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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레알 데 티에라 아덴트로 [Camino Real de Tierra Adentro]

  • 카미노 레알 데 티에라 아덴트로
  • 제목 : 카미노 레알 데 티에라 아덴트로
  • 설명 : © UNESCO
카미노 레알 데 티에라 아덴트로

상세정보

  • 국가 멕시코(Mexico)
  • 위치
  • 좌표 N22 36 29|||W102 22 45
  • 등재연도 2010년
  • 등재기준

    기준 (ⅱ) : 카미노 레알 데 티에라 아덴트로는 스페인 왕조와 아메리카 대륙 북쪽 영토 간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가장 중요한 경로 중 하나가 되었다. 도로 남쪽을 따라 광산·농장·상품 교역·군사·선교 활동·행정 건축물과 관련된 많은 기념물들이 있다. 스페인이 메트로폴리탄 허브(metropolitan hub)를 이용해 식민지의 방대한 영토를 통제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들로, 토착 환경과 재료, 기술에 적응하면서도 문화와 종교 사상의 탁월한 교류가 이뤄진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기준 (ⅳ) : 카미노 레알 데 티에라 아덴트로 남부 지역의 건물, 건축과 기술 유적 등 여러 기념물들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했던 단계 중 하나를 설명하고 있다. 스페인의 식민지 은광 개발과 이와 관련해 이뤄진 도시와 교외 경관의 변화이다.

요약
카미노 레알 데 티에라 아덴트로는 일명 ‘실버 루트(Silver Route)’라고도 알려진 왕립 내륙 도로이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무역로이며, 멕시코시티(Mexico City)에서 미국의 텍사스(Texas)와 뉴멕시코(New Mexico)까지 북으로 이어지는 약 2,400㎞의 도로 가운데 1,400㎞를 따라 있는 기존의 5개의 세계문화 유산과 기록된 유적 55개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길은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300년 동안 무역로로 활발하게 이용되었다. 주로 사카테카스(Zacatecas)와 과나후아토(Guanajuato), 산 루이스 포토시(San Luis Potosí)에서 채굴한 은과 유럽에서 수입한 수은을 운송하는 데 이용되었다. 광산 회사들로 인해 개발이 강화된 길이지만, 이와 동시에 스페인과 미국 문화를 중심으로 사회·문화·종교가 교류·촉진되었던 길이기도 하다.
목차
탁월한 보편적 가치

카미노 레알 데 티에라 아덴트로는 멕시코시티에서 산타페(Santa Fe)까지 이어진 ‘스페인 대륙간 왕립 도로’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유산은 멕시코시티에서 발레 데 알렌데(Valle de Allende)까지 1,400㎞ 연장선상에 교량과 과거의 대농장, 역사적 중심지와 도시, 공동묘지, 과거의 수도원, 산맥, 도로 지역, 광산, 예배당과 사원, 동굴 등 도로 사용과 관련된 55개 유적과 5개의 기존 세계 문화유산 유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카미노(Camino)는 상업 경로로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은은 스페인 정부의 부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한 자원이다. 스페인 정부는 채굴을 위해 북쪽 지역을 개척하도록 하였다. 이들은 일꾼들이 살 수 있는 마을과 요새·농장·교회를 지었다. 이런 많은 투자는 광산 개발, 도로와 교량 건설, 다민족 도시 건설, 스페인과 토착 문화의 장식미를 융합해 보여 주는 화려한 건물들, 교회가 있는 대농장 부지들을 건설하도록 하였으며 이것은 시골 지역을 중심으로 시작된 농업지역의 혁신이었다.

사람들은 도로를 따라 이동했다. 초기에는 노새 몰이꾼들의 정착지에서 시작하여 이동은 상당량 촉진되었는데, 이로 인해 도로를 따라 독창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 풍부한 은은 스페인과 유럽 다른 지역의 경제 발전을 이루었고 극심했던 경제 인플레이션 시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도로는 사회적 팽창을 가져왔으며 궁극적으로는 경제 개발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의 사회 통합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해서 형성된 구조물들은 도로 남쪽에 연장선상에 있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교류를 반영하고 있다.

완전성

연속 유산으로 등재된 유산들은 카미노 레알 데 티에라 아덴트로의 파급을 반영하는 다양하고 다채로운 기능과 유형적 요소들을 보여 주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취약한 상태이다. 새 도로와 경관이 생겨남으로 해서 어느 정도 방해받고 있으며, 기본 구조를 방치 하는 등, 적절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성

개별 요소가 도로의 전반적인 영향을 반영하는 구체적인 방식이 한층 투명하게 수립되어야 하고, 개별적으로 기여한 요소들이 더 잘 반영되고 이해되도록 해야 한다. 특히 기존의 세계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이런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역사적 배경

카미노 레알 데 티에라 아덴트로는 스페인 정복 기간 동안 멕시코 북부의 광산 지대와 광산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농경지·목초지·군사 거점을 조성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이와 동시에 선교사들은 인디오들과 광산 활동에 참여한 정착민들의 정신생활을 지원했다.

초기에 카미노 레알 데 티에라 아덴트로의 거점과 면적은 정해지지 않았으며, 이후에도 고정된 도로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후 멕시코시티와 광산, 그리고 새 도시가 조성된 북쪽 벽지 지역을 잇는 도로로 점차 발전해 나갔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16세기 이후 도로를 보호하기 위해 요새와 도시·농장 개발이 계획됐다.

1546년에 이뤄진 사카테카스의 광산 발견은 이런 과정의 출발점이 되었다.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이곳에서 채굴하는 은과 수은, 광산 도시에 필요한 상품들을 안전하게 배달해야 했기 때문이다. 16세기~19세기에는 스페인에서 건너온 무역상들과 성직자들, 정복자들은 북아메리카 지역의 부(富)를 본격적으로 획득하기 시작했다. 첫 단계로 사카테카스·과나후아토·산 루이스 포토시의 광산들과 뉴 스페인 총독부의 수도였던 멕시코시티를 연결하는 도로를 조성했다. 카미노 레알 데 티에라 아덴트로는 멕시코시티를 통해 필리핀(Philippines)과 플로리다(Florida), 앤틸리스(Antilles) 제도, 남아메리카에 있는 스페인 영토를 잇는 경로였다.

멕시코시티는 육로를 통해 멕시코 만의 베라크루스(Veracruz) 항구와 연결되어 유럽 지역으로의 무역을 지원하거나, 역시 육로를 통해 멕시코 태평양 연안의 아카풀코(Acapulco) 항과 연결되어 아시아 지역과의 교역을 지원했다. 북쪽으로는 1598년에 설립된 뉴멕시코(오늘날 미국의 뉴멕시코 주) 총독부의 산타페 관저로까지 이어졌다.

1552년에는 과나후아토 광산이 발견되면서 빠르게 부가 축적되었다. 이후 1556년부터 1604년까지 산 마르틴(San Martin)·프레스닐로(Fresnillo)·솜브레테(Sombrerete)·찰치후이테스(Chalchhihuities)·니에베스(Nieves)·마자필(Mazapil)·인데(Inde)·산타 바바라(Santa Barbara)·파랄(Parral)· 피노스(Pinos) 광산이 잇달아 개발됐다. 생산이 증가된 은은 스페인으로 수출됐다. 또 1535년에 멕시코의 카사 데 모네다(Casa de Moneda)에 처음으로 세워진 아메리카 조폐국에서 대규모의 화폐를 발행했다. 이 모든 활동으로 국제 무역이 급증하면서 18세기 세계 최초의 경제 혁명인 세계 경제의 통화화가 이뤄졌다.

카미노 레알이 운영되면서 건축·도시·산업·고속도로·문화가 발전했다. 집중적인 은 생산과 무역 팽창은 ‘왕립 광산 캠프’와 이를 보호하기 위한 요새, 선교사들이 활동할 선교원의 토대를 제공했다. 이로 인해 새로 조성된 도시들은 초기 스페인 도시와 농장 일꾼들의 거주지인 인디오 마을의 영속성을 보호하기 위해 행정·경제·정치·종교를 관리했다.

뉴 스페인 북쪽을 통해 연장된 도로를 따라, 특히 인구 밀집 지역과 떨어진 경우에는 도로를 표시하기 위한 이정표로 랜드마크(landmarks, 눈에 띄는 표지물)가 조성됐다. 안전하고 관리가 가능한 도로와 상업적 목적의 다리, 포장도로, 여울 같은 기반들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자연환경과 그 지형을 이해해야 했는데, 이런 현실이 카미노 레알 데 티에라 아덴트로에 있는 각 유적의 특징을 결정지었다. 또한 가톨릭 사상과 스페인어 또한 무역과 함께 전파되어 나갔다.

도로는 17세기와 18세기에 일부 번영기를 맞았다. 그러나 새 광산이 발견되면서 시들해졌고, 전염병이 창궐하거나 분쟁이 벌어졌다. 더 넓은 범위에서 살펴보면 16세기는 토대를 닦는 시기였고, 이후 스페인의 이상을 지역 필요에 맞추어 적용하면서 아주 중요한 거주지와 교회 등이 건설되었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까지는 풍부한 광산이 발견된 일부 지역에서는 확장과 번영이 이뤄졌고, 도시 계획 없이 고속 성장한 사카테카스 같은 도시들이 조성된 시기이기도 하다.

도로를 따라 생겨난 정착지로 인해 다른 도시들과 요새가 건설되기도 했다.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토지를 할당해 농장을 짓도록 했는데, 많은 경우 광산 활동과 관련이 있었다. 대부분의 도로는 포장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습기 찬 날씨에는 통행이 어려울 뿐 아니라 위험했다. 그러나 몇 개의 교량이 건축되었다. 17세기 말에는 계획에 입각해 산 루이스 포토시 같은 광산 도시들이 조성되었는데, 이들 도시들은 각 광산의 주변에 자리를 잡았다.

은광에 토대를 둔 두 번째 번영기는 18세기 후반에 찾아왔다. 이 기간에는 교회 재건축과 돌로 된 교량 건축, 농장 확대에 많은 돈이 쓰였다. 세 번째 번영기는 독립 전쟁 직후인 19세기 중반으로, 뉴멕시코 지방까지 도로가 개통되면서 교역이 늘었다. 은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품들이 교역되었고, 많은 교회들이 재건축되었다. 도시에 자리 잡은 집과 민간 건물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철도로 은을 실어 나르기 시작하면서 이 도시들은 쇠퇴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보존 및 관리 체계

연방정부는 물론 주 정부와 지방 정부 차원에서 상당한 수준의 법적 보호 체계를 마련해 두고 있다. 고고학적 측면에서는 기념물과 특히 도로 그 자체에 대한 보존 대책이 다소 미흡하지만, 등재 유산 대부분의 보존 상태는 전반적으로 양호하다. 연방정부는 국립 인류학 역사연구소(INAH, National Institute on Anthropology and History)를 통해, 10개 주 정부 또한 자체적인 관리 방법을 수립해 두고 있다.

대부분 유산의 관리체계는 적절하며, 국립 인류학 역사연구소의 전반적인 역할도 적당하다. 모든 유산을 대상으로 조율된 관리 체계가 마련되어 있지는 않지만, 전국 주지사협의회가 공동 연구 그룹을 설립해 티에라 아덴트로의 카노 레알 프로젝트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경관 구조와 관련해서는 개별 유적의 일체를 법적으로 보호하고 모든 유적을 관리, 보호하는 체계를 수립하기 위해서 제안된 완충지역을 넘어 등재 유적을 규정하고 보호할 필요가 있다.

유산면적
3,102㏊
완충지역
268,057㏊
참고번호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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