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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네드의 에드워드 1세 시대 성곽군 [Castles and Town Walls of King Edward in Gwynedd]

사진 없음 표시 이미지 귀네드의 에드워드 1세 시대 성곽군

상세정보

  • 국가 영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 위치 북웨일스(North Wales)|||귀네드(Gwynedd)
  • 좌표 N53 8 23|||W4 16 37
  • 등재연도 1986년
  • 등재기준

    기준 (ⅰ) : 13세기 군사 건축의 특징인 이중 성벽 구조와 중앙 중심 대칭구조를 결합시킨 점과 건축물의 균형과 석조술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움 면에서, 보매리스 성과 할렉 성은 특별한 예술 업적을 보여 준다. 이 성들은 왕의 수석 건축가이자 1290년~1293년에 할렉 성의 총사령관이었던 제임스 오브 세인트 조지의 걸작들이다.

    기준 (ⅲ) : 아주 오래된 귀네드 공국의 왕실 성들은 왕실의 명령들이 완전히 문서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세 건축에 관한 뛰어난 증거가 된다. 하워드 몬태규 콜빈 경(Sir Howard Montagu Colvin)이 편찬한 『국왕 치적사(The History of the King’s Works)』(런던, 1963)에는 영국 각지에서 데려온 인부들의 출신지와, 채석된 돌이 유적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에 대해 적혀 있다. 아울러 이 기록은 건설 작업의 자금 조달에 대한 개요도 서술하고 있으며, 일부들과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관한 이해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중세 역사의 중요한 참고 자료들 중 하나이다.

    기준 (ⅳ) : 귀네드에 있는 성들과 요새들은 13세기 말에서 14세기 초에 지어진 유럽 군사 건축물들 중 가장 훌륭한 예로 꼽힌다. 이 성들은 1283년에 건축되기 시작했다. 1294년 매덕 압 루엘린이 일으킨 웨일스 봉기로 인해 때때로 방해받으면서 진행된 건축 작업은 카나번에서 1330년까지, 보매리스에서는 1331년까지 계속되었다. 지금까지 복원 작업이 최소한으로 이루어져 왔으므로, 이 성들은 망루, 도개교, 요새화된 문, 장애물, 각면보, 지하 감옥, 탑과 장막벽 같은 중세 건축 형식의 진정한 레퍼토리를 원상태 그대로 제공한다.

요약
보매리스(Beaumaris) 성과 할렉(Harlech) 성, 그리고 카나번(Caernarfon)과 콘위(Conwy)의 요새화된 복합 단지들은 옛날 북 웨일스 귀네드 공국 땅에 있다. 보매리스 성과 할렉 성은 ‘세인트 조지의 제임스(James of St. Jorge, 또는 Jacques de Saint-Georges d’Espéranche)’라고 알려진 당시 최고 군사 기술자가 건축한 것이다. 잘 보존된 이 유적들은 에드워드 1세의 재위(1272~1307)시절에 건설된 군사 건축물이며, 식민지 건설과 방어 시설의 사례들이다.
목차
특징

완성도, 보존 상태, 잘 짜인 내부 공간과 비상한 중세 건축 형태의 레퍼토리라는 면에서, 보매리스·콘위·카나번·할렉 성과 콘위 및 카나번의 요새 도시는 13세기 말과 14세기 초 유럽 군사 건축의 가장 훌륭한 본보기들로 꼽힌다. 건축 양식 면에서 일관성이 돋보이는 이 성들은 에드워드 1세 때 왕실 소속 건축가이자 당대 최고의 군사 건축가였던 제임스가 설계·감독한 중세 군사 건축의 걸작이다.

방대하고도 상세한 성들에 대한 동시대의 기술적·사회적·경제적 기록들과 카나번과 콘위에 남아 있는 인접 요새 도시들은 중세 역사의 중요한 참고 자료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13세기 특징인 이중 성벽 구조와 중앙 중심 대칭구조를 결합시킨 방법을 쓴 점과 건축물의 균형과 석조술의 아름다움 면에서, 보매리스 성과 할렉 성은 특별한 예술적 업적으로 평가된다.

유산면적
6.00㏊
참고번호
374
본문

귀네드에 있는 성들과 요새화된 도시들은 13세기 말에서 14세기 초에 지어진 유럽 군사 건축물들 중 가장 훌륭한 예로 꼽힌다. 이 성들은 1283년에 건축되기 시작했다. 1294년 매덕 압 루엘린(Madoc ap Llewellyn)이 일으킨 웨일스 봉기로 인해 때때로 방해 받으면서 진행된 건축 작업은 카나번에서 1330년까지, 보매리스에서는 1331년까지 계속되었다. 지금까지 복원 작업이 최소한으로 이루어져 왔으므로, 이 성들은 망루, 도개교, 요새화된 문, 장애물, 각면보, 지하 감옥, 탑과 장막벽 같은 중세 건축 형식의 진정한 레퍼토리를 원상태 그대로 제공한다.

왕실의 성들은 중세 건축의 독특한 점들을 보여 준다. 남아 있는 기록에는 잉글랜드 전 지역에서 데려온 인부들의 출신지가 밝혀져 있으며, 채석된 돌을 유적에서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있다. 아울러 이 기록은 건설 작업의 자금 조달에 대한 개요도 서술하고 있으며, 인부들과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관한 이해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중세 역사의 중요한 참고 자료들 중 하나이다.

영국 왕인 에드워드 I세는 통치 기간(1272~1307) 중에 영토를 확장하고 방어했다. 피레네 산맥에서 스코틀랜드에 걸쳐 남아 있는 흔적들을 통해 과거 그가 행했던 군사 정책과 정착 정책을 엿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웨일스는 에드워드 1세의 위대한 건설 정책을 잘 보여 준다. 중세 도시 계획의 본보기들인 훌륭한 성들이 요새화된 성벽으로 둘러싸인 새로운 도시와 잘 결합되어 있다.

1283년부터 에드워드 I세는 전대미문의 규모로 성 축조 작업을 시작했다. 그의 작업은 가능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수비대를 주둔시키고, 거주민들이 성으로 이뤄진 도시에 정착하게끔 장려하며, 궁극적으로 전략적이기 보다는 좀 더 상징적인 방법으로 잉글랜드의 힘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20년 동안 적에게 탈취된 뒤 복원한 요새 말고도 10개의 요새들이 건설되었다. 이러한 건축물들 중 인접한 것들이 앵글시(Anglesey) 섬 남동 해안에 있는 보매리스 성과 웨일스 북서 해안에 있는 요새화된 구조의 카나번 성과 콘위 성, 그리고 카디건 만 북쪽에 있는 할렉성이다.

이 건축물이 지닌 유형학적·기술적·양식적 일관성을 통해 이 건축물들이 웨일즈에서 왕의 수석 건축가였던 동일인물이 지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283년에 짓기 시작한 보매리스 성과 할렉 성은 모두 당대 최고의 군사 기술자이자 사보이 출신 건축가인 성 조지 제임스(James de Saint George)가 건축했다. 성 조지 제임스는 1290년~1293년까지 할렉 성의 총독이자 왕의 수석 건축가였다. 이들 성은 겉으로 보아 이중 성벽 중 안쪽 성벽의 거대한 광장을 탑이 있는 팔각형 성벽으로 둘러 싼 형태의 설계구조를 지녔다.

보매리스 성과 할렉 성은 13세기의 특징인 이중 성벽 구조와 중앙 중심 대칭구조를 결합시킨 점이나 건축물의 균형과 석조 예의 아름다움 면에서 특별한 예술적 성취를 보여 준다. 카나번과 콘위의 복합 단지에는 왕실의 성과 총독과 수비대의 일상 거주지가 있었다. 또한, 이곳의 성과 거주지들은 요새화된 인접 도시를 구성하는 군사 시설의 핵심이었으며, 웨일스에서 벌인 에드워드 I세의 정책을 아주 잘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성이 있는 도시들에는 반란이 일어날 때 의용군으로 소집할 수 있는 영국인들이 통상적으로 배치돼 거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