살렘의 성요한 구호 기사단(Hospitaller Order of Saint John)에 의해 지어졌다. 그 후 13세기 말, 맘루크 왕조에 의해 증축되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십자군 성채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살라딘의 요새는 부분적으로 파괴되었지만, 수준 높은 건축물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이 요새는 10세기에는 비잔틴 건축 양식이었지만, 12세기 말에는 프랑크 건축 양식으로 변형되었으며, 이슬람 왕조인 아이유브 왕조(12세기 말~13세기 중엽)에는 증축되었다.
목차
탁월한 보편적 가치

기사의 성채와 살라딘의 요새는 비잔틴, 십자군, 이슬람 시대 동안 근동 지역의 요새 건축물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보여 주며, 그 당시 권력을 가진 집단 사이에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중요한 유물이다. 기사의 성채는 1142년~1271년에 예루살렘의 성요한 구호 기사단에 의해 지어졌다. 그 후 13세기 말, 맘루크 왕조에 의해 증축되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십자군 성채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살라딘의 요새는 10세기에 비잔틴 건축 양식이었지만, 12세기 말에는 프랑크 건축 양식으로 변형되었으며, 이슬람 왕조인 아이유브 왕조에는 증축되었다.

성채와 요새 모두 방어에 유리하도록 높은 언덕 위에 세워져 있다. 주변 경관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기사의 성채와 살라딘의 요새는 십자군 당시 요새 건축물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두 건축물의 수준은 매우 높으며, 각 군사 점령기의 특징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방어 기술에 대한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완전성

이 유산은 주변 경관 중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있다. 완충지역에 있는 몇몇 바람직하지 않은 건물들을 제외하면, 주변의 완전성은 잘 보존되어 있다. 유산 부근에 지어진 불법 건축물(주택, 식당, 호텔)은 철거될 것이며, 케이블카와 노천극장을 지을 계획이 있지만, 이것 역시 경관의 완전성과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진정성

기사의 성채는 프랑스 통치 기간에 일부 복원되기는 하였지만, 지역민들이 비교적 최근에 건설한 것은 제거되었다. 중세의 건축물은 흙으로 덮여 있다가 모습을 드러내었기 때문에 대부분 진정성을 잘 간직하고 있다.

살라딘의 요새는 외딴 지역에 자리하고 있어 근세에 변화되지 않았다. 부분적으로 파괴된 곳도 있지만 유적으로서 가치가 있다. 약간 복원된 부분도 있는데, 예를 들어 아이유브 궁전의 주 출입문은 원래의 모양을 본떠 1936년에 복원하였다. 최근에는 복원 작업보다 보강과 보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 요새는 전반적으로 역사적인 유산의 진정성을 잘 간직하고 있다.

보존 및 관리 체계

이 유산은 시리아의 유물관리법(1999년 개정, No 222)과 지방행정법(15/1971)에 의거하여 보호되고 있다. 지방행정부는 유물 관리 및 박물관 종합부서(DGAM), 지방 당국과 협력하여 유산을 보호하고 있다. DGAM은 예산 확보를 담당하고 있는데, 이 예산은 유산을 보호하고 성을 유지 및 관리하는 데 필요하다. DGAM은 지방 당국과 협력하여 각 성을 개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기사의 성은 알호슨(al-Hosn) 마을이 관리하고 있으며, 살라딘의 요새는 라타키아의 주도에 있는 부서와 협력하여 DGAM이 관리하고 있다.

이 두 유적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던 당시, DGAM은 시리아의 성 관리 체계를 통합하기 위해 새로운 규정, 새로운 행정 구조로 바뀌는 과정에 있었다. 기사의 성 동쪽 경사면은 인근 도시 개발로부터 보호되어야 하기 때문에, 성 근처의 변칙적 건물을 없애기 위해 필요한 행정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유산면적
8.87㏊
완충지역
167㏊
참고번호
1229
본문

십자군 전쟁 당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 성채와 요새는 주로 유럽의 침입자들과 관련지어 판단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성이 국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사실, 살라딘의 요새는 원래 사온 요새(Fortress of Sayun, Château de Saône)라는 이름이었으나, 1188년에 이곳을 정복한 술탄을 기리기 위해 1957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이 요새는 이 지역이 10세기 비잔틴 제국의 동쪽 경계를 이루며 파티마 왕조, 미르다시드 왕조(Mirdasid dynasty), 나중에는 셀주크와 대치하던 당시에 건설되었으며, 우마이야 왕조, 아바스 왕조, 초기 비잔틴 제국에서 쌓았던 경험을 토대로 하여 방어 구조물을 세웠다.

기사의 성채는 11세기에 건설되었으나, 쿠르드 인(Kurds)의 성으로 알려져 있었다. 12세기에 시작된 십자군 전쟁 당시 프랑크족들은 이 지역에 몇 개의 성을 건설하거나 재건하였으며, 그 지도자들은 요새화된 거주지나 살라딘의 요새와 같은 성 안에 머물렀다. 12세기 후반에 라틴 사람들의 땅이 구호 기사단에게 넘어감에 따라, 그들은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즈음 아랍 인들이 이 성을 차지할 때까지 건설을 책임졌다. 그러나 살라딘의 요새는 상대적으로 고립되어 있어 수백 년 동안 사용되지 않았다. 20세기가 되어서야 두 성채와 요새를 역사적 기념물로 복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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