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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흘라 요새 [Bahla Fort]

  • 바흘라 요새
  • 제목 : 바흘라 요새
  • 설명 : © UNESCO / Author : Mario Santana
바흘라 요새

상세정보

  • 국가 오만(Oman)
  • 위치 나즈와(Nazwa)의 서쪽 25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바흘라(Bahla) 오아시스
  • 좌표 N22 57 51.012|||E57 18 3.996
  • 등재연도 1987년
  • 등재기준

    기준 (ⅳ) : 바흘라 요새와 오아시스 정착촌, 그리고 그 둘레를 에워싼 요새는 방어용 건축물 유적의 뛰어난 예이며, 이 지역을 지배했던 부족은 바흘라를 기반 삼아 중세 말기에 오만과 아라비아 반도에서 번영을 누렸다.

요약
바흘라(Bahla) 오아시스는 12~15세기에 이 지역을 지배했던 바누네한(Banu Nebhan)족에 의해 번영하였다. 굽지 않은 흙벽돌을 이용하여 세운 벽과 탑, 돌로 쌓은 토대가 남아 있는 거대한 요새는 동종의 요새를 대표하는 뛰어난 유적으로, 바누네한족이 보유했던 강력한 힘을 증명한다.
목차
탁월한 보편적 가치

굽지 않은 흙벽돌을 이용해서 세운 벽과 탑, 돌로 지은 토대가 남아 있는 거대한 바흘라 요새는 폐허가 되어 있다. 그리고 요새와 인접한 곳에는 조각으로 장식된 미흐라브(mihrab, 기도처)로 유명한 ‘금요일의 모스크(Friday Mosque)’가 있다. 모스크는 진흙 벽돌로 지은 주변의 정착촌과 야자 숲을 내려다보며 우뚝 서 있다.

이 요새와 정착촌, 그리고 오만 사막 안에 진흙벽으로 에워싸인 오아시스는 바누네한족 덕분에 번영하였다. 12~15세기에 오만의 중앙 지역을 지배하면서 바흘라를 그들의 수도로 삼았던 바누네한족은 이곳 바흘라에서 다른 소수부족들과 관계를 설정하였다. 바흘라는 이바디즘(Ibadism, 이슬람의 한 종파) 파의 중심지였으며, 고대 오만의 이맘(imam, 예배를 집례하는 성직자)들이 이곳을 기반으로 활동하였다. 바흘라는 아라비아 반도와 아프리카 대륙 너머 그 이상까지 영향을 미쳤다.

많은 출입구가 있는 수르(sur, 성벽)는 미로처럼 얽힌 진흙 벽돌 가옥들과 경작이 가능한 땅을 에워싸고 기다랗게 이어져 있으며, 곳곳에 보초병이 다니는 길과 감시탑이 세워져 있다. 오아시스는 우물의 팔라즈(falaj, 수로) 시스템과 먼 곳에 있는 샘에서 지하수를 끌어오는 지하 수로를 통해 계절에 따라 내리는 비를 관리하며 물을 공급받았다.

초기 정착민들의 농업 관개용, 가정용 수리공학 기술을 엿볼 수 있는 바흘라는 중세 이슬람 시기에 지어진 요새화된 오아시스 정착촌의 모습을 보여 주는 탁월한 사례이다. 탄약이 발명되기 이전 시대에 속하는 바흘라 요새는 둥근 형태의 탑과 성곽처럼 쌓은 난간이 독특한 특징이며, 둘레에 세운 돌담과 진흙 벽돌 기술에 비추어 당시 지배 계급이 차지했던 지위와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알아크르(al-Aqr), 알구제일리(al-Ghuzeili), 알하울랴(al-Hawulya)를 포함하여 전통적이고 토속적인 건물들(하라츠, harats) 가운데 현재 남아 있는 진흙 벽돌로 된 가옥들, 모스크, 강당(사블라스, sablas), 목욕탕은 경비병의 거처(아스카리, askari)와 더불어 팔라즈의 위치에 관계된 뚜렷한 정착 패턴을 보여 준다.

이 정착촌의 중요성은 매우 아름답게 치장된 미흐라브가 있는 ‘금요일의 모스크’, 반쯤 덮개로 가린 채 좁은 길을 향해 서 있는 단층 구조의 가게들로 이루어진 옛 시장(수크, souq)의 현전하는 부분, 이 전체 구역을 에워싼 외벽을 통해서 더욱 강조된다. 시장은 근처 바위언덕의 노두(露頭)에 세워진 요새에서 감시하기 편리한 곳에 있다. 조각이나 아름다운 부조로 장식된 나무 문, 선반, 창문 가리개 등은 풍부하고도 번영하였던 공예의 전통을 증명한다.

완전성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당시, 바흘라 요새와 인접한 ‘금요일의 모스크’는 그 주변의 자그마한 오아시스 마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지적이 나왔고, 그에 따라 문화유산의 경계는 오아시스 정착촌 전체를 에워싸고 있는 수르를 따르게 되었다. 현재 도로 하나가 이 문화유산을 가로지른다.

바흘라 건축 유적을 구성하는 주요 구역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으며, 그 구성 요소 모두가 통일감이 있고 대체적으로 완전하다. 이 유적은 유서 깊은 성벽을 두른 오아시스 마을과 중대한 방어 단지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자재가 흙을 이용한 구조이기 때문에 붕괴의 위험이 있고 유적지를 배수하는 과정이 효과적이지 않다. 시장의 경우에는 현대적인 자재로 대체될 위험에 처해 있다.

취락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하는 팔라즈 시스템과 수로는 이 취락을 내부의 다른 도시와 연결하기도 하고 그 경계선을 훨씬 더 넘어서기도 하는 유서 깊은 경로를 따르고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반 사이에 도시 개발이 몇 차례 진행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흘라는 사막의 경관 속에 도드라진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하지만 마을의 개발과 관광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그동안 지켜 온 특출함과 경관 안에서 뚜렷한 시선을 끄는 힘이 약해지고 있다. 시장, 주위의 정착촌, 출입구와의 관계에서 감시자의 역할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문화유산 안에서 이루어지는 개발에 대한 세심한 관리에 달려 있다.

진정성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무렵, 우기가 한 번씩 지날 때마다 바흘라 요새는 허물어져 가고 빠른 속도로 붕괴되고 있었다. 바흘라 요새는 1988년 위험에 처한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었었다. 1990년대 초반에 알자발 저택(Bayt al-Jabal), 입구 쪽 회당(사바, sabah), 북서쪽 벽과 남서쪽 벽을 포함하여, 요새의 일정 구역에서 적합하지 않은 자재를 사용한 보강 공사가 진행되었고, 1992년 뜰에 위치한 강당(사블라스)이 붕괴되었다.

흙으로 지은 구조물에 관한 교육과 조언을 토대로, 1995년부터 오직 흙으로만 만든 자재로 뜰의 배수, 새로운 지붕, 붕괴된 벽과 탑의 보강, 성곽(카사바, qasaba), 뜰에 있는 모스크, 알자발 저택, 알하디트 저택(Bayt al-Hadith), 마구간을 대상으로 보존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추가 붕괴를 막기 위해 무너진 우물 위에 덮개를 씌웠다. 강당은 1999년 요새의 뜰 안에서 복원되었다. 공사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작성되었고, 사진 측량을 포함하여 요새에 관해 완전한 문서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문화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전달하는 형태, 설계, 자재는 대체로 그 진정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004년에 위험에 처한 세계문화유산 목록에서 제외되었다. 바흘라는 오늘날까지도 번성하고 있는 촌락이다. 하지만 일반 가옥 내에서 전통적인 민가 구조를 포기함에 따라 진정성이 위협을 받고 있다. 시장도 보존과 유지 보수가 부족하며, 또 보수 공사를 할 때 자재나 시공 방법을 변경하였던 까닭에 취약한 상태이다.

보존 및 관리 체계

바흘라 요새와 오아시스로 구성된 문화유산은 국가유산보호를 위한 오만의 국법(1980)에 따라 행정적·법적으로 보호를 받고 있다. 요새와 그 주변 지역은 현 수도 무스카트(Muscat)에 있는 문화유산부가 관리하는데, 다클리예(Dakhliyeh) 지역에서 지역 사무소를, 바흘라에 유적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2005년 3월 장기적인 보호와 보존, 유적지 내의 역사적인 건축물과 구조물, 공간 형태의 이용에 초점을 맞춘 본 유적지에 대한 관리 계획이 수립되었다. 관리 계획은 본 유적지를 통일성을 유지하는 전체로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과 함께, 건축학적 유적의 통일성과 자연환경 안에서 현저하게 두드러지는 특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현대적인 이용과 발전을 관리해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금요일의 모스크, 성곽, 성벽 그리고 출입구의 보존, 일반 가옥에 다시 거주하기 위해 필요한 지침의 작성, 유적지를 관통하는 교통의 우회 유도, 요새에 전기 공급, 요새 안에 있는 알하디트 저택에 유적 박물관 설립 등을 포함하여 관리 계획에 규정한 몇 가지 조치가 실행되었다. 현재 관리 계획에 대한 재검토가 진행 중이며 공식적으로 채택하기 전에 한 번 더 내용을 갱신할 예정이다. 검토가 끝나고 내용이 갱신되면, 이 문화유산을 장기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기본 틀이 될 관리 계획이 수립될 것이다.

참고번호
433
본문

바흘라 요새는 오만 왕국의 독특한 군사 건축물을 대표하는 놀라운 예이다. 오만 문명의 역사는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서의 시대에 이 나라는, 과거 금보다 더 소중한 것으로 여겨졌던 좋은 향이 나는 유향 교역의 중심지였다. 항해의 전통으로 널리 알려진 오만의 역대 술탄들은 16~19세기에 동아프리카의 해안에서부터 인도 대륙의 뾰족한 끝부분까진 걸친 부유한 무역 제국을 지배하였다.

제벨 크다르(Jebel Akhdar) 산맥 아래에 북쪽으로는 루스타크(Rustaq) 요새, 남쪽으로는 이즈키(Izki)와 니즈와(Nizwa), 바흘라 요새가 길게 놓여 있다. 이곳들은 모두 한때 오만 왕국의 수도였던 도시들로서 오만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하지리파(Kharijite, 이슬람교 일파의 신도)가 하룬 알라시드(Harun Al-Rashid) 칼리프의 ‘정상화’를 위한 모든 시도에 저항하고, 그들이 생각한 급진적으로 금욕적면서도 민주적인 종교적인 개념을 실천에 옮겼던 것도 바로 이곳에서였다.

오만의 수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바흘라 오아시스는 12세기 중반부터 15세기 말까지 다른 부족을 지배하였던 바누네한족 덕분에 번영을 구가하였다. 지금은 영광스러웠던 과거가 남긴 유적만이 이 아름다운 산 위에 남아 있다. 돌 토대 위에 어도비(adobe, 찰흙을 벽돌 모양으로 뭉쳐 햇볕에 말린 재료)로 지은 이 거대한 요새의 성벽과 탑은 이슬람 이전 시대의 구조적 요소를 일부 간직하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구조물의 거의 대부분은 마지막 재건축 공사가 16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며, 바누네한족의 번영했던 시대에 건축되었다. 요새 아래 남서쪽에는 아름다운 조각 장식이 있는 미흐라브(기도처)로 유명한 ‘금요일의 모스크’가 있다. 이 모스크는 14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의 기념물은 작은 바흘라 마을과 그 시장, 오아시스 주변의 야자 숲, 어도비 점토로 지은 성벽, 탑과 문, 지하 관개 수로에서 보여준 놀라운 기술과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것들이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을 무렵, 바흘라 기념비는 매우 위태로운 상태에 놓여 있었다. 당시까지 단 한 번도 복원된 적이 없었으며(그래서 유산의 진정성 수준은 매우 높았다), 어떠한 보존 조치로도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바디파가 새 모스크를 세우면서 방치한 ‘금요일의 모스크’의 테라스는 보수 작업을 거치지 않아, 결국 1981년~1983년에 아치가 무너지고 벽에 바른 회반죽이 떨어져 나가면서 급기야 와해되고 말았다. 그 결과 건물 내의 미흐라브 역시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오만 고고학부가 주관한 정밀조사가 1977년 마무리되었지만 복원 작업은 1988년까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복원 작업에 필요한 모든 자금은 오만 정부가 부담하고, 사진측량 기록은 독일 보훔에 소재지를 둔 광산박물관에서 담당하고 있다. 2005년에 복원 작업은 거의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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