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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 석굴 [Ajanta Caves]

사진 없음 표시 이미지 아잔타 석굴

상세정보

  • 국가 인도(India)
  • 위치 마하라슈트라 주(Maharashtra State)|||아우랑가바드 지구(Aurangabad District)|||소야곤 탈루카(Soyagon Taluka)|||레나푸르 마을(Lenapur Village)
  • 좌표 N20 33 11.988|||E75 42 0
  • 등재연도 1983년
  • 등재기준

    기준 (ⅰ) : 아잔타는 독특한 예술적 성취이다.

    기준 (ⅱ) : 아잔타 양식은 인도와 다른 곳, 특히 자바까지 널리 퍼져 영향을 미쳤다.

    기준 (ⅲ) : 인도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두 순간과 일치하는 두 집단의 기념물이 있는 석굴의 총체는 인도 예술의 진화 과정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인도 굽타 왕조와 이어진 왕조에서 불교 사회, 지적이고 종교적인 공간, 학교와 만남의 공간 등으로 기능한 역할을 설명해주는 뛰어난 증거이다.

    기준 (ⅵ) : 아잔타는 불교사와 직접적이면서도 꽤 깊이 관련된다.

요약
기원전 1세기, 2세기 아잔타 시기의 초기 불교 석굴 기념물이다. 5세기, 6세기의 굽타 왕조 시대에 들어 훌륭하게 장식된 수많은 석굴은 불교 예술의 걸작으로 손꼽히며, 이 때 제작된 아잔타 벽화와 조각은 당시 예술에 영향을 많이 미쳤다.
목차
참고번호
242
본문

아잔타 양식은 인도와 다른 곳, 특히 자바에까지 널리 퍼져 영향을 미쳤다. 인도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두 순간과 일치하는 두 집단의 기념물이 있는 석굴의 앙상블은 인도 예술의 진화 과정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인도 굽타 왕조와 다음 왕조에 걸쳐 불교계, 지성과 종교적 수행, 학교와 만남의 공간으로 기능했던 결정적 역할을 설명하는 빼어난 증거이다.

석굴은 엘로라(Ellora)에서 북동쪽으로 100㎞, 아우랑가바드(Aurangabad)에서 104㎞, 잘가온(Jalgaon) 역에서 52㎞ 떨어진 곳에 있다. 석굴은 사히야드리(Sahyadri) 구릉지대의 숲 속 산골짜기에서 데칸 고원의 화산 용암이 흘러내려와 깎인 지역에 있으며, 아름다운 삼림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부처의 일생을 묘사한 조각과 조각상을 포함한 뛰어난 석굴은 고전 인도 예술의 시발점으로 간주된다.

석굴 29개는 기원전 200년 이래 개굴 작업을 시작하였지만, 엘로라에 밀려 서기 650년 작업이 중단되었다. 석굴 사원 5개와 석굴 수도원 24개는 수도사와 장인 200여 명이 이용했을 것으로 본다. 아잔타 석굴은 잊혀갔으나 1819년 호랑이를 사냥하던 영국인이 다시 발견하였다. 아잔타 유적지는 굽이쳐 흐르는 와고라(Waghora) 강 위로 솟아오른 절벽의 측면을 깎아 만든 석굴 30개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석굴은 절벽의 중간 높이에 계단식 길을 따라 올라갈 수 있지만 한때는 강 가장자리에 있는 계단으로 각각의 석굴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곳에는 신전 5개 또는 차이티야 그리하스(Chaitya-grihas, 9번, 10번, 19번, 26번, 29번 석굴)로 구성된 불교 공동체와 수도원 밀집 지역 상하라마스(sangharamas) 또는 비하라(viharas) 등이 자리 잡았다. 석굴의 첫 번째 무리는 기원전 2세기경에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차이티야 그리하스는 말발굽 모양으로 솟은 출입구를 지나 암벽 쪽으로 연결되었다. 평면도는 바실리카 양식을 재현하였다. 잔교(棧橋)는 기념물 뒤에서 의식의 절차상 걸어 다니게 하려고 중심축과 맞닿은 통로 쪽으로부터 주 네이브(principal nave)를 분리하였다. 석굴 건축물은 목조 건축 양식에서 보이는 요소와 형태를 세밀하게 재현하였다.

석굴의 두 번째 무리는 굽타 왕조와 굽타 이후 왕조 시기인 5세기, 6세기경에 만들어졌다. 이 석굴들은 바카타카스(Vakatakas)와 굽타 시기 동안 개굴되었다. 비문에 따르면 17번 석굴이 왕자를 모시던 신하에게 선물로 제공되던 당시 바라하데바(Varahadeva)와 바카타카스 왕의 신하인 하리셰나(Harishena, 475~500)는 불교 교단에 16번 석굴을 봉헌하였다고 한다. 비문은 4번 석굴의 불상이 마투라(Mathura) 출신인 아브하야난디(Abhayanandi)의 선물로 제공되었다고 전해준다.

이전의 양식을 다시 사용하였지만 건축 방식은 훨씬 다양해지고 폭넓은 양식을 채택하였다. 장식은 다양한 조각품을 통해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 장식에는 인간으로서의 부처를 표현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이런 표현은 석굴의 정면과 내부에 잘 나타나 있다. 다양한 감성을 표현한 벽화는 아잔타의 가장 뛰어난 예술적 업적이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실상 굽타 왕조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인도 예술은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일반적으로 왕조 이름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 아잔타 석굴은 유연한 형태와 고전적인 안정감을 바탕으로 채색한 조각상들로 장식되었다. 굽타 왕조와 후대 왕조 방식의 예술적 업적 가운데 장식의 세련된 색감, 탄탄한 구성, 여인상의 놀랄 만한 아름다움이 아잔타 벽화에 잘 나타남으로써 인류 회화의 걸작으로 손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