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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무 [Cheoyongmu]

  • 처용무(Cheoyongmu)
  • 제목 : 처용무(Cheoyongmu)
  • 설명 : © 2000 by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처용무

상세정보

  • 국가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
  • 위치
  • 좌표
  • 등재연도 2009년
  • 등재기준
요약

처용무(處容舞)는 궁중 무용의 하나로서 오늘날에는 무대에서 공연하지만, 본디 궁중 연례(宴禮)에서 악귀를 몰아내고 평온을 기원하거나 음력 섣달그믐날 악귀를 쫓는 의식인 나례(儺禮)에서 복을 구하며(求福) 춘 춤이었다. 동해 용왕(龍王)의 아들로 사람 형상을 한 처용(處容)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 천연두를 옮기는 역신(疫神)으로부터 인간 아내를 구해냈다는 한국 설화를 바탕으로 한 처용무는 동서남북과 중앙 등의 오방(五方)을 상징하는 흰색·파란색·검은색·붉은색·노란색의 오색 의상을 입은 5명의 남자들이 추는 춤이다.

무용수들은 팥죽색에 치아가 하얀 신인(神人) 탈을 쓰고, 납 구슬 목걸이에 주석 귀고리를 하고 검은색 사모를 쓰는데, 사모 위에는 악귀를 몰아내고 상서로운 기운을 맞이하는 벽사진경(辟邪進慶)의 뜻을 담은 모란 2송이와 복숭아 열매 7개를 꽂는다. 다양한 형식과 박자의 반주 음악, 간간이 삽입된 다채로운 서정적 노래 등을 통해 처용무는 호방하고 활기차다. 처용의 형상을 대문에 새기면 역신과 사귀(邪鬼)를 물리칠 수 있다는 민간 신앙을 포함해 처용을 둘러싼 더 광범위한 민속 신앙의 일부를 이루는 한편, 처용무는 특히 오행설(五行說)로 대표되는 유교 철학을 구현하기도 했다. 처용탈의 제작 과정 또한 전통 장인의 기량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목차
한자제목
處容舞
지역정보

궁중 무용인 처용무는 예술 공연을 위해 마련된 무대에서 공연되었으므로, 특정 지역이나 지리적 연고는 없다. 그럼에도 굳이 지리적 범위를 한정하여야 한다면, 고궁이 있는 대한민국의 서울(옛 이름은 “한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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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목록
등재연도
2009년
국가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
본문

처용무란 동서남북과 중앙의 5방에서 5명의 무용수가 춤을 추는 궁중 무용을 일컫는다. 때문에 ‘오방처용무(五方處容舞)’라고 불리기도 한다. 한국의 궁중 무용으로는 유일하게 사람 형상의 탈을 쓰고 춤을 춘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다. 1971년 1월 8일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된 처용무는 남자 무용수들이 연행(演行)하는 장엄하면서도 신비로운 춤이다.

통일신라 말기(B.C. 57년~A.D. 935년), 헌강왕(憲康王)이 행차하여 한반도 남동쪽 울산시 인근 개운포(開雲浦, 오늘날의 황성동 세죽마을)에 이르렀다. 왕이 환궁 차비를 하였을 때 짙은 운무(雲霧)가 낀 하늘을 보고 괴이하게 여겨 좌우에 그 이유를 물으니, 일관(日官)이 “이는 동해(東海)의 용(龍)이 부리는 조화이니, 마땅히 좋은 일을 행하여 이를 풀어야 합니다”라고 아뢰었다. 이에 왕이 근처에 용을 위한 절을 짓게 하자, 먹구름이 걷히고 동해 위로 용이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솟아올라 춤을 추었다. 그 중 ‘처용(處容)’이라는 이름의 한 아들이 헌강왕을 따라 수도인 경주로 와서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고 관직을 얻어 머물렀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처용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역신이 그의 아내를 범하려 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에 처용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자 역신이 모습을 나타내어 무릎을 꿇고 앉아 사과하였다. 이때부터 나라 사람들은 처용의 형상을 대문에 붙여 악귀를 몰아내고 상서로운 기운을 맞아들이게 되었다.

고려 왕조 후기(918년~1392년)까지 처용무는 무용수 1인이 공연하였으나, 조선 왕조 세종(재위 1418년~1450년) 때에 이르러 무용수 5명이 춤을 추게 되었다. 『악학궤범(樂學軌範)』에 따르면 음력 섣달그믐날, 묵은해의 역신과 사귀를 쫓기 위해 행하는 나례 의식에서 두 차례에 걸쳐 처용무를 추었다고 한다.

5명의 무용수는 각각 서쪽·동쪽·북쪽·남쪽·중앙의 오방(五方)을 상징하는 흰색·파란색·검은색·붉은색·노란색의 의상을 입었다. 처용무에는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근거하여 악운을 쫓는 의미가 담겨 있어 장엄하고 활기찬 춤사위에서 씩씩하고 호방한 기운을 엿볼 수 있다.

처용무는 수제천(壽齊天, ‘하늘만큼 영원한 생명’) 음악에 맞추어 왕을 향해 나아가 “신라성대소성대(新羅盛代昭盛代, ‘밝고 번성한 시대, 신라’)”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처용가〉의 첫 수를 ‘언락(言樂)’이라는 서정적인 가락에 맞추어 부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 다음 무용수들은 왕을 향해 인사하고 향당교주(鄕唐交奏, 향악(鄕樂)과 당악(唐樂)을 번갈아 연주)에 맞추어 무대 중앙으로 나아간다. 세영산(細靈山)의 느린 가락에 맞추어 무용수들은 정방형을 이루며 산작화무(散作花舞, ‘꽃의 형태로 흩어짐’)를 춘 후 오른쪽으로 돈다. 십자형으로 대열이 바뀌면 음악도 삼현도드리(3개 현악기로 연주하는 느린 6/4 박자 음악)로 변경된다. 수양수무(垂揚手舞, ‘팔을 들어 올려 흔들며 추는 춤’)와 무릎디피무(‘무릎을 움직여 방향을 바꾸는 춤’)을 마친 후 5인의 무용수는 대열을 원형으로 바꾸고 왼쪽으로 돈다.

다시 한 번 일렬로 대열을 바꾸고 나서 무용수들은 ‘산하천리국(山河千里國, ‘머나먼 산 또는 평야로’)’으로 시작하는 〈처용가〉를 다시 가곡 우편(羽編) 가락에 맞추어 부른 후 송구여지곡(頌九如之曲, 도드리의 일종)에 맞추어 낙화유수(落花流水, ‘떨어지는 꽃잎과 흐르는 물’)를 추며 무대에서 퇴장한다.

처용 탈은 팥죽색 피부에 치아가 하얗고, 납 구슬을 단 주석 귀고리가 달려 있다. 검은색 사모에는 모란 2송이와 복숭아 열매 7개를 꽂아 장식한다. 팥죽색과 복숭아 열매는 벽사(辟邪, 잡귀를 물리침)를, 하얀 모란은 진경(進慶, 기뻐할만한 일로 나아감)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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