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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 [The Archives of KBS Special Live Broadcasting ‘Finding Dispersed Families’]

  • 제목 :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상봉장면
  • 설명 : © 한국방송공사(KBS)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

상세정보

  • 국가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 大韓民國)
  • 위치
  • 좌표
  • 등재연도 2015년
  • 등재기준
목차
국가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 大韓民國)
소장 및 관리기관
한국방송공사(KBS), 국가기록원, 한국갤럽조사연구소
등재연도
2015년
본문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은 KBS가 1983년 6월 30일 밤 10시 15분부터 11월 14일 새벽 4시까지 방송기간 138일, 방송시간 453시간 45분 동안 생방송한 비디오 녹화원본 테이프 463개와, 담당 프로듀서 업무수첩, 이산가족이 직접 작성한 신청서, 일일 방송진행표, 큐시트, 기념음반, 사진 등 20,522건의 기록물을 총칭한다.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냉전체제가 지속되는 지역이다. 대한민국의 이산가족은 일제강점기(1910~1945)와 한국전쟁(1950.6.25.)으로 인한 남북분단으로 발생하여 약 1천만 명에 이른다. KBS는 한국전쟁 33주년과 휴전협정(1953.7.27.) 30주년을 즈음하여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기획했다. 이 기록물은 대한민국의 비극적인 냉전 상황과 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혈육들이 재회하여 얼싸안고 울부짓는 장면은 이산가족의 아픔을 치유해 주었고, 남북이산가족 최초상봉(1985.9)의 촉매제 역할을 하며 한반도 긴장완화에 기여했다. 또한 더 이상 이와 같은 비극이 생겨나서는 안된다는 평화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달했다.

이 기록물은 세계 방송사적으로도 기념비적인 유산이다. 텔레비전을 활용한 세계 최대 규모의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이다. 총 100,952건의 이산가족이 신청하고 53,536건이 방송에 소개되어 10,189건의 이산가족이 상봉했다. 방송 전담인력 1,641명이 투입되고 138일간 방송되었다.

* 관련링크 : http://family.kbsarchive.com

세계적 중요성·고유성·대체불가능성

• TV, 전쟁과 분단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다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은 전쟁의 참상을 전 세계에 고발하고 인권과 보편적 인류애를 고취시킨 생생한 기록이다. 이산가족을 찾겠다는 인파가 계속되는 여의도광장과 KBS 주변은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비에르 페레스 데 게야르(Javier Pérez de Cuéllar) UN사무총장은 김경원 UN주재한국대사와의 회담(1983.7.21.)을 통해 이산가족의 비극에 대해 깊은 동정과 이해를 표했고, 제70차 IPU[Inter-Parliamentary Union] 서울총회에 참석한 7개국 17명의 위원과 국제인권연맹 이사 일행이 현장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시에서 개최된 ABU[Asian Pacific Broadcasting Union] 총회(1983.10)에서는 이산가족을 주제로 한 30분짜리 영어판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었다. KBS 본관 중앙홀에 마련된 기자실에는 전 세계 25개국의 기자들이 상주하면서 상봉소식을 실시간으로 전달하였다. 미국 ABC는 “나이트라인(Night Line)”을 통해 생중계하기도 했다.

또한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프로그램은 인도적인 관점에서 세계인의 찬사를 받았다. 1983년 9월 6일부터 사흘간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 시에서 개최된 제6차 세계언론인대회는 이 프로그램을 “1983년도의 가장 인도적인 프로그램”으로 선정하였다. 1984년 2월 17일 아프리카 가봉에서 열린 제24차 “골드·머큐리 세계평화협력회의” 총회에서는 방송기관으로는 처음으로 “1984 골드머큐리·애드 호너렘 (AD HONOREM)”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상은 세계평화에 기여한 인사나 기관에 시상하여 왔으나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가 전쟁의 상처를 고발하고 인권과 평화의 중요성을 한국은 물론 전 세계인에게 고취시킨 공로를 인정하여 상을 수여한 것이다. 영국 그리니치대학교에서는 방송학 교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전 세계에 분단과 이산가족의 사례는 많지만, 그 슬픔과 그리움이 TV프로그램을 통해 이렇게 강렬하게 표출된 사례는 없었다.

• TV, 냉전의 종식과 한반도 긴장완화에 기여하다
KBS의 이산가족찾기 방송은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냉전이 개개인들에게 내면적으로 입힌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를 본격적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남북한의 이산가족 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부각시켰다. 유창순 대한적십자사 총재는“1천만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조속히 남북적십자사 회담을 재개할 것”을 촉구하는 담화문(1983.7)을 발표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1983.8)에서 “남북한 간의 이념과 제도가 다르다 하더라도 이산가족 문제해결은 더 이상 지연시킬 수 없다”고 강조했다. 레이건 미국대통령은 대한민국 국회 방문연설(1983.11)에서 KBS 이산가족찾기 방송의 성공을 언급하며 북한의 협조를 촉구하였다.

이런 노력의 결과, 이산가족찾기 방송 2년 후에 북한 대표단이 KBS를 방문(1985.5)했고 역사적인 남북한 이산가족의 최초상봉(1985.9)이 이루어졌다. 이후 2014년까지 남북한의 이산가족 총 18,523명이 상봉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이산가족찾기 방송 7년 뒤에는 한국전쟁의 당사자이자 공산권의 대부였던 소련과의 수교(1990.9)도 이루어졌다. 이듬해인 1991년에는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종식되었다. 이처럼 KBS의 이산가족찾기 방송은 국제 냉전질서의 극복과 남북한의 긴장완화에 기여했다.

• TV, 전 국민의 참여와 공감을 이끌다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프로그램은 각계각층의 참여와 공감을 이끌어 냈다. KBS는 그동안 방송에서 수신자 위치에 머무르던 대중의 직접적인 접근을 허용함으로써 10만 명이 넘는 시청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신청접수 전화만도 하루에 6만 통에 이르렀다. 이는 세계 방송역사상 유례가 드문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매일 전파를 통해 전해지는 평범한 이웃들의 상봉장면을 통해 전 국민은 이산가족과 함께 울었고 아물지 않은 전쟁의 상처에 몸서리를 쳐야했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1983년 10월 10일부터 20일까지 전국의 1천4백50가구를 무작위로 추출하여 개별면접을 실시한 결과, 전체 조사대상자 중 53.9%가 이산가족찾기 방송을 새벽 1시까지 시청한 적이 있고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는 사람은 88.8%에 달했다. 방송 3일째부터는 학생·주부·일반시민들 주축으로 안내, 의료봉사, 신청서 대필 등의 자원봉사가 시작되었고, 컬러TV, 공중전화, 이동화장실, 기차표, 생수, 빵, 라면, 부채, 수건 등을 기탁하는 개인과 기업체의 후원도 줄을 이었다. 각 기업체의 이산가족 상봉신청자에게는 특별휴가가 부여되기도 하였다.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은 TV라는 매체가 탄생한 이후 최대 규모의 대중의 참여와 접근을 보장한 기록이라는데 역사적 의의가 있으며, 방송 역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장기 캠페인이다. 전쟁과 분단을 겪은 나라는 많지만 전쟁의 아픔과 상흔을 TV를 통해 이처럼 가장 처절하게 표현한 프로그램은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가 유일하다. 본 기록물은 KBS의 단독 저작권 관리로 유일본이며 외부 복제는 불가하다. 상봉 신청명단 총100,952건은 7권의 책자에 빠짐없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방송출연자들이 친필로 적은 신청접수 대장과 사연판 등이 원본으로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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