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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고니 암각화 유적 [Chongoni Rock-Art Area]

  • 총고니 암각화 유적
  • 제목 : 총고니 암각화 유적
  • 설명 : © UNESCO / Author : Lazare Eloundou Assomo
총고니 암각화 유적

상세정보

  • 국가 말라위(Malawi)
  • 위치 데자 지구(Dedza District)|||중앙 구역(Central Region)
  • 좌표 S14 17 36|||E34 16 45
  • 등재연도 2006년
  • 등재기준

    기준 (ⅲ) : 광범위하면서 밀집된 암각화 은신처는 몇 세기에 걸쳐 문화 전통이 놀랍게 지속될 수 있었음을 반영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여성들의 입사식, 기우제와 장례식, 특히 체와 족 농경사회 암각화와 연관되어 있다.

    기준 (ⅵ) : 암각화 이미지와 입사식, 비밀스러운 니아우 사회라는 동시대의 전통 사이에 있었던 강력한 유대 관계, 그리고 수세기에 걸쳐 그려진 이미지에 내재된 전통에 대한 폭넓은 증거 등 모든 사항으로 미루어 총고니 경관이 체와 족 사회와 남부 아프리카에 중요한 장소임을 알 수 있다.

요약
총고니 암각화 유적은 말라위 중앙 고원의 126.4㎢를 차지하는 화강암 숲 언덕에 있다. 중앙아프리카에서 가장 밀집된 암각화를 볼 수 있는 곳으로 127개 구역을 포함한다. 암석화는 석기시대 후기부터 그 지역에 살았던 바트와(Batwa)라는 수렵 채집자들이 그린 그림일 뿐 아니라 농부가 그린 암각화라는 비교적 특이한 전통을 반영하고 있다. 바트와는 농경민족인 체와(Chewa) 족의 선조로 여겨지고 있으며, 체와 족은 철기 시대 후반부터 이곳에 살았으며, 20세기 들어서까지 암각화를 그렸다. 이 암각화는 대체로 여성과 관련 있다는 점이 특징인데, 체와 족의 문화와 종교 의식과 관련이 있다.
목차
탁월한 보편적 가치

총고니 암각화 유적은 말라위 고원 살던 사람들의 문화 역사와 전통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는 수렵 채집 생활에서 식량 생산으로 전환하고 그 뒤 이어진 체와 족의 응고니(Ngoni) 침입, 백인의 유입 등이 기록되어 있다. 그림들은 또한 통과 의례와 종교 의식을 상징하고 있다. 전통적이며 종교적인 의식 중심으로서 암각화는 살아 있는 문화 전통을 함축하고 있다. 암석 지형은 수풀 경사지에 돌출되어 있고, 풀로 덮인 빈터가 이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보호 환경이 되고 있다.

완전성

총고니 암각화 지역은 대부분 유산 지역 범위에 있으며, 총고니 수풀 보존 지역 경계와 일치한다. 지정된 127지역 가운데 5군데는 유적 범위 밖에 있지만, 완충지역에 들어 있다. 암각화는 낙서와 침수로 약간 문제는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생기는 자연 풍화의 영향은 받지 않아 원래 상태로 남아 있다. 자연 주변에 있는 잘 보존된 바위그림들은 제한된 범위에서 훼손되어 왔다. 그 지역 거주민들은 숲이 보호 지역으로 지정되었을 때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고, 천연 미옴보(miombo, 브라치스테기아(Brachystegia)) 삼림 지대의 일부 지역에 외국산 침엽수를 심었다. 총고니 지역의 진정성을 위협하는 것들은 관리 계획을 수행하기 위한 지역 감독 요원의 부족과 관계가 있다. 인원 부족은 결과적으로 유적지 구역의 접근을 통제하기 어렵게 한다.

진정성

암각화 지역에 대한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는 실질적인 예술-디자인과 재료로 표현되고 있다. 위치와 배경, 그들과 관련된 역할과 영적인 전통, 이러한 모든 것이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총고니 주변 대부분의 마을에서 벌이는 종교 의식에서는 암각화의 영감을 받아 똑같은 니아우(Nyau) 가면을 쓰고 의례를 하는 체와 족을 사시사철 볼 수 있다. 체와 족 소녀들의 입사식인 치남왈리(Chinamwali)는 옛 치남왈리 암각화가 있는 몇몇 대피소에서 대부분 은밀하게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보존 및 관리 체계

총고니 암각화와 고고 유적 지역은 1990년 연속유산 및 유적법에 따라 보호되고 있다. 유산 면적은 1997년 삼림법으로 총고니 숲 보존 지역 경계선과 일치한다. 이러한 두 가지 법 조항에 비추어, 관리 계획이 문화유산 보존에 대한 정부 정책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준비되었다. 관리청 및 문화유산 통역센터 건설이 관리 계획에 맞춰 진행 중이다. 그러나 유적 관리는 관리 자금과 훈련된 요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대유물부서에는 총고니에 배정된 영구직 직원이 없다. 정기 사찰은 북쪽으로 80㎞ 떨어진 말라위 수도 릴롱궤(Lilongwe)에서 하고 있다.

구상하고 있는 관리 계획대로 그 지역을 대중이 공식적으로 방문할 수 있도록 하려면 훈련된 관리 직원이 총고니 지역에 영구적으로 상주해야 한다. 유산 지역을 개별적인 용도로, 전체적인 숲을 종교적이고 전통적인 의식을 위해, 그리고 유산 지역 내의 다른 공동체 활동과 통합된 산림 작업을 위해 쓰려면 전통 지도자들과 산림청이 사전 협약을 해야 한다.

유산면적
12,640㏊
참고번호
476rev
본문

초기 석기 시대의 몇몇 유물은 후기 구석기 시대 이전의 작업에 대한 실질적인 증거가 부족하지만, 상부 홍적세(Upper Pleistocene) 시기에 처음으로 그 지역에 정착하였음을 보여 준다. 가장 오래된 고고 증거가 2500BP(Before Present)로 기록되는 유물에서 나온다. 자료가 될 증거는 없지만, 후기 석기 시대 사람들은 수렵 채집 생활을 하며 초기 암벽화를 그렸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원후 1,000년 동안, 철기시대 농부들이 북쪽에서 유입되어 백색 점토로 그린 자연 형상의 백색 암각화를 그렸다. 농민들은 수렵 채집 생활을 완전히 청산한 것이 아니어서, 수렵 채집인이 농경사회로 동화되었을 19세기경까지 두 사회가 한동안 공생 관계를 이루며 살았던 듯하다.

15세기 동안 새로운 농민 그룹인 마라비 체와(Maravi Chewa) 족이 말라위 중앙 지역으로 왔다. 현재의 국가명은 마라비 체와 족에서 유래했다. 그들은 현재의 콩고민주공화국 남동쪽에 있는 루발란드(Lubaland, 루바 사람의 집) 북서부에서 이주해 왔으리라 생각된다. 마라비 족은 신속하게 여러 부족을 중앙 마라비 제국으로 통합하여 동부 데자(Dedza)에서부터 지배하였다. 그 영향력은 중앙은 물론 동부 말라위에 걸쳐 오늘날 모잠비크 지역으로 확장되었다. 마라비 제국에는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사이에 뚜렷한 구별이 생겨났다. 중앙 지역은 마라비 이주민의 통치를 받았고, 지방은 토착민이 지배하였다. 니아우 부족 사회는 지역 수준에서 번창하여 처음에는 정치의 중심을 구분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구분이 흐려져, 마라비 족이 아닌 사람이 족장이 되었고, 마라비 통치자들은 니아우 부족 사회에 대한 권리를 얻었다.

19세기 중반, 응고니 족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줄루랜드에 있는 차카를 도망쳐 나와 북쪽으로 이동했고, 일부는 총고니 남쪽 지역에 정착하였다. 응고니 족의 멸시를 받게 된 니아우 족은 어쩔 수 없이 숨어 지냈다. 니아우 족은 침입하는 응고니 족에 대한 체와 족 저항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그리하여 니아우 족은 제1차 세계대전 때 노무자로 징용을 거부한 사람들의 피신처 역할 수행에 반대하면서까지 체와 족 문화를 보호하는 수호자가 되었다. 선교사들, 또 어느 정도는 식민지 정부는 니아우 족을 배척하였다. 그런데도 이들은 살아남아 지금은 전통 문화와 생생한 표현 방식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1924년 총고니와 주변 언덕이 삼림 보존지역으로 지정되었다. 1928년과 1930년에는 경계선이 마을을 제외하도록 개정되었으며, 1961년과 1965년에는 더 많은 지역들이 침해라는 명목 아래 제외되었다. 1965년 이후로는 경계선이 변경되지 않고 남아 있는 상태이다. 1960년대 후반에 침엽수 식재 프로그램이 도입되고, 농장을 지원하기 위해 보존 지역을 관통하는 도로들이 건설되었다. 최초의 암각화 기록은 1930년대에 알려졌으며, 1950년대에 여러 지역이 공개되었다. 5곳의 첸체레레(Chentcherere) 은신처가 1969년에 국가 보존 유적물로 지정되었고, 127곳 가운데 5곳이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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