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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피아 고고 유적 [Archaeological Site of Olympia]

  • 올림피아 고고 유적
  • 제목 : 올림피아 고고 유적
  • 설명 : © UNESCO / Author : F. Bandarin
올림피아 고고 유적

상세정보

  • 국가 그리스(Greece)
  • 위치 서부 펠로폰네소스 지역(Region of West Greece in the Western Peloponnese)|||일리아 주(Prefecture of Ilia)
  • 좌표 N37 38 60|||E21 40
  • 등재연도 1989년
  • 등재기준

    기준 (ⅰ) : 알티스의 성역은 고대 지중해 세계의 걸작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 중의 하나였다. 그중에는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 피디아스가 기원전 438년~기원전 430년까지 만들었다는 금과 상아로 된 올림피아의 제우스 상 같은 많은 작품들이 사라졌다. 이것은 테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다가 474년에 큰 화재가 그 도시를 덮쳤을 때 파괴되었다. 남아 있는 작품들로는 거대한 그리스풍 청동상, 제우스 신전의 팀파눔과 메토프에 장식되었던 조각품, 헤라 신전에서 기단과 함께 발견된 조각가 프락시텔레스의 헤르메스 상 등이 있다. 모두 미술사에서 주요 조각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훌륭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

    기준 (ⅱ) : 올림피아의 많은 건축물들 가운데 예술과 건축의 역사에 특별히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제우스 신전과 니케 상, 그리고 올림피아의 팔라이스트라이다. 기원전 470년부터 기원전 457년에 건축된 제우스 신전은 기원전 5세기에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에 세워진 거대한 도리아 양식 신전들의 모델이며, 기원전 420년경에 조각가 파이오니오스가 제작한 승리의 여신 ‘니케 상’은 승리에 대한 비유적 상징물로서의 영향이 대단히 오래 지속되어 19세기 신고전주의 예술에까지 미쳤다. 그리고 올림피아의 팔라이스트라 역시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가 『건축서』에서 언급한 것처럼 로마의 건축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올림피아의 건축물들이 건축의 표준으로서 지니는 가치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기준 (ⅲ) : 올림피아는 그 존속 기간이나 질적 수준면에서 펠로폰네소스의 고대 문명을 훌륭하게 증언하고 있다. 최초로 사람들이 살게 된 시기는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기원전 3000년에서 기원전 1100년까지 계곡에 정착지들이 들어섰다. 청동기 시대의 정착지와 무덤들이 알페이오스 강기슭을 따라 발굴되고 있다. 중기 헬라스 문명과 미케네 문명이 여기에서 번성했다. 제우스에게 바쳐진 알티스 지역은 기원전 10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까지 주된 성역이었으며, 이 시기는 올림피아가 전성기를 구가할 때였다. 고대 그리스 세계의 위대한 성역이 폐허가 된 곳에 자리 잡은 정착지를 통해서도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어느 동로마 제국 시대 교회의 유적 아래에서 발견된 피디아스의 작업장은 7세기에 자연재앙으로 잠깐 중단되었던 때를 제외하고는 이곳에 지속적으로 사람들이 거주했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기준 (ⅳ) : 올림피아는 종교적·정치적·사회적 기능을 가진 고대 그리스 신전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신들에게 바쳐진 알티스 안에는 제우스와 헤라의 주신전들을 따라 펠로피온(Pelopion)과 같은 오래된 신전들이 있고, 북쪽으로는 크로니온 산의 기슭에 보물 창고들이 늘어서 있다. 이 성역의 곳곳에 사제가 사용하던 테오콜레온(Theokoleon), 관리들이 사용하던 불레우테리온(Bouleuterion) 등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그 밖에도 일반 가옥인 프리타네이온(Prytaneion)을 비롯해 숙소인 레오니다이온(Leonidaion)과 로마 제국 시대의 숙박 시설, 특별한 방문객을 위한 거처(네로의 저택)들이 흩어져 있다. 모든 스포츠 시설들은 올림픽 경기를 준비하고 축하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경기장과 전차 경기장은 동쪽에, 목욕탕과 팔라이스트라, 실내 체육관은 남쪽과 서쪽에 있다.

    기준 (ⅵ) : 올림피아는 보편적인 의미를 갖는 행사를 직접적·구체적으로 연상하게 만든다. 올림픽 경기는 기원전 776년부터 정기적으로 개최되었으며, 경기와 경기 사이의 4년 동안을 의미하는 올림피아드는 그리스 세계의 연대 표시 단위이자 체계가 되었다. 올림픽 경기의 의미는 고대 그리스의 인간 존중이라는 고결한 이상을 실현하는 데 있었다. 이러한 이상을 위해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이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준비하고, 평화롭고 정직한 경쟁을 펼쳤다. 이들의 유일한 목표는 올리브나무 가지로 만든 화관을 상징적인 의미의 상으로 받는 것이었다.

요약
펠로폰네소스(Peloponnesus)의 계곡에 있는 올림피아 유적지에는 선사 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했으며, 기원전 10세기경에 제우스(Zeus) 숭배의 중심지가 되었다. 신들을 위한 성역인 알티스(Altis)는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많은 걸작들이 밀집해 있는 곳 중의 하나이다. 이곳에는 신전들과 더불어 기원전 776년에 시작해 4년마다 올림피아에서 거행된 올림픽 경기를 위한 모든 경기장들의 유적이 남아 있다.
목차
유산면적
106㏊
완충지역
1458㏊
참고번호
517
본문

올림피아는 전해져 내려온 기간이나 질적 수준면에서 펠로폰네소스의 고대 문명을 훌륭하게 증언해 주고 있다. 최초로 사람들이 살게 된 시기는 선사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중기 헬라스 문명과 미케네 문명이 여기에서 번성했다. 제우스신에게 바쳐진 알티스 지역은 기원전 10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까지의 주된 성역이었으며, 이 시기는 올림피아가 전성기를 구가할 때였다. 이 위대한 헬라스 문명 세계의 성역이 있던 유적지에는 한때 기독교도들이 살았다.

펠로폰네소스 서북부의 알페이오스(Alpheios) 강과 클라데오스(Kladeos) 강이 만나는 합류점에는 삼각형 모양의 충적지가 펼쳐져 있다. 올림피아 고고 유적지는 이 충적지 위로 뻗은 크로니온 산(Kronion Hill)의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아온 이 지역에는 헬라스 시대에 크로노스(Kronos)·갈라(Gala), 그 밖의 여러 크토니아(Chthonia)의 신들에 대한 숭배 장소와 펠로폰네소스라는 이름을 남겨준 영웅 펠롭스(Pelops)에 대한 숭배 장소, 그리고 펠롭스가 오이노마오스(Oenomaus)와의 전차 경주에서 승리하여 차지한 그의 딸 히포다메이아(Hippodamia)의 숭배 장소들이 차례로 세워졌다. 기원전 10세기에 올림피아는 제우스신을 숭배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올림피아’라는 이름은 본래 숲이 우거진 이곳의 계곡을 일컫는 말에서 유래하며 제우스가 살고 있는 신성한 산 올림포스를 가리킨다. 도시 국가 피사(Pisa)와 그 후 엘리스의 보호를 받은 올림피아의 성역은 4년마다 한 번씩 이곳에서 열리던 고대 그리스 세계의 경기로 기원전 8세기에 대단한 명성을 누렸다. 기원전 776년부터 시작된 이 경기에는 정기적으로 운동선수들이 모였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웅변가·시인·음악가들도 찾아와 제우스를 찬양했다.

알티스에는 헤라의 신전(기원전 6세기)과 제우스의 신전(기원전 5세기)도 포함된다. 이 성역은 고대 지중해 세계의 걸작들이 가장 밀집한 곳 가운데 하나이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 피디아스(Phidias)가 기원전 438년에서 기원전 430년까지 만들었다는 금과 상아로 된 올림피아의 제우스 상 등 많은 작품들이 사라졌다. 남아 있는 작품들로는 거대한 그리스풍 청동상, 제우스 신전의 팀파눔(tympanum, 고전 건축의 출입구 상인방 위에 얹혀 아치로 둘러싸인 석조물)과 메토프(metope, 벽면)에 장식되었던 조각품, 헤라 신전에서 기단과 함께 발견된 조각가 프락시텔레스(Praxiteles)의 작품 헤르메스 상 등이 있다.

북쪽에는 기원전 6세기와 기원전 5세기의 것인 고대 그리스풍의 보물 창고들이 줄지어 있는데, 그중에는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셀리누스(Selinus)·키레네(Cyrene)·비잔티움과 같은 식민지 사람들이 만든 것들도 있다. 기원전 4세기의 메트론(Metroon)과 에코 열주(Echo Colonnade), 기원전 338년에 카이로네이아(Chaeronea)에서의 승리를 기념해 세운 필리페이온(Philippeion), 기원후 157년~160년에 로마 제국의 집정관 헤로데스 아티쿠스(Herodes Atticus)가 세운 엑세드라(Exedra, 반원형으로 내민 관람석이나 재판관석) 등 후기의 건축물이 선사 시대의 정착지를 굽어보는 성역의 복잡한 지형에 꾸준히 덧붙여졌다.

알티스의 바깥쪽은 건축물의 밀도가 더욱 높다. 공공건물, 성직자와 관리들을 위한 복합 건물, 운동 시설, 목욕탕, 방문객들을 위한 숙박과 편의 시설들이 자리 잡고 있다. 북서쪽에는 기원전 3세기에 지은 팔라이스트라(Palaestra, 고대 그리스의 운동 연습장)와 실내 체육관이 있고, 동쪽에는 옛 경기장이 있다. 이 경기장은 기원후 1세기에 다시 건축되었고, 1961년~1962년에 리모델링되었다. 이들 건축물은 이곳의 장엄한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해 준다. 전차 경기장은 알페이오스 강의 범람으로 쓸려가 버렸기 때문에 원래의 위치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올림피아의 기념물들이 끼친 영향은 대단하다. 그 가운데 세 가지만 언급하면 제우스 신전과 니케 상, 그리고 올림피아의 팔라이스트라이다. 기원전 470년~기원전 457년에 건축된 제우스 신전은 기원전 5세기에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에 세워진 거대한 도리아 양식 신전들의 모델이며, 기원전 420년경에 조각가 파이오니오스(Paeonios)가 제작한 승리의 여신 ‘니케 상(像)’은 승리에 대한 비유적 상징물로서의 그 영향이 너무나 오래 지속되어 19세기 신고전주의 예술에까지 미쳤다. 그리고 올림피아의 팔라이스트라 역시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Vitruvius)가 『건축서(De Architectura)』에서 언급한 것처럼 로마 시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올림피아는 보편적인 의미를 갖는 행사를 직접적·구체적으로 연상하게 만든다. 올림픽 경기는 기원전 776년부터 정기적으로 개최되었으며, 경기와 경기 사이의 4년 동안을 의미하는 올림피아드는 그리스 세계에서 사용되는 연대 표시 단위와 체계가 되었다. 올림픽 경기의 의미는 고대 그리스의 인간 존중이라는 고결한 이상을 실현하는 데 있었다. 이러한 이상을 위해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이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준비하고, 평화롭고 정직한 경쟁을 펼쳤다. 이들의 유일한 목표는 올리브 가지로 만든 화관을 상징적인 의미의 상으로 받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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