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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치의 불교 기념물군 [Buddhist Monuments at Sanchi]

사진 없음 표시 이미지 산치의 불교 기념물군

상세정보

  • 국가 인도(India)
  • 위치 마디야 프라데시 주(Madhya Pradesh)
  • 좌표 N23 28 45.984|||E77 44 22.992
  • 등재연도 1989년
  • 등재기준

    기준 (ⅰ) : 탑문 4개에 나타난 비례의 완성도와 조각 장식의 풍부한 표현 기법 덕분에 제1스투파는 유례없는 예술적 성취로 평가받는다. 산치의 탑·사원·수도원 등 불교 기념물군은 건축 시기와 높은 수준면에서 인도 특유의 유물이다.

    기준 (ⅱ) : 산치의 불교 기념물군 중 가장 오래된 보존 유산인 ‘아케메네스 예술에서 영감을 받은 기둥머리에 사자 장식이 있는 아소카 왕의 석주’가 세워진 때부터 중재자로서 산치의 역할은 분명하였다. 산치는 마우리아 왕조를 거쳐 인도의 슝가 왕조·샤타바하나 왕조·쿠샨 왕조·굽타 왕조에 이르기까지 주변에 그들의 예술과 문화를 전파하였다.

    기준 (ⅲ) : 산치는 중세 인도에서 힌두교가 발달하기 전까지 불교의 중심지 구실을 하였으며 기원전 3세기〜기원후 1세기까지 주요 불교 성지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기준 (ⅳ) : 산치의 스투파, 특히 제1스투파와 제3스투파는 이런 양식의 기념물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꼭대기에 정육면체의 사리함(harmika)이 있는 달걀 모양의 반구형 돔(anda)은 원형의 테라스(medhi) 위에 세워졌다. 프라닥슈나 파타(pradakshina patha)라는 신자들이 통행할 때 사용하는 길도 있다. 난간(vedika)과 스투파의 문(토라나)은 목조에서 석조 구조로 바뀐 대표적인 예로, 바깥층으로 덮이고 말뚝 울타리로 둘러친 원시 형태의 거석 봉분이 계속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기준 (ⅵ) : 산치는 현존하는 불교 성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이다. 부처는 이승에서나 현세 재세 동안 한 번도 그곳을 방문하지 않았지만, 산치 성지의 종교적 가치는 뚜렷하다. 제1스투파에 봉안된 사리함은 샤리푸트라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샤리푸트라는 석가모니의 제자로 부처가 입멸한 뒤 6개월 만에 영면에 들었다. 샤리푸트라는 특히 소승불교를 닦은 수행자로서 존경 받는 인물이다.

요약
인도 보팔(Bhopal)에서 40㎞ 떨어진 채 넓은 평야를 굽어보는 언덕에 있는 산치(Sanchi)의 불교 기념물군은 돌기둥·왕궁·사원·수도원 등의 불교 기념물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보존 상태가 저마다 다르며 가장 오래된 유물은 기원전 1세기~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은 현존하는 불교 성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으로 12세기까지 인도 불교문화의 중심지였다.
목차
참고번호
524
본문

가장 오래된 보존 유산인 아케메네스 예술(Achaemenid art)에서 영감을 받은 기둥머리에 사자 장식이 있는 아소카 왕의 석주가 세워진 때부터 중재자로서 산치의 역할은 분명하였다. 산치는 마우리아 왕조를 거쳐 인도의 슝가(Sunga) 왕조·샤타바하나 왕조·쿠샨 왕조·굽타 왕조에 이르기까지 주변에 그들의 예술과 문화를 전파하였다. 산치는 현존하는 불교 성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이다. 부처는 이승에서나 현세 재세 동안 한 번도 그곳을 방문하지 않았지만, 산치 성지의 종교적 가치는 뚜렷하다. 제1스투파(탑)에 봉안된 사리함은 샤리푸트라(Shariputra)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샤리푸트라는 석가모니의 제자로 부처가 입멸한 뒤 6개월 만에 영면에 들었다. 샤리푸트라는 특히 소승불교(Hinayana)의 수행자로서 존경 받는 인물이다. 산치는 중세 인도에서 힌두교가 발달하기 전까지 불교의 중심지였으며 기원전 3세기〜기원후 1세기까지 주요 불교 성지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1818년 테일러(Taylor) 장군이 발견하기까지 산치는 600년 동안 버려져 있었다. 보팔에서 45㎞ 떨어진 산치 불교 기념물군은 당시 울창한 초목에 뒤덮였다.

인도의 고고 탐사팀이 도착해서 작업을 감독하기까지 탐사는 주먹구구식이었으나 점차 언덕이 정리되자 망가진 일련의 유산 50여 개가 나타나면서 인도 고고학사에 가장 위대한 산치 불교 기념물군 유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산치 불교 기념물군은 기원전 3세기에 찬드라굽타(Chandragupta)의 손자인 아소카(Asoka) 왕이 불교로 개종하면서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기원전 250년경). 찬드라굽타는 마케도니아 침략자를 물리치고 마우리아 왕조를 창건한 왕이다. 아소카 왕의 부인은 이웃의 비디샤 마을 출신이다. 아소카 왕은 산치의 불교 성지를 창건하거나 적어도 중창하였다.

아소카 왕은 자신의 칙령을 새겨 놓은 높이 12m의 석주를 세웠다. 아소카 석주의 남쪽에는 초기에 건설된 지름 20m짜리 석탑이 있다. 꼭대기에는 돌로 만든 에디쿨라(aedicula, 소사당)가 있으며 주위에는 목재 난간을 둘렀다. 현재 제1스투파로 알려진 이 유산은 슝가 왕조와 안드라(Andhra) 왕조(기원전 1~2세기) 때에 확장되었으며, 산치의 주요 유산으로 손꼽힌다. 엄청난 양의 사암을 쌓아 만들었으며 돌난간이 있는 호화로운 전랑으로 둘러싸여 있다. 제1스투파의 반구형 돔은 지름 36.6m, 높이 16.46m이다.

특히 제1스투파는 방문객이 접근할 수 있는 탑문(torana) 3개에 새겨진 아름다운 장식으로 더 유명하다. 정확히 기본 상(相) 자리에 있는 이 탑문들은 원래는 목조였으나 석조로 바뀌었다. 기둥 2개에 아키트레이브(architrave) 3본을 같은 간격으로 설치하였다. 얕은 돋을새김과 깊은 돋을새김을 원형으로 장식한 화려한 조각과 우수한 작품들은 도상(iconographic) 연구의 귀중한 보고이다. 조각상에는 부처의 전생(前生)과 관련된 본질적인 주제가 표현되어 있다. 여러 가지 다른 주제는 역사나 전설에서 따온 것이다.

동물, 식물, 인간, 불교 설화를 바탕으로 생생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기법과 천장이나 조각한 기둥에 드러난 생생한 독창성이 융합하여 초기 불교예술의 비길 데 없는 걸작을 만들어냈다. 산치는 슝가 왕조(기원전 2세기) 때 조성된 석탑 2개가 유명하다. 제3스투파인 토라나 석탑은 1세기에 건조된 보기 드문 걸작이다. 산치 기념물군에서는 다양한 구조물이 발견되었다. 11세기~12세기에 조성된 벽 터 안에서 발견된 돌기둥·왕궁·사원·수도원 들은 제각기 다른 보존 상태로 산치 최후의 날을 보여준다. 가장 인상적인 구조물로는 불교 사원 17번과 45번, 수도원 51번을 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