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이동하기

참파네르-파바가드 고고 공원 [Champaner-Pavagadh Archaeological Park]

  • 참파르네-파바가드 고고 공원
  • 제목 : 참파르네-파바가드 고고 공원
  • 설명 : © UNESCO
참파네르-파바가드 고고 공원

상세정보

  • 국가 인도(India)
  • 위치 구자라트 주(Gujarat State)|||판치마할 구(District of Panchmahal)
  • 좌표 N22 28 60|||E73 31 60
  • 등재연도 2004년
  • 등재기준

    기준 (ⅲ) : 고대 힌두의 건축미를 자랑하는 참파네르-파바가드에는 종교, 군사 시설과 함께 농사에 필요한 건축물과 물을 보관하는 특별한 시설이 있었다. 이곳은 16세기 마흐무드 베그다가 지역의 중심 수도를 세운 시기에 축조되었다.

    기준 (ⅳ) : 이 유적은 힌두-이슬람 건축 양식의 완벽한 융합을 보여준다. 특히 최대 규모의 무슬림 사원(자미 마스지드)에서 그 특징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후기 인도 건축의 대표적 예이다. 이러한 특별한 양식은 술탄 통치 기간에 가장 융성했던 시기에 성행하였다.

    기준 (ⅴ) : 참파네르-파바가드는 주변 지형과 자연적 특성을 최대한 이용한 예로서 현존하는 최단기 수도의 훌륭한 전형이다. 이 유적은 방종, 숲의 상실, 현대의 삶 때문에 버림받기 쉬운 곳이다.

    기준 (ⅵ) : 참파네르-파바가드는 힌두교도들의 숭배지라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요약
대규모 미발굴 유산인 참파네르-파바가드 고고 공원(Champaner-Pavagadh Archaeological Park)은 고고학적·역사적·문화적 유적지로서 선사시대(금석병용시대)의 유산이 있는 곳이다. 이 곳은 초기 힌두의 수도였던 언덕 요새를 포함하며 인상적인 풍경 속에 둘러싸여 있다. 16세기 구자라트 주 수도의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다. 이 유적의 여러 흔적 중에는 8세기∼14세기에 지은 요새·궁정·종교 사원·주거 지역·농경시설·수리시설 등이 있다. 파바가드 언덕 꼭대기에 있는 칼리카마타(Kalikamata) 사원은 그중에서도 중요한 성소로 해마다 수많은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슬람 무굴 제국 이전의 도시 모습이 훼손되지 않은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곳이다.
목차
역사적 배경

몇몇 구체적인 유물을 통해 청동기 시대부터 이 지역에 인류가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발견된 것들을 보면 기원전 400년경 사람들이 이 지역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의 역사는 중요한 비물질적 요소로 표현된다. 칼리카(Kalika) 여신의 오른쪽 발가락이 떨어진 곳이 바로 파바가드 언덕이라는 전설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지역은 특별한 가치를 지니지만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특히 5세기∼8세기를 다룬 자료에는 어떤 언급도 없다.

13세기에 키치 차우한(Khichi Chauhans)이 이곳을 정복하였는데, 그는 파바가드 언덕에 그의 첫 번째 시설을 건설하였다. 이 왕조의 군주들은 언덕 위쪽의 고원을 요새로 만들었다. 유적 중에는 가장 오래전에 세웠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원이 있다. 이 시대의 유적으로 물탱크처럼 중요한 흔적이 남아 있다.

1484년 구자라트 군주들은 참파네르를 정복하였다. 참파네르를 수도로 결정하면서 마흐무드 베하르하는 이 지역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시대를 열었다. 초기 시설을 만들 때처럼 새 도시를 언덕 꼭대기가 아닌 언덕 기슭에 세웠다. 건축 양식은 수도로서, 도시의 왕족 거주지로서의 양상을 완벽히 보여준다. 1536년까지 참파네르는 구자라트의 수도였으나 곧 사람들이 떠났으며, 중요한 건축물이 더는 세워지지 않았다.

1807년 영국인이 이 지역을 침략했을 때 참파네르의 인구는 500명이었다고 한다. 오늘날 이 지역은 종교적으로 중요한 특징 덕분에 유지되고 있다. 순례자는 물론 축제와 페스티벌 참가자 수천 명이 이곳을 방문한다. 주요 공동체는 힌두교도로 구성되어 있다. 이슬람교도와 기독교인, 유랑 생활을 하는 유목민이 있다. 1982년 실시한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이 지역은 인구 1,856명(387가구)이다

유산면적
1,329㏊
완충지역
2,912㏊
참고번호
1101
본문

고대 힌두의 건축미를 자랑하는 참파네르-파바가드에는 종교·군사·농사에 필요한 건축물과 물을 보관하는 특별한 시설이 있었다. 이곳은 16세기 마흐무드 베그다(Mehmud Begda)가 지역의 중심 수도를 세운 시기에 설립되었다. 이 유적은 힌두-이슬람 건축 양식의 완벽한 융합을 보여준다. 특히 최대 규모의 무슬림 사원(Jami Masjid)에서 그 특징이 두드러진다. 후기 인도 건축의 대표적 예인 이러한 특별한 양식은 술탄 통치 기간에 가장 융성했던 시기에 성행하였다.

참파네르-파바가드는 주변 지형과 자연적 특성을 최대한 잘 이용한 예로서 현존하는 최단기 수도의 훌륭한 전형이다. 이 유적은 파바가드 산기슭과 주변의 낮은 언덕, 급경사, 넓은 고원에 둘러싸여 있다. 이 모든 환경은 화산 폭발과 마그마 유입 때문에 만들어졌다. 산꼭대기에는 칼리카마타 사원이 있다. 이 유적지에는 마흐무드 베하르하(Mahmud Begharha)의 파괴된 도시뿐 아니라 요새와 수로 시설, 8세기∼14세기에 걸쳐 조성된 조각상이 즐비하다. 역사 지구에는 참파네르 마을이 남아 있다.

이곳은 두 지역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왕실 구역이다. 이곳은 높고 두꺼운 석벽이나 탑과 출입문으로 요새처럼 둘러싸여 있다. 예전에는 성벽 내부에 궁정과 실내 정원, 왕실 사원, 행정 관서들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현대식 마을과 정부 청사가 들어서 있다. 구역은 대부분 아직 묻혀 있거나 발굴되지 않았다. 행진을 하던 길이 도시로 통하는 출입문과 이슬람교 사원들, 외곽 지구를 지나 왕궁으로 연결되어 있다.

두 번째는 지구는 자한파나(Jahanpanah)라는 곳으로 역시 아직 발굴되지 않았다. 이곳은 베하르하의 수도였으며 16세기 중반 무굴 제국에게 침략을 당하자 버려진 곳이다. 주변 요새부터 도시 중심부까지 이어진 주도로는 잘 정비되어 있어 도시 설계 측면에서 연구되고 있는 곳이다. 도시계획의 일부인 정원과 수리시설, 일반 대중의 거주 지역과 거리를 따라 즐비한 상점과 상업 지구, 정자와 공공 공원, 거주 지역에 자리한 이슬람교 사원들을 포함한 전 지역이 오늘날 발굴 지역이다. 이슬람교 사원 옆으로 파바가드 언덕에는 공동묘지와 가문 묘, 사원이 있다. 이 사원들에는 힌두의 다른 신을 모셨는데 성소로 여긴다. 사원은 주로 석각(石刻)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파타(phata, 순례길)는 참파네르의 ‘영혼’으로 여겨진다. 도시의 삶과 발달은 항상 순례자의 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순례길은 고원에서 파바가드 산 정상까지 수천 개의 계단으로 이어졌는데, 그 길을 따라 화려한 장식물과 실용적인 구조물로 꾸며놓았다. 이슬람교 사원들은 이 유적지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학적 부분이다. 일부 사원은 힌두 전통예술과 이슬람 이념으로 융합된 무굴 건축예술의 전신이기도 하다. 구조 시스템 또한 초기 힌두적 요소와 후기 이슬람 양식에서 도입된 대형 돔과 같은 형태이다.

무덤의 평면 구조는 거의 정사각형에 돔을 받치는 기둥을 세운 형태이다. 무덤 또한 매우 화려하게 장식하였고, 일부는 이슬람교 사원과 연결되었다. 성채는 감옥과 마찬가지로 튼튼하며, 성벽·보루·막사·야영지로 요새를 포함한다. 출입문 여러 곳은 순례자들이 파바가드 산 정상으로 향하도록 나 있다. 다른 문들은 도시나 왕궁의 성벽 같은 방어 구조물 쪽으로 개방되어 있다.

왕궁의 정원이나 요새는 대개 심하게 파손되었다. 파빌리온은 정원의 독특한 특징을 이루며 왕궁 내외부에 자리하는데, 참파네르에 큰 명성을 안겨 즐거운 파빌리온으로 불린다. 수리시설은 참파네르의 설계와 문화에 필수적이고도 중요한 부분이다. 각양각색의 다양한 우물이 전 지역에 골고루 있는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한다. 15세기 동안 수리시설은 날마다 사용하는 곳이라는 실용적 측면과 즐거움을 주는 미학적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일부 가정에서는 흐르는 물을 사용하기도 했고, 많은 정원과 파빌리온은 수로를 연결 배치하여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관련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