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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의궤(儀軌)』 [Uigwe : The Royal Protocols of the Joseon Dynasty]

조선왕조 『의궤(儀軌)』

상세정보

  • 국가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 大韓民國)
  • 위치
  • 좌표
  • 등재연도 2007년
  • 등재기준
목차
국가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 大韓民國)
소장 및 관리기관
규장각(奎章閣)|||장서각
등재연도
2007년
본문

고유한 기록유산인 『의궤(儀軌)』는 조선왕조(1392~1910) 500여 년간의 왕실 의례에 관한 기록물로, 왕실의 중요한 의식(儀式)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여 보여 주고 있다. 진귀한 『의궤』는 왕실 생활의 다양한 측면을 아주 자세하게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 혼인·장례·연회·외국 사절 환대와 같은 중요한 의식을 행하는 데 필요한 의식·의전(儀典)·형식 절차 및 필요한 사항들을 기록하고 있고, 왕실의 여러 가지 문화 활동 외에 궁전 건축과 묘 축조에 관한 내용도 자세히 담고 있다.

『의궤』는 3,895권이 넘는 책으로, 시대와 주제별로 분류·구성되었다. 이를 통해 오랜 시간에 걸쳐 왕실의 의식에서 일어난 변화를 알 수 있고, 동시대 동아시아의 다른 문화와 자세하게 비교할 수 있다. 특히 ‘반차도(班次圖)’와 ‘도설(圖說)’과 같은 그림 자료는 그 시대의 제식과 의식을 오늘날의 시각 자료와 맞먹을 정도로 세련되고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정조(正祖, 1752~1800)가 아버지인 사도세자(思悼世子, 1735~1762)의 묘를 방문하는 그림은 여러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길이가 총 15.4m에 이른다. 공인받은 전문 화가들이 정식 역사가와 협력하여 작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그림 위주의 유산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원 저작은 그 자체로 고유하다. 또 그러한 협력 작업 자체가 그 시대 문화 창작의 구조를 명쾌하게 보여 준다.

간단히 말해서 『의궤』는 조선왕조의 중요한 행사와 의식에 관해 자세하게 설명하는 글과 그림을 포괄적이고 체계적으로 모아 놓은 문서이다. 이 기록유산의 특별한 양식은 동서양을 통틀어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세계적 중요성·고유성·대체 불가능성
『의궤』는 유교를 바탕으로 세워진 조선왕조의 양식에 따라 중요한 국가행사를 시행하는 데 참고자료로 사용된 문서들을 엮어 편찬한 것이다. 1600년대~1900년대 초기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편찬된 『의궤』는 조선왕조가 왕실의 의식 절차와 업적에 관한 기록을 편찬하여 후세에 남기고자 전례 없는 노력을 기울인 사실을 보여 준다. 『의궤』는 시간이 흐르면서 국가의 중요 행사와 의식이 변화한 과정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기록하여 다양한 국가 행사의 모든 면을 그림으로 보여 준다. 같은 유교 문화권에 속하는 중국, 일본, 베트남에서도 『의궤』와 같이 의식 절차를 체계적으로 편찬한 것은 아직까지 확인된 바가 없다.

• 세계적 중요성
1. 『의궤』는 보편적 유교 이념에 입각한 예치(禮治, 예로써 다스림)의 구현을 보여 준다.
– 유교는 정치적 목적을 초월하여 인간을 위한 보편적 가치체계를 제공하는 동아시아의 지배적 이념이었다.
– 유교는 백성을 다스리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예치를 옹호했기 때문에 의식 절차와 의례를 특히 강조했다.
– 『의궤』는 유교가 조선왕조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 준다.
– 『의궤』에서 설명하는 절차는 조선왕조의 국가 의식에 관한 것이지만 그 안에 구현되는 가치들은 유교의 보편적 이념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2. 『의궤』는 왕실의 의식 절차를 체계화했고, 그 의식에서 실제로 행하는 것을 설명했다.
– 근세에는 계층화된 신분 제도를 바탕으로 한 왕조 국가가 보편적이었다.
– 의례는 모든 사회 계층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 질서 속에서 사회를 통합하기 위한 의식 절차였으며, 모든 왕조 국가에 공통적으로 있었다.
– 『의궤』는 다양한 국가 의식과, 더 나아가 사회 질서를 체계화하고 기록하고자 한 조선왕조의 시도를 보여 준다.

3. 『의궤』는 범유교 지역에 존재하던 국가의 의식 제도를 반영하는 오례(五禮, 5가지 중요한 유교 국가 의례) 체계에 바탕을 둔 국가 의식에 관한 기록이다.
– 오례는 범유교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국가 의식을 분류하는 체계이다.
– 『의궤』는 오례를 기초로 하는 유교 국가의 국가 의례를 기록할 목적으로 만든 문서이다.
– 『의궤』 컬렉션은 유교 국가에서 오례 제도가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포괄적이고 실제적인 자료이다.

4. 『의궤』는 근세에 유교 국가 간의 국제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 유교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역사에서 몇 백 년 동안 전 지역을 지배하며 모든 면에, 특히 사회적·문화적 측면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의궤』는 유교의 사회 계층구조와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의례의 내용과 독자성을 반영한다.
– 오례 중에서 특히 가례(嘉禮)와 빈례(賓禮)에 해당되는 『의궤』는 대인관계의 의례와 외교사절과 관계가 있는 의식 연회를 다루는 것이며, 유교적 세계 질서 속에서 조선왕조가 처해 있던 지위를 반영한다.
– 『의궤』는 사대(강대국 숭배)와 교린(인접 국가들과의 친선)과 같은 국제관계가 지배적이었던 유교문화권 고유의 유교적 개념을 반영한다.

• 고유성
1. 기록물을 편찬하는 체계로서, 『의궤』는 전례 없이 고유한 형식을 보여 준다.
– 『의궤』 형식은 현대사회에도 없으며, 조선왕조 이전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조선왕조에서 있었던 고유한 행사 기록 방식이자 문헌 편찬 방식이었다.
– 정해진 규칙에 따라 표준화된 『의궤』를 만들었고, 행사나 의식에 관한 주요 기록들을 사회정치적 계급제도와 비슷하게 여러 등급으로 분류했다. 분류를 한 후 『의궤』는 날짜에 따라 편집했다.
– 『의궤』를 일단 만들면, 편찬자 목록을 밝혀 책임 소재를 명확히 명시했고, 문서에 대한 권한을 공식적으로 추적할 수 있게 했다.

2. 『의궤』는 유교적인 계급 사회에서 가장 높은 등급을 기록한 것이다.
– 조선의 계급제도에서는 심지어 정보를 기록하는 방법에서도 등급과 지위의 특성이 있었다.
– 중요한 문서의 종류에 따라 『의궤』 체계가 적용되었고, 정보는 계급사회에 맞는 체계적 구조로 전달되었다.
– 오례에 해당하는 모든 의례들과 당시 국가적 관심을 모은 모든 행사들은 『의궤』에 알맞은 내용이었다.
– 형식에 상관없이 표준으로 받아들여지면 『의궤』에 포함되었으며, 종종 문제가 되는 행사에 대한 중요한 기록이 들어 있다. 『축식의궤(祝式儀軌)』는 육하원칙(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을 사용한 축식(祝式), 즉 의식 행위에 실제로 사용되는 축하, 또는 기도 의식을 설명하는 문서이다.
– 『의궤』는 왕과 관련 부서 대신들이 읽을 수 있도록 특정한 문제에 관한 일종의 포괄적인 보고서로 만들어진 것이다.

3. 대부분의 『의궤』에는 다양한 그림과 도해가 들어 있다.
– 『의궤』는 대부분 그림과 도해로 내용을 보충하고 있고, 대부분 채색되어 있다. 그림들은 의복·규격·깃발·기타 용품 등 의식이나 의례의 여러 가지 측면들과 필요한 도구를 자세히 묘사한다. 또한 의식에 참여하는 여러 집단의 사람들이 현장에서 어떤 곳에 있는지 묘사하는 도해가 한자와 함께 들어 있다.
– 그림·도해 및 설명의 질과 명확성이 탁월하기 때문에, 『의궤』는 우수한 참고 자료로서 충분하다.
– 조선왕조 고유의 양식을 따라 행사 장면을 그렸다. 『의궤』를 제작할 목적으로 공인받은 전문 화가들과 당대의 서예가를 고용했다.

• 대체 불가능성
1. 『의궤』는 대부분은 손으로 직접 썼다.
– 대부분의 경우에 『의궤』는 전문 필경사가 손으로 쓰고 베꼈다. 내용이 똑같은 경우에도 각각 손으로 옮겨 썼기 때문에 각각의 『의궤』는 모두 유일무이하다.
– 손으로 옮겨 쓴 각각의 『의궤』는 그 자체가 원본 문서이다. 행사에 사용되는 문서를 옮겨 쓰기 위해 국가 공인기관에서 편찬했다. 그러므로 『의궤』 각권은 공식적인 권한을 가진 원본 문서라고 할 수 있다.
– 그러나 18세기에 제작된 왕실과 관련된 『의궤』와 화성 축조에 관한 『의궤』는 활판을 사용해 출판했기 때문에 손으로 쓴 『의궤』보다 널리 배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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