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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히즈르 고고 유적(마다인 살리) [Al-Hijr Archaeological Site (Madâin Sâlih)]

  • 알 히즈르 고고 유적(마다인 살리)
  • 제목 : 알 히즈르 고고 유적(마다인 살리)
  • 설명 : © UNESCO / Author : V
알 히즈르 고고 유적(마다인 살리)

상세정보

  • 국가 사우디아라비아(Saudi Arabia)
  • 위치
  • 좌표 N26 47 1|||E37 57 18
  • 등재연도 2008년
  • 등재기준

    기준 (ⅱ) : 알 히즈르 지역은 고대 후기의 다양한 문명들의 교차로에 있다. 아라비아 반도, 아시아, 지중해 지역으로 향하는 교역로가 이곳과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문화, 건축, 장식, 언어의 사용과 대상들 간의 문화적 교류를 증명하는 중요한 곳이다. 나바테아 도시는 이슬람교 이전 시대에 버려졌지만, 교역로는 메카로 향하는 순례자들과 무역상들에게 계속 국제적인 역할을 제공했다. 20세기에 들어 철도 건설로 도시화를 이룰 때까지 이곳의 중요한 역할은 계속되었다.

    기준 (ⅲ) : 알 히즈르 지역은 기원전 2세기~3세기, 이슬람교 이전 시대, 특히 서기 1세기 사이의 나바테아 문명의 독특한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바위를 직접 잘라 만든 기념물들과 장식에서 다양한 주제가 표현된 파사드는 나바테아 건축 고유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지역에는 농사를 목적으로 파낸 우물이 여러 개 있는데, 이는 나바테아인들의 뛰어난 수리기술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요약
알 히즈르(Madâin Sâlih)의 고고 유적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최초로 등재된 세계유산으로, 페트라 남쪽에 있는 나바테아(Nabatea)의 문명 유적이다. 대규모 보존 지역이며, 기원전 1세기~서기 1세기의 것으로 보이는 파사드 장식이 잘 보존된 무덤과 기념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바테아 문명 이전에 만든 50여 개의 비문과 동굴 벽화도 있다. 111개의 기념 무덤 중 94개의 장식된 무덤이 있고, 우물이 있는 유적도 있다. 이 유적에서 나바테아인들의 뛰어난 건축 수준과 수력학적 전문 기술을 엿볼 수 있다.
목차
탁월한 보편적 가치

알 히즈르 고고 유적지는 나바테아 문명의 주요 유적지이다. 남쪽 지역이 주로 영향을 받았으며, 문명의 순수성이 뛰어나고 보존이 잘되어 있다. 이곳의 건축물은 사암을 직접 잘라 장식하고 제작한 무덤과 기념물들을 포함하고 있다. 외부에서 유입된 다양한 건축술과 장식 기법이 혼합(아시리아, 이집트, 페니키아, 그리스 문화)되어 있는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고대어로 쓰인 비문(리흐얀어, 탈무드어, 나바테아어, 그리스어, 라틴어)들이 남아 있다. 암반 지역에 우물을 파 농사에 이용한 것이 확인되는데, 나바테아 농경술의 발전을 증명해 준다. 이 우물들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헤그라(Hegra)’로 알려져 있던 알 히즈르의 고대 도시는 고대 후기 국제 무역상들의 교역 활동을 보여 준다.

알 히즈르에 의해 탄생한 나바테아 문명은 탁월한 완전성과 진정성을 증거하고 있는데, 이 지역은 초기에 버려진 이후 외부의 간섭이 없어 오랫동안 좋은 기후조건의 혜택을 입었기 때문이다. 주 당국은 통합적 지역보전관리단(Local Management Unit)를 설치한 후 보전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보전관리 계획은 유적지에 대한 만족스러운 보호 정책을 실현 가능하게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 계획은 유적지의 보존에 대한 체계적인 모니터링과 지역 주민과 방문객의 이익을 위해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알리는 사업을 포함하고 있다.

유산면적
1,621㏊
완충지역
1,659㏊
참고번호
1293
본문

알 히즈르 고고 유적지의 기념물과 비문들의 연대는 기원전 1세기부터 서기 1세기에 이른다. 그러나 리흐얀어 문자로 새긴 비문들과 최근에 발견된 고고학적 흔적들은 기원전 2세기~기원전 3세기 초에 인류가 거주했다는 증거를 보여 주고 있다. 가장 대형인 고분들 중에서 3분의 1은 서기 0년~75년 사이의 무덤으로 확인되었다. 2세기에 걸친 전성기 동안 나바테아 왕국은 시리아 남쪽을 넘어 네게브(Negev)와 헤자즈(Hedjaz)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서쪽으로는 로마 세계의 야욕과 맞부딪쳤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강인한 대륙적 기질로 광활한 건조 지역을 다스렸고, 대상교역과 오아시스의 농경지를 개발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고대 후기와 이슬람교 이전 시대에 나바테아는 아로마 식물과 종자, 그리고 향료의 교역으로 잘 알려져 있었는데, 인도양, 홍해, 지중해를 잇는 육로를 장악하고 있었다. 홍해의 항해가 어렵기 때문에 육로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헤그라’는 북동지역 주요 대상교역로의 중요한 정기 기항지였다.

두 번째 육로는 그리스어 문헌에 따르면 에그라 코메(Egra Kome) 항과 연결되었다고 한다. 최근에 발견된 두 군데의 나바테아인의 유적지들이 홍해의 해안에 자리 잡고 있어서 사실상 이 항구일 수도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헤자즈 지역은 106년에 아라비아의 로마 지방과 통합되었다. 175년~177년의 기념비적인 로마의 비문이 알 히즈르에서 발견되었는데, 그렇다면 이 지역에서 로마 역사를 이루었던 시기가 7세기까지의 비잔틴 역사에 해당된다.

헤그라는 지역 출신의 지도자가 이끌던 도시였지만, 356년 당시에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랍의 여행가 알 마크다시(Al-Maqdasi, 946?~1000?)에 따르면, 10세기에 알 히즈르는 작은 오아시스였고 이곳의 우물들을 중심으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4세기부터 19세기 사이에 이 지역이 영구적인 거주지였다는 다른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산발적으로 이따금씩 생긴 곳일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까지 무덤들이 손상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 이 가설을 강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알 히즈르가 단순히 양치기, 무역상, 순례자들이 잠깐 묵었다 가는 계절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페트라의 경우처럼 무덤을 주거지로 변형시키지는 않았다. 14세기에 여행수필가인 이븐 바투타(Ibn Battuta, 1304~1368)는 알 히즈르의 나바테아인의 무덤이 붉은 돌을 깎아 만들어졌다며, 그 모습에 감탄한 내용을 묘사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인간의 활동상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1876년~1877년에 찰스 다우티(Charles Doughty)가 「아라비아 사막의 여행(Travels in Arabia Deserts)」에서 타이마(Tayma) 농부들이 오아시스의 고대 농경지에서 우물을 사용했다고 기록했다. 농경지와 우물을 재사용한 흔적들이 20세기에도 발견되었다. 20세기 초에는 철도, 철도역의 건설과 함께 커다란 변화를 보였다. 일부 고고학적 흔적들이 훼손되었고, 채석장의 개발로 인해 사암의 노두에 변형이 생겼으며, 특히 유적지 북쪽 자발 알마흐자르(Jabal al-Mahjar)와 남쪽에 있는 카스르 알사니(Qasr al-Sani) 지역의 훼손이 심했다.

찰스 다우티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19세기 후반의 일부 유럽 여행자들에 의한 초기 묘사들은 별개로 하고, 이 지역에 대한 최초의 진지한 연구는 도미니크회 신부인 A. Jaussen과 R. 사비냐크(Savignac)에 의해 1907년, 1909년, 1910년에 실시되었다. 그들은 최초로 메디나인 살리흐(Madâin Sâlih) 지역과 아라비아 반도의 북서쪽 지역에 있는 유적에 대해 고고학적 해석과 비명학적 해석을 풀어냈다. 그들의 임무였던 아라비아의 고고학(archéologique en Arabie)은 이 분야의 관련 주제에 관한 표준이 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과 1960년대 사이에 고고학적, 역사적 이유로 많은 서구인들의 여행이 이어지면서 이 유적지와 고대 흔적에 대한 해석이 나오게 되었다. 이때부터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당국인 문화부의 감독으로 발굴과 보존 작업이 실시되었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메디나인 살리흐 지역에서 실시된 정책은 베두인족(Bedouins)의 정착을 고무시키기 위한 방안이었다. 이 계획으로 고대 우물을 현대판 펌프 시스템으로 교체해 재사용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고대의 시설물들이 많이 훼손되었다. 이 정책의 시초는 이 지역을 새롭게 가꿔서 재사용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1972년에 실시된 메디나인 살리흐 고고 유적지의 공식 연구 결과, 농경 활동은 유적지를 벗어나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기술 변화에 따라 새 우물을 파서 집중적인 농사를 짓는 방향으로 변하기도 했다.

이 유적지의 무덤들 중에서 이후 재사용되거나 긴 역사를 거치면서 크게 약탈을 당하지 않은 것들은 이 시대까지 고스란히 보존되어 왔다. 1980년대의 발굴 운동으로 무덤 내부를 청소하고 부장품들을 정리, 정돈하고 제거했으며, 오늘날 알 히즈르에서는 원래의 유적지에 있던 흔적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2001년 이후로 프랑스(외무부와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와 사우디아라비아 왕국(문화부와 박물관, 킹 사우드 리야드 대학교)의 협조와 동의로 알 히즈르 유적 지역에 대한 연구를 실시하고 있다. 연구는 비파괴 방법을 우선 채택한 방식으로 진행되며, 항공사진과 지구물리 분석, 고고학적 연구, 체계적인 목록 정리 등을 활용한다. 상호간의 협정은 2006년에 갱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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