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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토 [City of Quito]

  • 키토
  • 제목 : 키토
  • 설명 : © UNESCO / Author : Francesco Bandarin
키토

상세정보

  • 국가 에콰도르(Ecuador)
  • 위치 핀치나다 주(Province of Pinchinada)|||키토 시군(City and Canton of Quito)
  • 좌표 N0 0 14|||W78 30 0
  • 등재연도 1978년
  • 등재기준
요약
해발 2,850m에 건설된 키토는 16세기에 잉카의 잔해 위에 세워진 에콰도르의 수도이다. 1917년 지진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고대 도시의 모습을 최상의 상태로 보존하고 있으며,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가장 덜 손상된 역사 유적이다. 산 프란시스코 수도원과 산토 도밍고 수도원, 내부 장식이 화려한 라 콤파냐(La Compañía) 성당, 예수회 대학 등은 ‘키토 바로크파 건축물(Baroque school of Quito)’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키토 바로크파 유산은 스페인 · 이탈리아 · 무어 · 플랑드르 예술과 토착 예술이 융합된 작품이다.
목차
유산면적
320㏊
참고번호
2
본문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는 건축물이나 예술품을 제외한 도시 자체만으로도 인간의 활동과 자연의 힘이 합쳐진 독특하고 심오하며 조화로운 장소이다. 더불어 역사 유적과 아름다운 건축물까지 어우러진 키토는 유럽과 토착예술이 합쳐진 이른바 ‘키토 바로크파’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키토는 피친차 화산으로 인해 생긴 거대한 중부 고원의 작은 분지와 푸엔가시(Puengasi) 산맥 위에 있다. 푸엔가시 산맥은 피친차의 동쪽 면이 돌출되면서 형성된 산맥이다. 키토는 땅이 평평하지 않으며, 2개의 깊은 협곡으로 나뉘어져 있다. 협곡 중 하나는 도로의 구획을 유지하기 위해 거의 아치 형태로 남아 있다. 키토의 하수는 협곡의 갈라진 틈을 통해 북쪽의 툼바코(Tumbaco) 평원 쪽으로 배출된다.

키토의 명칭은 스페인 정복 이전의 원주민인 ‘키투스(Quitus)’에서 유래하였다. 1533년 세바스티안 베날카자르(Sebastian Benalcazar)가 키투스인의 도시를 평화적으로 점령하기 이전, 이곳은 세이리스족과 잉카족의 수도였다. 1541년 키토는 스페인 도시의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이 도시의 정식 명칭은 ‘산 프란체스코 델 키토(San Francisco del Quito)’이고, 스페인 식민통치가 끝날 때까지 키토 주의 주도였다. 키토는 계속해서 지진 피해를 입었는데 1797년과 1859년의 피해 규모가 가장 컸다. 그럼에도 키토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역사 유적이다.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키토에 정착하자마자 수도원을 건립하였다. 이 수도원은 교육은 물론 그들만의 유파에 속하는 회화와 조소 등 예술 작품을 창조하여 당시 키토의 예술 중심지가 되었다. 그후 아우구스투스와 도미니크 수도회, 예수회가 수도원을 건축하여 새로운 도시의 경관을 형성하였다. 산 프란시스코와 산토 도밍고 수도원, 화려한 내부 장식이 두드러진 라 콤파냐 성당과 예수회 대학은 ‘키토 바로크파’ 예술의 대표 사례이다. 이는 스페인, 이탈리아, 무어, 플랑드르의 예술과 토착 예술이 융합된 독특한 문화예술이다. 황금 제단이 있는 라 콤파냐 성당은 아마도 남미에서 가장 뛰어난 성전일 것이다.

도시는 대부분 직사각형의 방진 모양으로 뻗어 있으며, 거리는 컴퍼스의 바늘 끝 모양을 하고 있다. 일반적인 건축 재료는 햇볕에 말린 벽돌을 사용하였고, 고급 주택에는 회 반죽 또는 치장벽토를 칠하였다. 공공건물은 스페인의 정통양식을 따랐다. 주요 광장의 맞은편에 성당과 정부청사, 대주교공관, 시청이 있다. 도시 최고의 건물은 예수회 성당이며, 성당의 정면은 섬세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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