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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숨 [Aksum]

  • 악숨
  • 제목 : 악숨
  • 설명 : © UNESCO / Author : Francesco Bandarin
악숨

상세정보

  • 국가 에티오피아(Ethiopia)
  • 위치 티그라이 주(Tigrai)
  • 좌표 N14 7 48.684|||E38 43 6.996
  • 등재연도 1980년
  • 등재기준

    기준 (ⅰ) : 유적의 잔해는 넓은 지역에 퍼져 있다. 크고 인상적인 높이의 오벨리스크와 유사한 기념 석주, 거대한 석판, 기둥의 자취 그리고 악숨의 전설과 전통이 기록된 왕실 묘지로 이루어져 있다. 도시 서쪽 지구에는 1세기 때 축조한 성곽 3개의 하부 구조가 남아 있다. 조각된 거대 기념 석주는 3〜4세기의 것으로 독특하다.

    기준 (ⅳ) : 도시 전체는 문화 영역의 중요한 발전을 보여준다.

요약
악숨 고대도시 유적은 에티오피아의 북쪽 국경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고대 에티오피아의 중심인 악숨 왕국은 동로마 제국과 페르시아 사이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였다. 1세기부터 13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거대한 유적에는 석조 오벨리스크, 거대한 기념 석주, 왕실 묘지, 고대 성곽이 있다. 10세기 때 정치적으로 몰락한 뒤에도, 오랫동안 악숨에서 에티오피아 황제들의 대관식을 거행하였다.
목차
참고번호
15
본문

기원전 2000년 무렵부터 서기 4세기까지 에티오피아 지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이 있었다. 이주민은 주로 사바(Sabean) 왕국의 문화와 관련이 있는 예멘 서부 출신이었다. 그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고국을 벗어날 유일한 길은 홍해를 건너 에리트레아(Eritrea)에 이르는 직선 경로뿐이었을 것이다. 4세기 악숨은 예멘 남부 대부분을 포함하여 통치 영역이 가장 넓었다. 악숨은 예수 탄생 몇 세기 전에 수도가 되었으며, 고대 그리스·이집트·아시아와 교역을 하였다. 악숨의 함대는 멀리 실론 섬까지 진출하였고, 이후 동로마 제국과 페르시아 사이에 있는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었다.

남부 아라비아 일부를 잠시 지배하기도 하였다. 악숨이라는 이름은 1세기, 에리트레아 해의 항해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악숨은 고대 에티오피아의 중심지로 여겨진다. 사실, 당시 이 지역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왕국의 이름은 이 도시의 이름에서 온 것이다. 유적은 넓은 지역에 퍼져 있다. 크고 인상적인 높이의 오벨리스크와 비슷한 기념 석주, 거대한 석판(石板), 기둥의 흔적, 악숨의 전설과 전통이 기록된 왕실 묘지로 이루어져 있다. 도시의 서쪽 구역에는 서기 1세기 때 축조한 성곽 3개의 하부 구조가 남아 있다.

초창기의 기록과 전설에 따르면, 예루살렘의 솔로몬 왕을 방문한 전설적인 시바의 여왕 마케다(Makeda)는 악숨 출신이라고 한다. 여왕과 솔로몬이 결혼하여 아들이 태어났다. 이 아들이 메넬리크 1세이다. 그는 에티오피아에서 자랐지만 젊었을 때 예루살렘으로 가서 몇 년을 보낸 뒤 언약궤(Ark Of The Covenant)를 가지고 귀국하였다. 에티오피아 신앙에 따르면 언약궤는 이후 악숨의 ‘시온의 성모 마리아 교회’에서 소장하게 되었다.

시온의 성모 마리아 교회 외에도 악숨에는 기독교 시대 이전과 이후로 거슬러 올라가는 다른 유물이 많다. 석판 몇 개에 새긴 명문(銘文)은 고대 세계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에게 매우 중요한 자료로 입증되었다. 이들 가운데 서기 4세기에 에자나 왕의 명령에 따라 제작한 그리스어·사바어(Sabaean, 남부 아라비아어)·게즈어(Ge’ez, 고대 에티오피아어) 등 3개 언어로 된 문서와 3,000년 된 기념 석주와 오벨리스크가 있다. 오벨리스크의 높이는 23m인데, 이는 남부 아라비아의 탑 모양 집 양식의 9층 건물 높이다. 오벨리스크는 정교하게 조각되었다.

악숨은 남부 아라비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악숨의 언어인 게즈어는 남부 아라비아어를 기초로 하고, 지역에 있던 그리스어·쿠시어(Cushitic tongues)로 짐작되는 언어가 섞이면서 변형된 것이다. 건축 예술은 남부 아라비아 예술의 영향을 받았다. 악숨의 미술품들은 중동 신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티그라이 고원(Tigray Plateau)에 있는 수도로부터 악숨은 수단과의 상아 무역을 장악하였다. 악숨은 또한 남쪽에 이르는 교역로와 졸라 만(灣)의 아둘리스 항구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비상한 기술, 화폐 생산, 그리스·로마 상인의 끊임없는 유입, 아둘리스 항으로의 선박 입항 등이 악숨의 성공 비결이다. 무역상들은 악숨의 상품과 교환하려고 다양한 의류, 보석, 금속, 특히 무기용 강철들을 들여왔다.

전성기 때 악숨은 남부 이집트, 동쪽으로 아덴 만, 남쪽으로 오모 강, 서쪽으로 메로에의 쿠시 왕국(Cushite Kingdom of Meroë)에 이르는 드넓은 영토를 지배하였다. 힘야르족(Himyarites)의 남부 아라비아 왕국도 악숨의 지배 아래 있었다. 백성들은 귀족과 달리 소금·철괴(iorn bar)를 화폐처럼 사용하였고, 물물교환이 여전히 상업의 주요 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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