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이동하기

샤르이 쇼흐타 [Shahr-i Sokhta]

  • 제목 : 샤르이 쇼흐타
  • 설명 : © Nomination File
샤르이 쇼흐타

상세정보

  • 국가 이란(Iran)
  • 위치
  • 좌표 N30 35 38 E61 19 40
  • 등재연도 2014년
  • 등재기준

    (ii) : 샤르이 쇼흐타는 금석병용시대 후기부터 청동기 시대 초기에 이르는 동안 촌락 거주로부터 도시화된 공동체로 이전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이룩한 중요한 문화·사회 ·경제적 성취 및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이 유적은 기원전 제3천년기에 출현한 여러 복합사회와 이들 사회들 상호간의 접촉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는 보고로 여겨지고 있다.

    (iii) : 샤르이 쇼흐타는 인더스 평야, 페르시아 만의 남부 연안 지역, 오만 해와 이란 남서부,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고대 도시들과 각 문화권 간에 교역과 문화 교류를 유지해왔던 특별한 문명 및 문화 전통을 담은 훌륭한 증거를 간직하고 있다. 고고학적 유적과 출토 유물은 이 도시가 금속과 돌그릇, 보석, 토기 제작 기술과 관련하여 매우 광범하고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iv) : 샤르이 쇼흐타의 고대 유적은 상당히 초기의 도시 계획을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이다. 발굴 조사 결과 이 고대 도시의 규모, 조직, 부의 원천, 교역, 사회 구조 등을 증명하는 흙벽돌 구조물, 매장지, 공방, 공예품 등과 같은 보존 상태가 매우 좋은 증거들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고대 도시는 서로 다른 용도에 따라 주거 지역, 공방 구역 그리고 묘지 구역 등으로 분리 구획되어 있었다. 이런 사실은 이 지역에서 발달한 도시 계획의 매우 중요한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요약
‘불타버린 도시’를 의미하는 ‘샤르이 쇼흐타(Shahr-i Sokhta, 샤르에 수헤테(Shahr-e Sūkhté))’는 이란 고원을 가로지르는 청동기시대 교역로의 교차점에 있다. 흙벽돌로 지은 이 도시의 유적은 이란 동부 지역에서 최초로 등장한 ‘복합사회(complex society)’의 출현을 보여준다. 기원전 3,200년 전에 세워진 이 도시는 기원전 1800년까지 네 차례의 주요시기를 거치는 동안 인구가 증가하였고, 도시 내 여러 구역이 특수하게 발달하였으며, 바로 그 곳에 중요한 유적이 건설되었다. 이곳은 거주지와 매장지, 공방 구역 등의 용도에 따라 별도로 구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수로의 변경과 기후 변화로 인하여 기원전 제2천년기(紀元前第二千年期, BC 2000~ BC 1001) 초기에 완전히 버려진 도시가 되었다. 현재까지 각종 구조물, 매장지, 다수의 중요한 유물이 발굴되었는데, 건조한 사막 기후 덕분에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그 덕분에 기원전 제3천년기(紀元前第一千年期, BC 3000~BC 2001)에 이루어진 복합사회의 출현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고, 복합사회 내의 사회들 간에 상호 접촉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는 보고(寶庫)로 남았다.
목차
탁월한 보편적 가치

이란 고원을 가로지르는 청동기 시대 교역로의 접점에 위치한 흙벽돌 도시 ‘샤르이 쇼흐타(Shahr-i Sokhta, 샤르에 수헤테(Shahr-e Sūkhté))’ 유적은 이란 동부 지역에 최초로 등장한 복합사회(complex society, 분업의 정도나 인구의 크기를 기준으로 사회를 분류한 인류학 · 고고학 개념)의 출현에 관한 증거를 간직하고 있다. 기원전 3200년 전에 세워진 이 도시는 기원전 1800년까지 네 차례의 주요한 시기를 거치면서 인구가 증가하였고 그 기간 동안 도시 내에는 몇몇 구획 지역이 특별히 발달했다. 이러한 구획 지역으로는 기념물 구역, 주거 지역, 공방 구역 그리고 묘지 구역 등이 있다.

이곳은 기원전 제2천년기(第二千年期, BC 2000~ BC 1001) 초기에 강의 물줄기가 바뀌고 기후가 변화되면서 완전히 버려진 도시가 되었다. 구조물들과 매장지 등에서 다수의 중요 유물이 발굴되었는데 건조한 사막 기후 덕분에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어서 기원전 제3천년기(第三千年期, BC 3000~BC 2001)에 출현한 여러 복합사회와 이들 사회들 상호간의 접촉에 관해 알 수 있는 풍부한 정보가 담겨 있는 보고(寶庫)로 여겨지고 있다.

완전성

유산 안에는 유산의 가치를 표현하는 데 필요한 모든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유산의 규모 또한 유산의 중요성을 충분히 전달할 만한 규모로서 그 특징과 과정을 완벽하게 제시하고 있다. 유산은 개발이나 방치로 인해 훼손된 바 없으며 보존 상태 또한 훌륭하다. 유적과 유물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평가를 위해서 적절한 유지 보수라는 개입이 필요하며 일관된 여건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성

주위를 에워싼 사막 경관, 샤르이 쇼흐타의 낮은 구릉의 지표 위에서 드문드문 산재하여 발견되고 있는 고고학적 유물부터 이미 발굴 작업을 거친 복잡한 구조물 단지를 마주할 때 높은 수준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미로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여러 개의 방, 복도, 중정 등은 진정한 고대 건축물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보존 및 관리 체계

이 유산은 국가 소유이며 ‘국가유산보호에 관한 법률(Law for Protection of National Heritage, 1930년)’과 관련된 부칙(1980년)에 의거하여 보호받고 있다. 샤르이 쇼흐타는 1966년 이란의 국가문화재 제542호로 등록되었다. 이 유산은 또한 모든 작업, 조사, 자료 편성 등을 포괄하는 ‘문화재 및 역사 자료에 관한 규칙(Regulations of Cultural and Historical Properties)’에 따른다. 또한 경계 내에서의 활동의 경우 이란 문화유산·공예·관광 기구(Iranian Cultural Heritage, Handicrafts and Tourism organisation, ICHHTO)의 규제 및 승인 대상이다. 이 규제에 따라 완충 지역과 경관 지역이 규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고고학적 발굴 작업과 유물에 관한 사항은 1970년대부터 기록으로 남겨졌으며, 관련 자료와 목록, 유물은 샤르이 쇼흐타에 위치한 이란 문화유산·공예·관광 기구의 학제 간 본부에 보관되어 분석 중에 있다. 발굴 작업으로 드러난 유적은 연중 정기적으로 청소하고 카겔 플라스터(Kahgel plaster, 이란 지역 특유의 진흙·모래 등에 짚을 섞은 거친 벽토)를 이용하여 노출된 벽면을 보강한다.

유산은 이란 이슬람공화국의 정부를 대표하여 이란 문화유산·공예·관광 기구가 유산의 완충 지역에 상주하는 이란 문화유산·공예·관광 기구의 본부를 통해서 관리하며, 그 관리 계획은 연구조사, 보존, 탐방객 관리 및 공개에 관한 단기·중기·장기 조치를 포함하고 있다. 지방 공무원과 전문가로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본부에게 조언하며, 기술 위원회도 지방 공무원과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다. 이란 문화유산·공예·관광 기구의 고등 교육 센터(Higher Education Centre)와 여러 국립 대학교는 유산의 보존 및 관리를 위한 전문 지식 및 교육 훈련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문화유산 및 관광 연구단(Research Organisation of Cultural Heritage and Tourism)이 종합적인 연구조사 및 훈련을 책임진다.

유산면적
275㏊
완충지역
2,200㏊
참고번호
1456
관련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