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이동하기

쿠스코 [City of Cuzco]

  • 제목 : 쿠스코
  • 설명 : © UNESCO / Author : Francesco Bandarin
쿠스코

상세정보

  • 국가 페루(Peru)
  • 위치 쿠스코 시(City of Cuzco)
  • 좌표 S13 31 19.992|||W71 58 59.988
  • 등재연도 1983년
  • 등재기준
요약
페루의 안데스 산맥에 있는 쿠스코(City of Cuzco)는 잉카 제국의 지배자 파차쿠텍(Pachacútec, 1438∼1471) 시대의 도시로 종교적·행정적 기능을 갖춘 독특하고 복합적인 중심 도시였다. 농업과 수공업, 공업 구역은 중심부와 확실하게 구분되어, 산업 구역이 도시를 둘러싼 형태였다. 스페인은 16세기에 이곳을 정복한 후, 도시의 기본 구조를 보존하면서 잉카 도시의 폐허 위에 바로크 양식 교회와 궁전을 건설하였다.
목차
참고번호
273
본문

쿠스코와 고대 마을은 잉카 제국 당시의 토지 이용 방식 흔적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 도시화의 영향으로 취약해진 고고학적 유산을 좀 더 세계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보존하고 있다. 쿠스코는 페루 안데스 산맥의 여러 강에서 유입되는 비옥한 충적토 골짜기의 해발 3,400m 고도에 있으며 잉카의 지배자 파차쿠텍 시대에 종교적·행정적 기능을 갖춘 복합적인 중심도시로 발전하였다. 농업과 수공업, 공업 활동 구역은 중심부와 확실하게 구분되어 도시를 둘러싼 형태였다.

1536년 스페인 식민지 영토 시절에 쿠스코는 별다른 존재감이 없었다. 그러나 독립 선언(1821)과 아야쿠초(Ayacucho)에서 볼리바르(Bolívar)가 승리하게 되자 비로소 쿠스코의 존재가 드러났다. 중요 역사적 사건과 아름다운 전설로 뒤얽힌 복잡한 과거를 가진 이 도시는 뛰어난 기념 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유산들이 일관성을 유지해 왔다. 또한 오늘날의 여러 변화의 영향으로 유산 자체와 유산이 가진 일관성도 손상되지 않았다. 잉카 신화에 따르면, 이 도시는 잉카의 만코 카파팍(Manco Cápac)에 의해 세워졌다. “태양이 만코 카팍에게 준 황금 지팡이를 쿠스코의 비옥한 땅에 두드려서 수도의 자리를 정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실제로 쿠스코는 찬카족(Chancas)이 쳐들어와 전쟁을 치른 후 잉카 세력이 더욱 공고해졌다고 한다. 이때가 15세기인데 이 당시는 쿠스코가 그다지 중요한 곳이 아니었던 듯하다. 위대한 두 잉카 인 파차쿠텍과 투팍 유팡키(Túpac Yupanqui, 1471∼1493)의 지도 아래 50,000명 정도를 투입하여 20년 동안이나 재건하였다. 특히 파차쿠텍은 수도의 복합 기능을 모두 담당할 수 있는 이상적인 도시를 만들고자 했다. 그는 과거 주기적으로 홍수의 위협이 있었던 사피(Saphi) 강과 툴무야모(Tullumayo) 강을 운하로 만든 후 계층적인 구조의 기반 시설을 만들었다.

도시 중앙에는 행정과 종교적 기능을 통합하고 카야우카치(Cayaucachi), 클라킬차카(Claquillchaca), 픽추(Picchu), 킬리파타(Quillipata), 카르멘카(Carmenca), 우아카푼코(Huacapunco) 등 외곽과 경작지가 있는 위성 지역은 농업과 수공업, 공업 등의 산업 지역 단위로 하는 도시 계획을 실현한 것이다.

토양 침식의 굴곡이 거의 없는 시우다드 노빌리아리아(Ciudad Nobiliaria)의 직각도시 구조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세 구획으로 나뉘는 도시 계획은 스페인 정복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였을 것이다. 유럽의 침략자들은 르네상스의 이념 도시와 신기하게 닮아 있는 이러한 합리적인 도시계획을 존중하였다. 침략자들은 정치와 종교적 상징성이 있는 주요 건축물만 파괴하였고, 가톨릭과 스페인식의 새 기념물을 지었다. 파괴한 건물의 벽을 사용하여 지은 거석(巨石) 축성물(Cyclopean masonry)은 감탄할 만한 뛰어난 건물들이다.

잉카 제국의 중심지였던 와카파이타(Huaccapayta)는 파차쿠텍과 비라코차(Viracocha), 와이나카팍(Huayna Capac)의 궁전에 접해 있고, 오늘날의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에 해당하는 곳이다. 비라코차 궁은 1560년에 성당을 짓기 위해 파괴되었고, 아클라후아시(Acclahuasi)는 산타카탈리나(Santa Catalina)의 수녀원을 짓기 위해 허물었으며, 코리칸차(Coricaucha)는 산토도밍고 드 구스만(Santo Domingo de Guzman)의 수녀원 등을 짓기 위해 부분적으로 파괴되었다.

오늘날 쿠스코는 잉카 수도와 식민지 도시가 결합된 놀라운 곳이다. 무엇보다도 이 도시는 화강암이나 안산암을 정확하게 깎아 만든 담과 담 안으로 배치된 직선형 거리, 태양신 사원(Sun Temple) 유적 등의 인상적인 자취와 그 방식을 잘 보존하고 있다. 태양신 사원의 황금정원(Golden Garden)은 한때 귀금속 조각작품으로 덮여 있었는데, 스페인 병사들이 카를로스 5세(Charles V)의 금고를 채우기 위해 약탈하였다. 식민지 도시에는 회반죽을 새로 칠한 가옥들과 궁전, 바로크식 교회가 남아 있다. 이곳의 건축물들은 도저히 조화를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플라테레스코(Plateresco) 양식, 무데하르(Mudejar) 양식, 추리게레스코(Churrigueresco) 양식 등 잉카의 전통 양식이 모두 잘 융합되어 있다.

관련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