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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대성당, 알카사르, 인디아스 고문서관 [Cathedral, Alcázar and Archivo de Indias in Seville]

  • 세비야 대성당, 알카사르, 인디아스 고문서관
  • 제목 : 세비야 대성당, 알카사르, 인디아스 고문서관
  • 설명 : © UNESCO / Author : Nathalie Valanchon
세비야 대성당, 알카사르, 인디아스 고문서관

상세정보

  • 국가 스페인(Spain)
  • 위치 안달루시아 자치지방(Autonomous Community of Andalusia)|||세비야 주(Province of Seville)
  • 좌표 N37 23 1.824|||W5 59 29.58
  • 등재연도 1987년(2010년 수정)
  • 등재기준

    기준 (ⅰ) : 히랄다는 독특한 예술적 성취물로, 알모하드 건축의 걸작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모스크를 대체해 만든 5개의 신랑이 있는 대규모 성당은 유럽에서 가장 큰 고딕 건물이다. 에르난 루이스가 만든 카빌도의 타원형 돔은 르네상스의 가장 아름다운 건축 작품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기준 (ⅱ) : 히랄다는 스페인, 그리고 아메리카 정복 후의 아메리카 대륙에서 수많은 탑 건축에 영향을 끼쳤다.

    기준 (ⅲ) : 유럽에서 가장 큰 고딕 건물인 세비야 대성당과 알카사르는 1248년의 레콘키스타 시기부터 16세기까지의 기독교 안달루시아 문명과 알모하드 문명에 대한 탁월한 증거이며, 이는 무어인의 영향력을 보여 준다.

    기준 (ⅵ) : 세비야 대성당과 알카사르, 카사 론하는 보편적으로 중요한 사건들과 직접적이고도 눈에 보이는 연관성이 있는데, 1492년과 1493년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라틴아메리카의 식민지화를 예로 들 수 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무덤은 이곳 대성당 안에 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탐험, 특히 마젤란(Magellan)과 세바스티안 엘카노(Sebastián ElCano, 1519~1522)의 지구의 주항에 대한 논의가 ‘해군 제독의 방’에서 이루어졌다. 카사 론하는 아메리카 식민지와 관련된 자료 기록 보관소로서 가장 중요한 문서들을 보존하고 있다.

요약
세비야(Seville) 대성당, 알카사르(Alcázar, 성(城)이라는 뜻), 인디아스(Indias) 고문서관(古文書館), 이 세 건축물은 세비야 중심부에 웅장한 기념물군(群)을 이룬다. 무어인들의 영향을 받은 세비야 대성당과 알카사르는 1248년의 레콘키스타(Reconquista, 국토회복운동) 시기부터 16세기까지 지어졌으며, 안달루시아 기독교 문명과 알모하드(Almohad) 문명을 동시에 보여 준다. 대성당 옆에 서 있는 히랄다(Giralda) 첨탑은 알모하드 건축의 걸작이다. 대성당은 5랑(廊) 식으로 되어 있으며, 유럽에서 가장 큰 고딕 양식 건물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의 묘가 있다. 인디아스 고문서관에는 아메리카 식민지 문서보관소에서 가져온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서들이 보관되어 있다.
목차
탁월한 보편적 가치

세비야 대성당, 알카사르, 인디아스 고문서관은 연속 유산으로서 세비야 중심부에 웅장한 기념물군을 이룬다. 이 기념물군은 신세계 내의 식민지 건설, 이를 통한 국왕 통치권과 스페인의 무역 세력 강화, 기독교 세력이 지배했던 시기와 이슬람 문화의 흔적들이 종합된 스페인의 ‘황금기’를 완벽하게 보여 준다.

옛 모스크 유적에서 1403년에 발견된 세비야 대성당은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7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대성당은 5개의 신랑(身廊)이 있는 유럽에서 가장 큰 고딕 양식 건물이다. 세비야 대성당의 종탑인 히랄다는 본래 알모하드 건축의 걸작인 모스크의 첨탑이었으며, 에르난 루이스(Hernán Ruiz)에 의해 르네상스 양식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새롭게 디자인된 탑의 꼭대기 장식은 이슬람 양식에 기독교 양식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었다는 평을 받는다. 성당의 사제단 회의장은 기존의 동그란 원형을 벗어나 타원형 모양의 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건축된 이후 세비야 대성당은 줄곧 종교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알카사르의 원래 핵심부는 무슬림 총독의 궁전으로 10세기에 건설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스페인 왕실의 거주지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알카사르가 본래 의도했던 군주와 국가원수의 거주지라는 목적을 계속 유지하는 셈이다. 알카사르는 웅장한 건물들과 넓은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세 초기부터 현재까지 건축과 재건을 반복했다. 알카사르는 ‘석고 안뜰(Patio del Yeso)’이나 ‘교차랑 정원(Jardines del Crucero)’과 같은 알모하드 궁전의 특징들이 스페인 무데하르 양식을 대표하는 페드로의 궁전과 함께 공존하며, 르네상스부터 신고전주의까지 모든 문화 양식을 보여 주는 보기 드문 건축물이다.

인디아스 고문서관은 1585년에 세비야 상인의 영사관 또는 거래소 건물로 건설되었다. 1785년에 인디아스 고문서관이 되었으며, 그 후 신세계 발견과 이에 관련된 중요한 문서를 수집하는 시설이 되었다. 엘 에스코리알(El Escorial)을 완성한 건축가 후안 데 에레라(Juan de Herrera)가 설계한 이 건물은 스페인 르네상스 건축을 뚜렷하게 보여 주는 사례 중 하나이다. 또한 스페인 신고전주의와 바로크 안달루시아 건축에 큰 영향을 미친 이 건물은 구세계와 신세계 사이의 연결을 상징한다.

세비야는 16세기와 17세기에 카렐라 데 인디아스(Carrera de Indias, 인도 제국으로 가는 라틴아메리카와 스페인의 무역 독점 항로)의 주요 도시로 지명되어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은 ‘인도 제국으로 가는 관문’이었으며, 1503년부터 1718년까지 인도 제국과의 유일한 무역항이었다.

연대 기념물 또는 대성당, 히랄다, 알카사르와 인디아스 고문서관을 포함하는 역사 건물군은 2세기 동안 인도 제국과의 교역에서 무역 수도로 상징되었고, 도시 역사(이슬람, 기독교, 신세계와 연관성을 가진 세비야의 역사)의 주요 단계에 대한 뚜렷한 증거가 되고 있다. 그 시기 동안 스페인 군주제의 중추였던 세비야는 콜럼버스에 뒤이어 발견한 라틴아메리카의 식민지와 관련해 주요한 역할을 했다.

각각의 기념물들은 식민지화 과정과 관련이 있다. 콜럼버스의 무덤은 대성당에 마련되었다. 알카사르 내에 있는 살사 데 로스 알미란테스(Sala de los Almirantes, 해군 제독의 방)는 카사 데 콘트라타시온(Casa de Contratación, 무역 회의)의 본부였다. 이곳에서는 인도 제국과의 무역을 하는 과정에서 독과점을 조성했을 뿐만 아니라, 학문의 중심지로서 당시 신대륙 탐험과 발견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몇몇 원정대를 탄생시켰다. 인디아스 고문서관은 18세기 이후부터 이러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가장 가치 있고 중요한 문서들을 모아 두었다.

완전성

연대 기념물(Conjunto Monumental)들은 다양한 주요 역사적 단계를 보여 주며, 물리적 완전성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다. 대성당은 수많은 예제를 보여 주는 완벽한 기념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세비야 대성당은 15세기 초에 고딕 양식으로 건설되었으며, 대성당이 있는 자리는 본래 알모하드 모스크 광장이 있던 곳이다. 대성당의 종탑 히랄다는 알모하드 건축의 첨탑을 재사용해 만들었다.

이는 원래 고딕 석조 건물의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장엄한 고딕 건축물이다. 성모 수태를 소장해 둔 사제단 회의실은 부속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옛 건축 조성을 유지하고 있다. 알카사르는 다양한 시기의 완전성을 보유하고 있는 또 다른 기념물이다. 무데하르 양식을 대표하는 페드로 궁전과 함께 알모하드 궁전의 정원과 방들이 원래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인디아스 고문서관 건물은 귀중한 문서들을 포함해서 건물 전체가 잘 보존되어 있다.

진정성

세 건축물은 제각각 건축학적 역사를 분명하게 반영하며, 신세계에 일군 그들의 식민지를 통해 스페인이 획득한 무역 권력과 기독교의 힘, 왕실의 자주권과 관련된 스페인의 ‘황금기’를 나타내는 그들의 역할을 보여 준다. 건축물의 규모가 부에 의해 좌우되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세 건축물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보여 준 스페인 무역의 영향력과 힘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 주는 증거이다. 그러나 이들만이 도시에서 가장 뛰어난 사례는 아니기 때문에 건축물들은 자산(資産)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하고, 다른 남아 있는 건물들과 연결 또는 관여될 필요가 있다. 이 세 건축물의 진정성은 다른 관련 건물들이 이들을 고립시킬 수 있는 환경에서 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보존 및 관리 체계

각각의 유산에 대해 개별적인 보호 조치가 준비되어 있는 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계속해서 지속할 수 있다. 세 건축물은 기념물 카테고리에 ‘문화적으로 흥미 있는 유산들(Properties of Cultural Interest)’로 지명된 이후, 유산 제정법 내에 지역과 국가적 수준에서 존재하는 가장 강도 높은 보호를 받고 있다.

각 건물들은 도시 환경의 일반적인 특징과 관련이 있다. 또 이 세 기념물과 관련된 도시의 문화적 배경인 미국 내의 스페인 무역과 관련이 있으며, 이들은 모두 잘 보존되어 있다. 특별 도시 계획 및 해당 지역의 보호 목록에 대한 법적인 필요조건을 만족시킴으로써 문화적 흥미 자산으로 지명을 받을 수 있었고, 역사적으로 연계된 거대 기념물의 확장으로 보호 계획들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특수 계획과 관련 목록은 2006년에 발효된 일반 계획과 함께(목록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부분과 관련) 유산의 즉각적인 환경 보호에 대한 적절한 방법과 조치를 확립했다.

현재 이 세 건축물에 대해서는 어떠한 시행 계획도 없다. 하지만 경계선이 고려되는 완충 지역 내에 포함된 지역을 개선하기 위한 대비를 충분히 하고 있다. 시의회가 중기적인 계획으로 만든 조항은 현재 조항을 대체하기 위한 것으로, 아직 정렬되지 않은 모든 구역의 건물 목록을 완성하고 이를 보호하는 것을 포함한다(구역 7의 ‘대성당 구역’과 구역 8의 ‘엔카르나시온-막달레나(Encarnación-Magdalena) 구역’). 또 다른 중기 계획은 라틴아메리카와 아타라사나스(Atarazanas, 조선소), 산텔모(San Telmo) 궁전의 식민지화와 관련이 있다고 제안된 완충지역의 두 건물을 복구하는 것이다.

유산면적
12㏊
완충지역
187㏊
참고번호
383bis
본문

세비야 대성당과 알카사르는 1248년의 레콘키스타 시기부터 16세기까지의 기독교 안달루시아 문명과 알모하드 문명에 대한 우수한 예를 보여 준다. 스페인과 아메리카 대륙의 수많은 탑 건축에 영향을 끼친 히랄다는 알모하드 건축의 걸작이며, 5개의 신랑이 있는 거대한 대성당은 유럽 최대의 고딕 건물이다. 에르난 루이스가 만든 카빌도(Cabildo)의 타원형 돔은 르네상스 시대 건축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 중 하나로 손꼽힌다.

세계에서 가장 방대하고 화려하게 장식된 종교적 건물 중 하나인 대성당은 문제가 많았던 당시 역사에서 나온 다양한 양식 범주와 복잡한 구조를 띠고 있다. 그라나다 예배실은 712년에 아랍인들의 정복으로 인해 많이 파괴되었으며, 본래 대성당에 있던 것 중에는 서고트 왕국 시대의 몇몇 기둥만 남아 있다. 이는 알모하드 왕조의 최고 전성기를 보여 주는 주요 자료 중 하나이다.

1147년에 세비야는 마그레브(Maghreb) 전체를 점령한 무슬림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당시 세비야의 장관을 이룬 기념물들은 아라비아에서 온 여행객들에게 큰 기쁨을 주며 사람들의 입에 자주 언급되었다. 옛 모스크(1172년~1198년에 야쿠브 알 만수르(Yaqub al-Mansur) 왕조가 건설함)의 첨탑이었던 히랄다는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았으며, 1248년 세비야의 레콘키스타 이후에 종탑으로 바뀌었다.

16세기에 히랄다의 꼭대기에는 풍향계(히랄디요(Giraldillo)) 역할을 하는 기독교 신앙의 상징적인 동상이 얹혔으며, 그 고도는 97.52m이다. 모스크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대성당의 유일한 다른 부분은 북쪽에 있는 나란호스(Naranjos) 파티오(Patio, 안뜰)로, 아주 멋진 내부 정원이다. 기독교는 모스크를 대체하려고 했으며, 1401년에 모스크가 파괴되기 시작하면서 천하일품의 고딕 양식 대성당으로 개조되었다.

1420년에 세비야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15세기 건축 유적 중 하나가 되었고, 스페인과 플랑드르와 독일의 가장 유명한 건축과 조각상을 보유하게 되었다. 신세계 발견에 이은 세비야의 번영은 대성당의 장식물과 건설을 가능하게 만들었을 만큼 이미 상당했던 재정적 수단을 더욱 강화시켰다. 이로써 16세기에는 스테인드글라스와 제단 뒤편의 조각품, 창살 공예와 사제석 같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장식물들이 확충되었다. 17세기에 대성당은 여전히 풍성한 장식물의 수혜자였고, 세비야의 유명한 화가 무리요(Murillo)와 발데스 레알(Valdés Leal)의 작품인 바로크 양식의 조각과 그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알카사르와 그 정원은 712년에 아랍인들이 이곳을 정복하면서 과달키비르(Guadalquivir) 강 주변을 통치하기 시작한 시기에 건립된 으리으리한 요새이다. 이곳은 레콘키스타 이전 시대의 몇몇 내부 공간과 알모하드 시기에 나온 총안상으로 장식한 보호 구역을 뽐내고 있다. 1248년 이후 왕실의 거주지가 되었으며, 페드로(Pedro, 일명 ‘잔혹한 왕 페드로’(Peter the Cruel))의 통치 기간에 보수했다. 1364년~1166년에 알카사르의 내부에 건설된 이 궁전은 안달루시아의 아랍 예술에서 장식 표현과 기술을 빌려온 무데하르 양식 특유의 혼합주의를 보여 주고 있다.

돈셀라스(Doncellas) 파티오의 중간에 솟은 분수와 갤러리의 채색 타일, 나무에 조각이나 그림이 그려진 패널식 천장, 정교하게 작업된 치장벽토와 함께 기독교화(化)로 살아남은 매혹적인 미학을 연상시킨다. 15세기~17세기에 착수된 분수대, 파빌리온(pavilion) 또는 아파트(apartments)의 장식 작업은 부분적으로 본래 있던 궁전과 궁전의 일반적인 레이아웃, 안달루시아 궁전의 전통적인 세련미와 원래의 특성을 따랐다.

카사 론하(Casa Lonja)는 필리프 2세가 가장 좋아했던 건축가 후안 데 에레라가 설계한 것으로,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들과 거래를 조절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이 새로운 ‘무역관’은 1503년 이후 알카사르 별채 안에 있는 유사한 시설물들을 대체한 것이다. 에레라가 설계한 ‘무역 거래소’는 1583년~1598년에 건축되었으며, 에스큐리알(Escurial)의 건축가가 선호하는 엄격한 양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의 마지막 작업은 1649년에 완성되었지만, 그 후에도 무역관은 결정된 부지를 차지하지 못했다. 다목적으로 사용된 카사 론하는 1784년에 인디아스 고문서관으로 바뀌었으며, 1790년부터는 아메리카의 식민지와 관련된 모든 역사와 외교 문서들을 보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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