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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라 고대 도시 [Ancient City of Bosra]

  • 제목 : 보스라 고대 도시
  • 설명 : © UNESCO / Author : Véronique Dauge
보스라 고대 도시

상세정보

  • 국가 시리아(Syrian Arab Republic)
  • 위치 데라 주(Governorate of Deraa)
  • 좌표 N32 31 5.016|||E36 28 54.012
  • 등재연도 1980년
  • 등재기준

    기준 (ⅰ) : 2세기의 로마 극장은 이층 갤러리를 갖고 있으며, 나중에는 요새화되어 다마스쿠스(Damascus)로 가는 길을 지키는 튼튼한 성으로 활용된 훌륭한 건축물이다. 6세기 순교자인 세르기오와 바코스, 레온티우스의 성당 유적, 보스라의 대성당 등은 초기 교회 건축 형태의 발전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예이다. 1950년에 복원된 오마르 모스크는 헤지라(Hegira) 1세기의 희귀한 건축물로서 시리아에 보존되어 있다. 자미 마브라크 알나쿠아 마드라사는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가장 유명하다.

    기준 (ⅲ) : 한때 인구가 80,000명에 이르렀던 이 도시에는 나바테아, 로마, 비잔틴, 우마이야의 건축물 유적이 남아 있다. 이 유적들은 기준(ⅰ)에서 언급했던 주요 기념물을 포함하여 과거의 문명을 증언하고 있다.

    기준 (ⅵ) : 예언자 마호메트는 보스라를 두 번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그의 삶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다. 첫 번째 방문이 끝날 즈음에 수도승 바헤이라(Baheira)가 마호메트를 가르치면서 선지자가 될 것을 암시했다고 한다.

요약
로마 제국 당시 아라비아 지역 행정구의 수도였던 보스라는 고대 상인이 메카(Mecca)로 이동할 때의 주요 경유지였다. 도시의 높은 성벽 안에는 2세기에 지어진 웅장한 로마 극장, 초기 기독교 유적과 모스크(mosque) 등이 있다.
목차
탁월한 보편적 가치

보스라(Bosra)’라는 지명은 이집트의 엘아마르나(el-Amarna) 언덕의 점토판서(粘土板書, 기원전 14세기의 것)에 나와 있으며, 이것은 파라오(Pharaoh), 페니키아(Phoenician), 아모르(Amorite) 왕 사이에 서신 왕래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바테아(Nabataean) 왕국의 북부 수도였던 보스라는 서기 106년에 로마 제국으로 통합되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알렉산더 세베루스(Alexander Severus) 황제가 이 도시를 ‘식민지 보스트라(Colonia Bostra)’라고 명명하고, 아랍인인 필립(Philip)이 특별히 이 도시를 위해 화폐를 주조하였다. 비잔틴 시대에, 최초의 비잔틴 도시였던 보스라는 국경 지역의 주요 시장이었으므로, 634년에 이슬람 문명이 확장되던 시기에 아랍 상인들이 상업을 하려고 들어왔으며 주교는 안티오크(Antioch) 의회에 참여하였다. 또한 보스라는 오늘날 로마, 비잔틴, 이슬람 시대의 유적들이 남아 있는 중요한 고고학적 유적지이다. 나바테아(Nabataean), 로마의 기념비적인 기독교 교회, 모스크, 마드라사(Madrasa)는 도시 안에 있다.

주요 특징으로는 2세기 트라야누스(Trajan) 황제 시대에 건설된 로마 극장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곳은 481년~1251년에 요새화되었다. 알오마리 모스크(Al-Omari Mosque)는 이슬람 역사상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모스크이며, 이슬람교 고등교육 시설인 자미 마브라크 알나쿠아(Jami' Mabrak al-Naqua) 마드라사는 가장 유명하고 가장 오래된 마드라사의 하나로 유명하다. 보스라 성당 또한 초기 기독교 유물로서 매우 중요한 건물이다. 보스라는 2,500년 동안 사람들이 거주하면서도 거의 그대로 보존되었다. 나바테아, 로마, 비잔틴, 우마이야드(Umayyad) 시대의 흔적이 모두 남아 있는 보스라는 당시의 사상이나 이념을 알 수 있는 개방된 박물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완전성

고대 도시 보스라는 거주민이 살았던 고고학적 유적지로, 19세기 말에 그 상태가 매우 악화되었다. 그러나 나바테아, 로마, 비잔틴, 우마이야 왕조 시대의 유적을 포함하여 원래의 도시 구조가 많이 남아 있다. 최근에는 유적지의 마을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유산 밖에도 새로운 주거지가 생겨나고 있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완충 지역을 설정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

진정성

보스라에 남아 있는 주요 기념물들은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유적지에 현대적 마을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유물 및 박물관 부서(DGAM)의 재정착 정책으로 대부분의 가구가 구 도시 지구 외곽에 있는 새 주택으로 옮기게 되었다. 결국 구 도시는 다시 사람들이 떠나 죽은 도시가 되어, 야외 박물관으로 부활시키고 있다.

보존 및 관리 체계

이 유산은 1999년에 개정된 유물관리법 222에 의거하여 보호되고 있다. 유적지 관리 계획이 없는 상태이며 커뮤니티 문제와 자금 및 기술 자원 부족, 전문가 부족으로 인해 보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물 및 박물관 부서에서는 국내외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리아 정부는 최근 유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보스라 시를 더 잘 활용하기 위해 종합 계획 사업에 착수하였다. 그리고 2007년에는 이 사업을 지휘하기 위한 보호위원회가 설립되었다. DGAM은 이 유적에 지리정보시스템 시행 권한을 마련하였으며, 이 사업은 2009년에 시작되어 일 년간 계속되었다. 완충 지역을 설정 및 승인하여 유산 환경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참고번호
22
본문

보스라에서는 사상과 관련하여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몇 가지 있었는데, 예를 들면 주교가 안티오크 의회에 참여하였으며, 선지자 마호메트(무함마드)는 이곳을 두 번 방문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바히라(Bahira)라는 이름의 네스토리우스교 수도승은 마호메트가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하였을 때 기독교 계율을 가르쳤다고 한다.

여러 시대에 지어진 유적 덕분에 보스라 시는 아주 보기 드문 미적 가치를 지닌 도시가 되었다. 106년, 보스라의 고대 도시는 성경에 언급된 아라비아 로마 지방에 있는 나바테아 왕국의 북부 수도였다. 비잔틴 제국 시대에는 중요한 종교 도시이자 상인들이 모이는 중심지였으며, 메카로 가는 순례길에 있는 변경(邊境)의 시장 역할을 담당하였다.

메카로 가는 중간 경유지였던 이 도시의 중요성으로 인해 도시는 17세기까지 계속 번영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이곳이 위험한 지역으로 되면서 순례 경로도 덜 위험한 서쪽으로 옮겨 갔다. 이곳에 있는 네모 첨탑은 이슬람 세계 전체에서 가장 오래된 탑이다.

한때 이 도시의 인구는 80,000명에 이르렀지만, 현재 남은 유적 중 거주민이 있는 곳은 아름다운 마을 한 곳뿐이다. 2세기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에 건설된 로마 극장은 포르티코(portico)로 덮인 이층 갤러리가 있는 유일한 기념물이며 지금까지 잘 보존되었다. 이 유일한 기념물은 481년~1231년에 요새화된 장엄한 성탑과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보스라의 영광을 나타내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밖에서 보면 다른 건물들과 유사한 아랍의 요새로 보일 것이다. 반원형의 전면에 큰 석조블록으로 지은 거대한 네모 탑들이(어떤 것들은 높이가 5m를 넘는다) 성곽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방어의 최전선인 깊은 수로 위로 6개의 아치 다리가 가로지르고 있다. 쇠를 씌운 문, 아치형 실내, 구불구불한 통로, 성곽과 같은 모든 종류의 방어 시설들이 성의 군사적 특징을 인상 깊게 하지만, 그 중심에는 화려한 고대 극장이 존재한다.

두 건축물은 똑같이 훌륭하며 서로 긴밀히 통합되어 있다. 13세기의 성벽은 극장의 반원형 객석을 완벽하게 둘러싸고 있다. 아랍인들이 보스라에 들어왔을 때, 그들은 즉시 고대 극장의 모든 문과 구멍을 두꺼운 벽으로 막아 쉽게 방어할 수 있는 요새로 만들었다. 그러나 십자군 전쟁이라는 새로운 위협을 막아 내기에는 이 방어물이 불충분했다. 그래서 11세기 중반에 로마의 건축물로부터 돌출되도록 3개의 탑을 건설했으며, 1202년~1251년에는 다른 탑들을 9개나 더 건설했다. 나중에 극장 내부와 좌석도 덧붙였다. 현재 이 내부는 완전히 노출되어 있으며, 시리아가 독립한 직후에 유물관리과에서 전체를 복원하다.

무대를 바라보는 객석은 길이 45m, 전면에서 뒷면까지의 너비가 8.5m로 1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며, 무대 벽은 코린트식 기둥들이 두드러져 보인다. 세부적인 모습들이 건축물의 완벽함을 더해 주며, 2세기의 건축가들이 관객의 편안함을 배려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자료에 따르면 여름의 뜨거운 햇빛과 겨울비로부터 관객을 보호하기 위하여 극장 전체에 실크 천을 드리웠다고 하며, 극장 안에는 향수가 뿌려진 물을 증발시켜 최고로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냈다고 한다.

보스라에는 나바테아와 로마의 유적, 기독교 교회, 모스크, 마드라사 등이 반쯤 허물어진 성안에 함께 어울려 있으며, 모두 똑같이 유명하다. 순교자인 세르기오스(Sergios), 바코스(Bacchos), 레온티오스(Leontios)의 성당과 보스라의 대성당은 대주교 율리아누스(Julianus)에 의해 513년에 완성되었다.

이 기념비적 건축물의 구조와 동쪽 애프스(apses, 교회 동쪽 끝에 있는 반원형 부분) 측면에 성구 보관실이 있는 배치는 기독교 건축 형태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이슬람의 건축 형태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 오마르(Omar) 모스크는 1950년에 복원되었으며, 시리아에 드물게 남아 있는 헤지라(Hegira)는 1세기의 건축물 중 하나이다. 자미 마브라크 알나쿠아 마드라사는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가장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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