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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트린트 [Butrint]

  • 제목 : 부트린트
  • 설명 : © UNESCO / Author : A.Tzigounaki
부트린트

상세정보

  • 국가 알바니아(Albania)
  • 위치 블로러 카운티(County of Vlorë), 사란더 주(District of Sarandë)
  • 좌표 N39 45 4|||E20 1 34
  • 등재연도 1992년(1999년 확장, 2007년 부분 수정)
  • 등재기준

    기준(ⅲ) : 오래된 도시 부트린트의 자연 환경 변화로 인해 주민들은 중세 시대 말에 이 지역을 떠나게 되었는데, 이는 이 고고학적 유적이 현대의 알바니아 영토에 있었던 고대 및 중세 문명에 대한 귀중한 증거를 제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약
선사 시대 이래 인간이 거주해 온 부트린트(Butrint)는 그리스의 식민지였다가 로마의 도시로 편입되었다. 이후 비잔틴 제국의 통치 아래 번영을 누리다가 잠시 동안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았다. 습지가 형성된 후 주민들이 떠나면서 중세 말에는 버려진 도시가 되었다. 현재의 부트린트에는 각 시대에 어떻게 도시가 발달했는지 보여 주는 유적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목차
역사적 배경

선사 시대부터 인간이 거주해 온 부트린트는 기원전 7세기 후반에 그리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후 로마의 점령을 계기로 도시의 발달이 이루어졌다. 초기 기독교 시기에는 주교의 관할지가 되면서 기독교인들에 의해 다수의 종교적 건축물이 세워졌다. 7세기에 슬라브족이 발칸 반도에 침입했을 때부터 1204년에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후 에피루스(Epirus) 공국이 세워질 때까지 도시는 여러 차례에 걸쳐 많은 시련을 겪었으며, 비잔틴 제국의 지배 아래 마지막으로 번영을 누렸다. 14세기 후반에 베네치아의 지배를 잠시 받은 후,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던 때에 호수 주변에 형성된 습지가 증식함에 따라 주민들은 부트린트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부트린트 고고 유적은 이곳에 도시가 발달한 시기별로 주요 건축물이 모인 온실과 같다. 요새화된 도시는 그리스의 식민지였던 시기부터 중세 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단계의 건축 양식을 보여 준다. 가장 흥미로운 건축물은 고대 그리스의 극장으로, 형태가 잘 보존되어 있다. 초기 기독교 시대의 주요 유적은 로마가 통치하던 때에 만들어진 세례당이다. 대중 목욕탕 안에 세워진 세례당은 모자이크로 바닥이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초기 기독교 시대의 바실리카 성당은 9세기에 재건되었고, 건물의 트랜셉트 구조의 회중석과 애프스(apse) 다각형 구조의 성당 외벽을 분석할 수 있을 만큼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유산면적
3980㏊
완충지역
4611㏊
참고번호
570ter
본문

부트린트 고고 유적지는 알바니아의 남부 고원 지대에 있으며,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이곳은 부트린트 호수에서 이오니아 해로 흘러가는 비바리(Vivari) 운하를 통해 지중해로 연결된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부트린트의 거주 지역은 상인들의 무역로로서 중요한 지점이었고, 기원전 4세기에 고대 세계의 주요 해양 및 상업적 중심지로서 최고의 번영을 누렸다. 그 예로 기원전 6세기에 세워진 요새를 보면 그 당시 도시의 군사적·경제적 잠재력을 실감할 수 있다.

알바니아의 고대 문화 경관의 구조를 형성하는 지역 중 하나인 부트린트 유적지의 아크로폴리스가 서 있는 언덕은 거대한 석조 벽돌로 만든 벽에 둘러싸여 있다. 기원전 3세기 언덕 기슭에 건설된 원형 극장은 이 도시가 문화적으로 풍요로웠음을 보여 준다. 원형 극장 내에는 1,500명가량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던 23단의 석조 관람석이 보존되어 있다. 원형 극장 가까이에 2개의 사원이 있으며, 그중 하나는 도시 주민들이 숭배했던 그리스 신화의 ‘의술의 신(god of medicine)’ 아스클레피오스(Asclepios)에게 바쳐진 것이다.

이 유적지를 발굴한 결과, 육체적 아름다움에 대한 그리스적 이상을 완벽하게 구현한 ‘부트린트의 여신(Goddess of Butrint)’이라는 뛰어난 조각 작품뿐만 아니라 접시, 화병, 도자기 촛대 등의 많은 유물들이 나왔다. 물론 이 도시는 로마의 통치를 받으며 서서히 몰락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3개의 거대한 분수, 3개의 공중목욕탕, 모자이크로 장식된 실내 경기장, 그리고 특히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재위 기간에 건설된 송수로 등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완전히 방치되지는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초기 기독교 시기에 이곳에는 2개의 바실리카 성당과 1개의 세례당이 있었다. 그 후 중세에 들어서면서 부트린트는 비잔틴 제국과 노르만족 간의 권력 투쟁에 개입되었고, 그 후에는 프랑스 앙주 왕가와 베네치아 도시 국가의 권력 투쟁에 개입되었다. 이어서 베네치아와 오스만튀르크 제국 사이의 분쟁에도 연루되어 격동의 시기를 겪었다. 그 후 자연 환경의 변화로 지하 침수가 발생하자 주민들은 이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도시는 버려져서 진흙과 초목으로 뒤덮였다.

이 도시는 20세기 초부터 이탈리아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체계적인 발굴이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1944년에 알바니아가 해방되자 알바니아의 고고학자들이 본격적으로 발굴에 착수했다. 부트린트를 뒤덮은 진흙과 초목은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오히려 자연과 인간에 의한 파괴로부터 유적을 보호해 주었고, 그로 인해 도시 전체가 거의 온전한 상태로 유지되었다. 이 유적지의 주요 영역으로는 트리콘치(Triconch) 궁전으로 알려진 고대 후반의 화려하고 웅장한 저택과 고대의 세례당, 그리고 로마의 저택 및 디아포리트에 있는 고대 성당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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