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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스쿠스 고대 도시 [Ancient City of Damascus]

  • 다마스쿠스 고대 도시
  • 제목 : 다마스쿠스 고대 도시
  • 설명 : © UNESCO / Author : Francesco Bandarin
다마스쿠스 고대 도시

상세정보

  • 국가 시리아(Syrian Arab Republic)
  • 위치 Administrative District of Damascus
  • 좌표 N33 30 41.004|||E36 18 23.004
  • 등재연도 1979년
  • 등재기준

    기준 (ⅰ) : 다마스쿠스에는 미적 가치가 높은 문명의 증거가 남아 있다. 예를 들어 대사원은 우마이야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며 요새, 아젬(Azem) 궁전, 마드라사(madrasas), 칸(khans, 대상의 숙소), 공중목욕탕, 그리고 개인 주택과 같이 여러 시대의 주요 건축물이 남아 있다.

    기준 (ⅱ) : 다마스쿠스는 최초의 이슬람 왕조인 우마이야 왕조의 수도로, 아랍 도시들의 발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스 로마의 격자형에서 유래한 도시 형태의 중심부에 대사원을 건설하였고, 이 도시는 아랍 이슬람 세계에 본보기를 제공하였다.

    기준 (ⅲ) : 역사적 자료와 고고학적 자료에 의하면, 다마스쿠스의 기원은 BC 3000년부터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끊임없이 사람이 거주한 도시라고 알려져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 요새, 몇몇 사원, 묘들은 중세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며, 궁전과 개인 가옥을 비롯한 대부분의 건축 유산은 16세기 초 오스만 제국 정복 이후의 것이다.

    기준 (ⅳ) : 다마스쿠스의 대사원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우마이야 대사원은 세계에서 가장 큰 사원이며, 이슬람 발흥 이래 가장 오래된 사원이다. 그러므로 문화적, 사회적, 예술적으로 중요한 유물로 여겨지고 있다.

    기준 (ⅵ) : 이 도시는 특히 이슬람 시대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 사상, 전통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것이 도시의 이미지와 이슬람 역사, 문화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요약
기원전 3,000년 무렵에 세워진 다마스쿠스는 중동 지역의 가장 유서 깊은 도시 중 하나이다. 중세 시대에는 수공업 중심지로 번창했으며, 특히 검과 레이스 제작으로 유명했다. 도시 곳곳에는 서로 다른 시대에 세워진 125개의 기념물들이 있는데,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8세기 무렵 아시리아(Assyrian) 성소에 세워진 우마이야 모스크(Umayyad Mosque)이다
목차
탁월한 보편적 가치

기원전 3,000년경에 세워진 다마스쿠스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사이, 동양과 서양의 교차점이라는 지리적 위치로 인해 중요한 문화,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 다마스쿠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계속적으로 인간이 거주한 도시 중 한 곳이었다. 이 도시의 외곽에 있는 텔 라마드(Tell Ramad)에서 발굴된 유물은 BC 8000년~BC 10000년부터 다마스쿠스에 사람이 거주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그러나 중요한 도시라고 기록된 것은 아랍인들이 살면서부터였다. 중세 시대에는 이곳이 공예산업의 중심지였으며, 도시 여러 지역에서 전문적인 무역품이나 공예품이 생산되고 있었다. 이 도시에는 헬레니즘, 로마, 비잔틴, 이슬람 문화를 꽃피웠던 문명의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우마이야(Umayyad)의 칼리프(caliphate)는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정하고 이슬람교가 계속 발전할 수 있는 요건을 조성하였으며, 그 뒤를 이은 왕조들도 도시에 흔적을 남겼고, 그 흔적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이곳은 이슬람의 영향이 널리 퍼져 있기는 하지만 이전의 문화, 특히 로마와 비잔틴 문화의 흔적도 보인다. 따라서 오늘날의 다마스쿠스는 도로가 모두 남북이나 동서 방향으로 되어 있고 계획적으로 지어진 도시라는 점에서 로마식 배치를 기초로 하고 있으며, 그리스 도시의 요소와 방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첫 번째 증거로는 로마 시대의 유피테르(Jupiter) 신전, 다양한 문들, 로마의 성벽 등의 유적을 들 수 있다. 다마스쿠스는 우마이야 칼리프의 수도였다. 그러나 로마의 신전이 있던 자리, 기독교 바실리카 자리에 지은 대사원을 제외하고는 이 중요한 시기의 유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현재의 도시 성벽, 요새, 몇 개의 사원, 그리고 묘들은 중세 시대부터 전해져 왔지만, 건축물 유산의 대부분은 16세기 초, 오스만 제국 정복 후부터 전해졌다.

완전성

고대 도시의 성벽이 이어지는 선은 유산의 경계가 되고 있다. 13세기부터 도시가 확장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성벽 밖 지역은, 역사적으로 고대 도시와 관계가 있으며 배경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중요한 유산은 경계 안에 있다. 예를 들면, 우마이야 사원, 마드라스(madrasas), 칸(khans), 요새, 개인 가옥을 비롯한 125점의 보호 기념물 외에도 도시의 배치도와 조밀한 도시 구조, 성벽과 문들이 이 중요한 유산에 포함된다. 지금까지 전통 재료, 전통 방식으로 지어진 건축물을 제대로 보존 및 관리하지 못한 탓에 침식에 취약한 상태이며, 성벽 밖의 역사지구에 대한 보존 정책이 부족하여 환경적으로도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다.

진정성

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역사적으로 이어져 온 구조와 공간 구성은 그대로 남아 있으며 핵심이 되는 별개의 요소들 역시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상업 활동과 준공업(semi-industrial) 활동이 성벽 안 도시와 교외의 주거 지역으로까지 확대됨에 따라 유산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

보존 및 관리 체계

고대 도시에 대한 계획 규제와 관리 책임은 두 개의 정부 부서에서 담당하고 있다(구 도시 산업보호 위원회와 유물 및 박물관 종합부서). 도시 발전 사업을 위한 기술 협력은 국제기구의 지원을 받아 지방 행정 및 환경부에서 맡고 있다. 보존 정책은 정부와 재정부서, 시민 등 도시의 여러 이해 관계자들이 얼마나 참여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진다. 1976년에 시리아의 문화, 역사 유산으로 성곽 도시를 지정한 장관 명령 No.192호 외에도 이 도시는 1999년에 개정된 유물 관리법 222에 의해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성곽 내 도시를 복원 및 재건하기 위한 의회법 No.826은 성곽 도시의 새로운 환경 조성을 재검토하였다.

고대 도시의 건설 활동을 통합 조정할 여러 단체의 대표들은 옛 다마스쿠스 보호 및 개발 위원회를 설립하였다. 도시 계획을 위한 초안은 2010년에 장관이 결정한 No 37/A에 의해 공식적으로 승인되었다. 완충 지역도 경계가 정해졌으나 아직 공식적으로는 승인되지 않았다. 일단 승인 및 시행될 경우 적절한 보호 활동을 시작할 수 있도록 보호 관리 방안을 명확히 해야 한다.

유산면적
86ha
참고번호
20
본문

다마스쿠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일 뿐만 아니라 가장 오래된 도시이기도 하다. 역사적 문명의 발생지이기도 하고 과학과 예술의 등불 역할을 하였으며, 인류 역사의 많은 부분을 말해주는 백과사전과도 같다. 마찬가지로, 수천 년에 걸친 건축과 도시 계획을 비교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이기도 하다.

BC 3000년에 건설된 다마스쿠스는 중동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팔미라(Palmyra)라고 하는 비옥한 오아시스 지역에 건설되었다. 서쪽으로는 카지얀(Qasiyun) 산이 높이 솟아 있고, 동쪽으로는 사막이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바라다(Barada) 강이 흐르고 있다. 이곳은 아랍 왕국(BC 11세기~7세기)의 수도였으며 이스라엘의 왕들과 자주 전쟁을 하던 곳으로, 잠시 다비드 왕에게 정복되기도 하였다.

아시리아에 두 번이나 패배한 후, BC 600년에는 네부카드네자르(Nebuchadnezzar)에게 완전히 정복당하였다. 그리고 BC 530년에는 페르시아의 수중에 들어갔다가 BC 333년에 알렉산드로스 제국에 병합되었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Septimius Severus)와 그의 아들 카라칼라(Caracalla)가 다스리던 시기에(AD 197~217)는 로마인들로 인해 인접한 두 지역이 하나가 되었다. 도시는 아직도 확인 가능한 하나의 내부 고리를 이루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사산 왕조(Sassanid)의 파르티아인(Parthians)들에게 통치를 받은 후 636년에는 영원히 아랍 세계의 일부로 봉쇄되었고, 우마이야 왕조의 기념비적인 수도가 되었다. 그 후 도시는 내부 고리 모양 성벽 밖에까지 확대되기 시작하였고 경제적으로 번창하였으며, 마멜루크(Mameluke) 왕조 하에서는 수도의 지위를 잃고, 몽골의 습격에 의해 대대적으로 파괴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도시로서 명맥을 유지하며 계속해서 번영해 왔다.

다마스쿠스에는 아랍에 정복되기 이전의 흔적도 남아 있는데, 〈사도행전(Acts of the Apostles)〉에 언급된 데쿠마누스(decumanus)와 같은 로마 시대의 도로는 도시를 동서로 연결하는 현재의 도로와 일치하며, 도로를 따라 서 있던 기둥들 중 아치 하나는 지금도 남아 있다. 구 도시로 들어가는 주요 출입구에는 하미디에 수크(Hamidiyeh souk, 시장)가 있다. 다마스쿠스의 아유브(Ayyubid) 요새는 군사 건축물로서 걸작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뜰과 성벽 및 두 개의 거대한 입구는 1400년 티무르인의 정복을 비롯하여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을 말해준다.

4세기 말, 테오도시우스(Theodosius) 황제가 통치하던 당시 고대 유피테르 신전이 있던 자리에 세례 요한(St John)에게 헌납된 비잔틴 교회가 있으며, 여섯 번째 우마이야 칼리프이던 알 왈리드(al-Walid)의 명령에 의해 706년 이후, 대사원이 건설되었다.

그 복합 건물의 외부 뜰은 거대한 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측면에는 서로 다른 양식의 첨탑 세 개가 있다. 또한 내부 뜰은 삼면이 이중 포르티코(portico)로 덮여 있고, 중앙은 기도 전 목욕 의례를 위해 돔으로 덮여 있다. 포르티코 옆에는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덮인 작은 팔각정 형태의 보물의 돔(Dome of Treasure)이 있는데, 이것은 여덟 개의 코린트 양식 기둥 위에 얹혀 있으며 돔이 덮여 있다. 내부 뜰의 네 번째 면에는 모스크(mosque)가 있는데, 아치에 의해 세 개의 나란한 통로와 직각의 선으로 나눠져 있다. 그 중앙은 목조 돔으로 덮여 있었지만 1401년에 파괴되었다.

이와 같은 배치는 시리아와 아르메니아의 기독교 교회를 연상시키며, 비잔틴 예술의 전통을 이어 온 우마이야 왕조 예술의 중요한 일례가 되고 있다. 아바스 왕조(Abbasids)가 권좌에 오른 후, 도시 구조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도심은 더 이상 유기적 역할을 하지 않게 되었고, 자치 구역으로 나뉘어 각각 사원, 공중목욕탕, 시장, 경찰 등의 시설을 갖추게 되었다. 이슬람식 도시 구조는 이와 같이 헬레니즘식 격자형 사각형 블록으로 변형되었다. 또한 대사원을 중심으로 수세기에 걸쳐 장인과 상인 길드가 형성되었고, 기독교 소수 집단은 도시 북동쪽 구역의 성 바울(St Paul) 교회와 보존 구역 주변에 모여 기반을 굳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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