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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안후이성 고대 마을 – 시디춘과 홍춘 [Ancient Villages in Southern Anhui – Xidi and Hongcun]

  • 제목 : 남부 안후이성 고대 마을-시디춘과 홍춘
  • 설명 : © UNESCO / Author : G. Boccardi
남부 안후이성 고대 마을 – 시디춘과 홍춘

상세정보

  • 국가 중국(China)
  • 위치 안후이성(安徽省, Anhui Province), 황산시(黃山市, Huangshan City) 이현(黟縣, Yi County)
  • 좌표 N29 54 16|||E117 59 15
  • 등재연도 2000년
  • 등재기준

    기준 (ⅲ) : 시디춘와 홍춘은 봉건 시대에 번영했던 무역 경제를 기반으로 형성된 인류 정착지의 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기준 (ⅳ) : 안후이성(安徽省) 남부에 있는 이 두 마을은 건물과 거리 형태에 있어 중국 역사에서 오래 지속된 정착 시기의 사회 경제적 구조를 반영한다.

    기준 (ⅴ) : 시디춘과 홍춘에는 지난 세기에 대부분 사라졌던 중국의 전통적인 비도시적 정착지가 매우 잘 보존되어 있다.

요약
시디춘(西遞村)와 홍춘(宏村) 두 고대 마을은 지난 세기에 상당부분 사라졌거나 변해 버렸으나 아직 남아있는 곳들은 당시 향촌 정착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마을에는 거리 설계, 건축 양식과 장식, 그리고 가옥들과 방대한 수로 시설 등의 독특한 경관이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목차
역사적 배경

• 시디춘
시디춘은 원래 마을을 통과하는 물줄기 때문에 ‘서쪽 강’이라는 뜻의 시촨(西川)이라고 불려 왔다. ‘서쪽 역참’이라는 의미를 가진 현재의 이름은 마을 서쪽으로 약 1.5㎞ 떨어진 곳에 있던 ‘포체소(鋪遞所)’라는 고대 역참에서 유래되었다. 이 마을은 우위안(婺源) 신안(新安) 지방에서 온 후(胡)씨 일가에 의해 번성한다. 904년에 왕좌를 빼앗긴 당나라 황제 소종(昭宗, 재위 888~904)의 아들을 후씨 집안에서 입양하여 후창이(胡昌翼)라 이름 붙였는데, 1047년 그의 자손들 가운데 한 사람인 후스량(胡士良)이 가족들을 이끌고 우위안에서 시디춘으로 옮겨 온 것이다.

1465년 후씨 일가가 상업 활동을 시작하면서 마을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고, 다수의 중요한 가옥과 공공건물, 특히 회원교와 구라이교(Gulai Bridge) 건설이 그 무렵에 시작되었다. 17세기 중반부터 1850년경까지 후씨 일가는 상업과 정치에서 모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에는 후씨 일가의 많은 구성원이 황실 대학을 졸업하고 황실 관리가 되었다. 마을의 번영이 절정에 달했던 18세기와 19세기에는 600가구 이상이 시디춘에 거주했으나, 청 왕조 말기에서 중화인민공화국에 이르러서는 휘상(徽商)이라 불리던 안휘성의 상인 사회가 쇠퇴하고 봉건적인 씨족 체계가 해체되면서 시디춘의 성장은 끝나고 말았다.

• 홍춘
홍춘은 한(漢)나라의 장군 왕웬(汪文)이 세운 마을로, 1131년에 그의 후손 왕옌지(汪彦濟)가 치쑤 마을(Qisu Village)로부터 레이강산(雷岗山) 근처의 강 상류로 가족들을 데리고 와 그곳에 13채의 집을 지었다. 1401년부터 1620년까지, 그리고 1796년부터 1908년까지 홍춘은 두 차례의 번영기를 누린다. 시디춘의 후씨 일가와 마찬가지로 관리와 상인이 된 왕씨 일가는 어마어마한 부를 쌓았고, 고향 마을로 돌아와 많은 훌륭한 건물들을 지었다.

1405년경에는 지관들의 조언에 따라, 운하를 파서 서쪽 강줄기로부터 깨끗한 물을 마을로 끌어왔다. 200여 년 후에는 남호를 만들어 마을의 급수 체계가 완성되었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는 남호서원(南湖書院, 1814), 경덕당(敬德堂, 1890), 승지당(承志堂, 1855 완공, 1911 재완공)과 같은 많은 공공건물들이 세워졌다. 홍춘은 시디춘보다 좀 늦은 중화인민공화국 건립 이후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되지만, 많은 훌륭한 건물과 뛰어난 배수 체계는 여전히 남아 있다.

유산면적
52㏊
완충지역
730㏊
참고번호
1002
본문

시디춘과 홍춘은 20세기에 상당 부분 사라진 중국의 전통적 향촌 정착지의 모습이 매우 잘 보존되어 있는 마을이다. 두 마을은 봉건 시대에 번영했던 무역 경제를 기반으로 형성된 인류 정착지의 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건물과 거리의 형태는 중국 역사에서 오랫동안 지속된 정착 시기의 사회 경제적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

시디춘은 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에 있다. 북쪽과 동쪽에서 각각 흘러든 물줄기가 마을의 남쪽에 있는 회원교(會源桥)에서 만나고 있다. 이현(黟縣)에서부터 큰 거리는 모두 화강암으로 포장되어 있다. 좁은 골목길과 연결된 큰 거리에는 작은 광장을 앞에 둔 경애당(敬愛堂), 추모당(追慕堂), 자사패루(刺史牌樓) 등 주요 공공건물이 있다. 이 건물들은 널찍한 공간을 갖고 있으며, 목골 구조에 벽돌 벽으로 지어져 있고, 우아한 장식이 조각되어 있다. 건물 대부분은 세 개의 물줄기를 따라 세워졌다. 각각 전변계(前边溪), 후변계(后边溪), 금계(金溪)라 불리는 이 세 물줄기는 마을에 특별한 성격을 부여한다.

‘당(堂)’이라는 이름이 붙은 보다 웅장한 건물들에는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광장이 딸려 있는데, 건물들은 특유의 재료와 장식을 사용하여 기본적 형태에서 변형된 모습을 보인다. 외벽에는 보안상의 이유로 매우 작게 만든 창문이 있는데, 화강암에 조각된 꽃과 기하학적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대부분의 안뜰 앞쪽에는 제한적인 공간으로 특별하게 쓰이는 작은 개인 정원이 있다.

레이강산(雷岗山) 기슭에 자리 잡은 홍춘은 남쪽을 향해 있으며, 산과 강을 양옆에 낀 가운데 부분이 마을의 중심부이다. 마을에 있는 모든 가옥을 거쳐 흐르는 수로가 있으며, 마을 중앙에 있는 월소(月沼)와 남쪽에 있는 남호(南湖), 두 개의 연못이 있다. 수로를 따라 바둑판 모양으로 이루어진 거리와 골목길은 마을에 독특한 전경을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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