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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베들린부르크의 협동 교회, 성채, 옛 시가지 [Collegiate Church, Castle, and Old Town of Quedlinburg]

  • 제목 : 생테밀리옹 특별지구
  • 설명 : © UNESCO / Author : Patricia Alberth
크베들린부르크의 협동 교회, 성채, 옛 시가지

상세정보

  • 국가 독일(Germany)
  • 위치 작센안할트 주(State of Saxony-Anhalt(Sachsen-Anhalt))
  • 좌표 N51 46 59.988|||E11 9 0
  • 등재연도 1994년
  • 등재기준

    기준 (ⅳ) : 크베들린부르크는 잘 보존된 목조 건물이 다수 있는 중세 유럽 도시의 이례적인 사례이다.

요약
작센안할트 주에 있는 크베들린부르크(Quedlinburg)는 작센 오토 왕조 시대 동프랑크 왕국의 수도로서 중세 이후 번성했던 무역 도시였다. 잘 보존된 목조 건물이 다수 있는 크베들린부르크는 중세 유럽 도시의 예외적인 사례이다. 성 세르바티우스 협동교회(Collegiate Church of St Servatius)는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의 걸작이다.
목차
참고번호
535rev
본문

크베들린부르크에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현재까지 보존된 중세의 거리 형태, 이 도시 특유의 16세기~17세기에 지은 목조 주택, 중요한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물인 성세르바티우스 협동교회가 그것이다. 원래 도시 배치는 상당히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는데, 이는 유럽 중세 도시의 성장을 보여주는 고전적 사례이다. 현재 도시의 거리 형태는 중세와 현대 초기 도시의 역사를 완벽하게 보여준다.

하르츠(Harz) 산맥 북쪽의 구릉지역에 위치한 크베들린부르크는, 919년 독일 왕이 된 하인리히 1세의 922년 공식 문서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그는 하르츠 계곡을 내려다보는 사암 언덕 2개 가운데 하나이자 성 언덕으로 알려진 곳에 성을 세웠다. 그리고 이곳은 그가 좋아하는 거주지가 되었다. 이곳은 동 프랑코 제국의 수도가 되었으며, 중요한 정치·종교 집회와 축제가 열렸다. 중세 시대 하인리히 1세와 그의 계승자들 덕에 이 도시는 부와 중요성을 얻었다. 독일의 왕들은 922년〜1207년 69차례에 걸쳐 크베들린부르크에 머물렀다.

936년 하인리히 1세가 죽자 왕비 마틸데는 크베들린부르크의 성 언덕에 있는 성 세르바티우스 협동교회에 남았다. 이 교회는 하인리히의 아들이자 왕위 계승자인 오토 1세가 귀족 미혼 여성들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건립하였다. 교회는 신성로마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토대가 되었다. 944년부터 수녀원장들은 크베들린부르크에서 동전 주조 권리를 얻었다. 수녀원장들은 대부분 황실 가족이었으며 이 교회 지하 묘소에 잠들었다.

부르크베르크(Burgberg) 주변 지역인 베스텐도르프(Westendorf)는 곧 상인과 장인들의 정착지가 되었고, 994년에는 시장 설립 허가를 받았다. 이는 1040년, 1134년에 다시 승인되었다. 다른 정착지들도 발달하여 초기 도심지를 형성하였다. 11세기, 12세기에 하인리히 3세와 로타르 4세는 이들 지역에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였다.

946년에는 베네딕트회 수도원이 뮌첸부르크(Münzenberg) 언덕에 건축되었다. 크베들린부르크의 상인들은 북해에서 알프스에 이르는 지역에서 규제와 납세 의무 없이 무역할 권리를 얻었고, 자신들의 재판소를 가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도시는 번창하였고 급속히 확장되었다. 12세기에 보데(Bode) 강 동쪽 기슭에 신도시(Neustadt)가 중세 유럽도시의 표준적 설계를 따라 세워졌다. 두 도시는 1330년에 통합되었고, 시벽(市壁)이 이곳을 둘러쌌다.

‘암 노이엔 베그(Am neuen Weg)’와 ‘인 덴 그로펨(In den Gropem)’ 같은 교외 지역이 시벽 외부에 급속히 발달하였다. 새로 확장된 도시는 1384년 니더작센(Lower Saxon) 도시동맹(Stiidtebund)에 합류하였고, 1426년에는 한자 동맹(Hanseatic League)의 일원이 되었다. 크베들린부르크는 15세기 독일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였지만, 이 시대에 자주 일어난 정치·경제적 분쟁에서 패배하여 결과적으로 1477년에 독점 사업권과 상업 특권을 잃었다.

그러나 16, 17세기에 만들어진 다수의 정교한 목조 주택은 크베들린부르크가 당시에 경제적 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입증하고 있다. 작센의 선제후는 1698년에 브란덴부르크 프러시아 가문에 크베들린부르크의 보호령(Vogtei)을 매각하였다. 1802년 이곳은 프러시아 왕국에 공식적으로 통합되면서 크베들린부르크가 황실의 근거지로서 특별히 누렸던 자유로운 지위는 사라졌다. 19세기와 20세기를 거쳐 크베들린부르크는 꾸준히 발전하고 있는 도시이다.

이 지역은 시벽 안에 자리한 역사적 도시로 구성되는데, 오래된(10세기) 도시와 새로운(12세기) 도시, 협동교회와 황실의 근거인 건물들이 있는 베스텐도르프 지구, 성바이페르트 성당과 뮌첸베르크를 포함한다. 도시의 핵심 지역은 성 언덕(Castle Hill)인데 행정과 종교 시설이 있다. 주변에는 통치자와 그의 가족의 요구를 들어줄 장인과 무역상의 정착지가 빠르게 자리 잡았다. 중부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시민권을 가진 독립된 상업 정착지가 강 건너에 세워졌다.

이곳은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 도시와 병합되어 새로운 행정 단위가 되었고, 도시를 감싸는 벽을 세움으로써 독립성을 나타냈다. 이 상업 정착지에는 성벽 밖으로 새로운 교외 지역이 차례로 생겼다. 성 세르바티우스 협동교회는 본래 하인리히 황제가 성 언덕에 거주지를 지을 때 세웠다. 하인리히와 아내 마틸데가 지하 묘소에 매장된 최초의 바실리카는 1070년 대화재로 파괴되었다. 지하 묘소는 새로운 구조로 통합되어 바실리카로 설계되었는데, 1070년〜1129년에 건축하였다.

통로가 3개인 지하 묘소에는 서쪽에 있는 기둥 사이 구획 2개가 남아 있다. 거기에는 오토 왕조의 ‘버섯’ 모양 기둥머리[柱頭]가 있다. 교차 궁륭의 둥근 천장, 치장 벽토로 장식한 주두, 황실 묘소와 다른 묘들, 벽화 등으로 이 새로운 지하 묘소는 예술 역사상 10, 12세기의 주요 기념물로 꼽힌다. 쌍둥이 탑이 있는 서쪽의 정면 부분은 재건할 때 추가하였다. 장식은 대부분 북부 이탈리아 양식으로, 황실이 교회와 연관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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