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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르베니 파피루스 :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책’ [The Derveni Papyrus : The oldest ‘book’ of Europe]

사진 없음 표시 이미지 데르베니 파피루스 :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책’

상세정보

  • 국가 그리스(Greece)
  • 위치
  • 좌표
  • 등재연도 2015년
  • 등재기준
요약
‘데르베니 파피루스(Πάπυρος του Δερβενίου, Derveni Papyrus)’는 유럽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 된 ‘책’으로 알려져 있다. 1962년 발견된 이래로 이 책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언어학적 발견으로 간주되고 있다. 파피루스 필사본이 만들어진 것은 기원전 340년~320년으로 추정되지만 이 책의 내용은 훨씬 이전인 기원전 420년~410년경의 필사본을 옮겨 적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책에 사용된 방언은 이오니아어 특징(Ionic features)이 나타나는 아티카어(Attic)이거나 아티카어가 덧씌워진 이오니아 방언으로 보인다. 재구성된 문장은 총 26행이며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앞부분(제1행~제6행)은 죽음 이후 영혼의 종착지에 대한 종말론적 종교 의식이 묘사되어 있다. 앞부분과 뒷부분을 연결하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제7행에서 저자는 장래의 비전가(initiates, 밀교에서 비전을 전수받은 사람)들을 향해 이야기한다. 앞부분 보다 내용이 많은 두 번째 부분(제8행~제26행)에서 저자는 신화 속의 가수이자 현자인 오르페우스(Orpheus)의 작품이라 여겨지는 6보격의 시 한 편에 대해 우의적인 해설을 제시하고 있다. 이 시는 이 두 번째 부분의 저자가 염두에 둔 독자인 비전가가 거행할 의식에 사용되었다.

저자는 본질적으로 신들의 계보라고 할 수 있는 오르페우스의 시를 암호화된 우주 생성론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데르베니 파피루스’는 그리스 종교와 철학 연구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자료이다. 왜냐하면 이 책의 발견 이전까지 진위 자체를 의심받았던 오르페우스 시의 창작 시점을 알 수 있는 자료이면서 동시에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이 생각해낸 물리학에 관한 독특한 견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초의 서양 전통의 책인 이 책의 본문에는 세계를 해석해야 하는 필요성, 알려진 규칙에 따라 인간 사회에 소속되고자 하는 욕망, 생의 끝에서 마주하게 된 고뇌 등 인류 보편의 가치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적 차원에서 중요하다.
목차
국가
그리스(Greece)
소장 및 관리기관
테살로니키 고고학 박물관(Archaeological Museum of Thessaloniki)
등재연도
2015년
본문

세계적 중요성·고유성·대체 불가능성
고대 그리스어로 필사된 문학 중에서도 가치 있는 ‘데르베니 파피루스’는 독특한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일단 유럽에서 발견된 역사가 가장 오래 된 책일 뿐만 아니라 그 출처와 고고학적인 맥락에 있어 의심할 여지가 없이 확실히 증명된 자료이다. 그 내용은 기원전 5~4세기 그리스의 종교 및 철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게다가 ‘데르베니 파피루스’는 단순히 그리스의 철학 사상만 연관된 것이 아니고 페르시아의 신학과도 관련이 있다. 제6행에서는 ‘미스타이(mystai, 비전가)’와 ‘마고이(magoi)’라는 두 가지 유형의 의례 집행인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마고이는 미스타이에게 종교 관행을 가르친다. 마고이가 어떤 인물인지는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일부 학자들은 이 문서에서 언급한 마고이가 잘 알려진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 사제이거나 그들을 따르는 그리스인 추종자들이라고 믿고 있다. 한편 다른 전문가들은 허풍선이나 오르페우스 사제를 뜻하는 말로써 ‘마고이’라는 페르시아 말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것에 대해서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의례 집행인을 의미하는 표현으로서 페르시아 어에서 유래된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동방의 교리가 그리스 철학, 특히 이오니아학파에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케 한다.

그리스와 로마의 문헌 자료들에는 고대에 가장 유명한 가수, 오르페우스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오르페우스의 어머니는 피에리아(Pieria)의 서사시를 관장하는 뮤즈인 칼리오페(Calliope)였고, 아버지는 트라키아의 왕 오이아그루스(Oeagrus)라고도 하고 또 다른 주장에 따르면 음악과 태양의 신 아폴론이라고도 한다. 오르페우스는 리라(lyre)를 무기로 아르고호 선원들을 뒤쫓았다. 아내인 에우리디케(Eurydice)가 뱀에게 물려 죽자 오르페우스는 명계(冥界)로 내려가 아내를 다시 살아있는 자들의 땅으로 데려오려고 했다. 명계의 왕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Persephone)는 오르페우스가 태양 아래에 나설 때까지 아내를 뒤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조건 하에 에우리디케를 데려가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오르페우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았고 에우리디케는 다시 명계로 돌아가야 했다. 두 번 씩이나 아내를 잃은 오르페우스는 제 정신을 잃고 미쳐갔다. 시인의 죽음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중 하나는 디오니소스를 모시는 여사제인 마이나스들이 오르페우스를 공격하여 죽였다고 한다. 오르페우스의 머리와 리라를 헤브로스 강(Hebros)에 던졌는데 그것이 결국 레스보스 섬(Lesbos)에 당도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디오니소스나 제우스가 오르페우스를 죽였다고도 하고, 오르페우스 자신이 아내 에우리디케를 살리지 못한 것을 한탄하여 자살했다고도 한다.

플라톤을 통해서 우리는 오르페우스의 영혼이 백조의 삶을 선택했다는 것을, 파우사니아스(Pausanias, 그리스의 여행자·지리학자)를 통해서는 오르페우스의 무덤이 디온(Dion)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트라키아의 왕과 마케도니아(피에리아)의 뮤즈 사이에 태어난 오르페우스는 이 두 지역과 깊은 관련이 있다. 고대의 작가들 대부분은 오르페우스가 트라키아인(Thracian)의 후손이라는 점에 동의하며, 고대의 그림에서도 흔히 트라키아의 복장을 한 오르페우스로 묘사하고 있다. 트라키아가 오르페우스의 고향이었다면, 마케도니아는 디오니소스 숭배(디오니소스 밀교)와 함께 오르페우스 숭배(오르페우스 밀교)가 번성했던 곳 중의 하나였다. 오르페우스가 묻힌 곳이 마케도니아라는 점도 그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마케도니아의 호화로운 무덤에서 출토된 심포지엄 장면이 그려진 그릇, 마케도니아 묘지의 벽화, 무덤에서 발굴된 오르페우스-디오니소스 황금 판(Gold Tablets) 등 이 모든 것이 마케도니아 인들 특히 특권층 사람들의 상당수가 오르페우스-디오니소스 밀교(密敎, mysteries)에 익숙했으며 그것을 통해 죽음 이후에 더 나은 삶을 살기를 기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키리아코스 찬차노글루(κυριάκος τσαντσάνογλου, Kyriakos Tsantsanoglou)와 파라소글루(George M. Parássoglou)가 펴낸 ‘데르베니 파피루스’의 공식 초판(editio princeps)은 번역과 파피루스 연구의 전문기법에 대한 주해, 사진 등과 함께 테오크리토스 쿠레메노스(Θεόκριτος Κουρεμένος, Theokritos Kouremenos)의 텍스트에 대한 최초의 주석 등이 실려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파피루스 문건에 대해 신뢰할 만한 텍스트 기반의 지식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사진과 새로운 보존 기술이 계속해서 발전해가고 있으므로 나중에는 이 자료보다 더 많은 문장을 판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때문에 혹시라도 ‘데르베니 파피루스’를 잃어버린다면 이것은 유럽의 문화유산에 심각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헤르클라네움 파피루스(Herculaneum papyri)’의 사례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명백하다. 발굴된 지 거의 2세기가 지난 후에야 연구자들은 다중분광영상(multispectral imaging) 기술을 통해 많은 내용을 전사할 수 있었다. 이것만 보아도 ‘데르베니 파피루스’와 같은 자료가 미래의 세대를 위해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어야 하는 것은 더욱 분명하다.

2013년 개최된 제4회 ‘테살로니키 현대예술 비엔날레(Thessaloniki Biennale of Contemporary Art)’를 맞아 테살로니키 고고학 박물관은 테살로니키 출신의 현대 예술가 디미트리스 크소노글루(δημητρησ ξονογλου, Dimitris Xonoglou)의 작품 3 점과 함께 ‘데르베니 파피루스’를 전시했다. 이 전시회의 이름은 ‘지중해의 팰렘세스트 : 부패와 부패하지 않음의 세 가지 수수께끼(Mediterranean Palimpsestes: Three enigmas of decay and incorruption)’였다. 디미트리스 크소노글루는 ‘데르베니 파피루스’와의 열린 대화를 통해서 ‘데르베니 파피루스’의 보편성으로부터 영감을 얻고 이를 통해 외부 세계 및 내면세계 양쪽에서 나타나는 부패와 부패하지 않음에 관한 문제를 비평하는 작품을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